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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Dec 12. 2019

'하고 싶은 일'은 어떻게 찾는 것일까?

점을 계속 찍다보면, 언젠가는 선을 이룬다.

학창 시절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질문은,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와 같은 진로에 관한 질문이다. 어렸을 때는,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어떤 '명확한' 인생의 모습을 살고 있는 멋진 어른이 될 줄 알았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이것 저것 손대면서 갈팡질팡 하는 방황의 시기는, 학창시절로 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엄청난 착각이었다.


원하는 대학에만 합격하면, 원하는 회사에만 취직하면, 원하는 이상형만 사귈 수 있다면, 좋아하는 그 사람과 결혼만 한다면, 원하는 연봉을 받으며 부자가 된다면, 원하는 그 아파트에 들어가 살 수 있다면...? 짠 하고 동화같이 행복한 삶이 펼쳐질 것 같은 환상을 가지는 경우가 많지만, 현실은 늘 생각치도 못했던 반전을 보여주곤 한다.


내가 원하는 어떤 것. 하고 싶은 일. 그것만을 한번에 손에 쥘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얻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건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원하는 어떤 하나를 얻으려면, 그것에 수반되는 아홉가지의 (실제로는 그 이상의) 싫은 일들을 감수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사람에 대입하면 쉽게 이해된다. 어떤 분야에 대한 성취와 열정을 가진 사람에게 반했다면, 그 외의 분야에 대한 그 사람의 지극한 무관심과 무지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누군가의 높은 인기와 세련된 외모, 유머감각에 반했다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과 노력, 늘 주변에 들끓는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감수해야 한다. 일도 사람도, 내가 원하는 것만을 쏙 빼서 취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 직업이나 꿈을 찾는 일도 비슷한 것 같다. 나는 글쓰는 일과 영어를 좋아하지만, 박봉이나 열정페이를 요구하는 일자리는 싫었다. 그렇다고 출장을 너무 자주 다니거나, 사람들과 팀을 이루어서 협업하는 일도 싫었다. 너무 보수적이거나 권위적인 조직에서 일하는 것도 싫었다. 맡은 업무만 잘하면 나머지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자율성을 보장 받는 회사를 다니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이런 것들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한번에 파악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졸업 후 4~5년에 걸쳐서, 이 회사 저 회사를 이직해가며, 여러 사람들과 일하고 부딪치고 멀어지고 해보면서, 서서히 알게된 사실이었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시행착오 해보지 않고서는,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절대 알 수 없는 것 같다.


나도 졸업 후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와 '영어' 실력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싶었지만, 아무 경력도 스펙도 없는 신입을 뽑아주는 곳은 없었다.


어렵게 한 출판사에 들어갔지만, 어이없게도 근무 6개월만에 부도가 나버렸다. 이후 경기도에 위치한 작은 완구회사 마케팅 부서에 겨우 취직을 했는데, 1년동안 정말 고생을 하며 버텼다. 오직 '경력'을 쌓기 위해서.


지금도 이맘 때만 되면 생생하게 떠오른다. 추운 겨울에, 미지근한 물조차 나오지 않던 회사 화장실. 얼음장같은 물에 발을 동동 구르며 손을 씻고 양치하던 기억. 회사가 어렵다며 갑자기 사무실과 화장실 청소를 직원에게 지시하던 사장님. 어두운 저녁 화장실을 청소하려고 들어가서 불을 켜면, 후다닥 사방으로 흩어지던 바퀴벌레들...


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 새벽 1시까지 일하고 퇴근하던 날도 부지기수였다. 야근수당 같은 건 물론 없었다. 팀장님이 저녁을 사주실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먹을 시간도 없었다. 아니, 그걸 먹을 시간에 빨리 일하고 집에 가고 싶었다. 정말 너무 아파서 열이 펄펄 끓는 날에도 출근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급은, 깜짝 놀랄만큼 적었다.


그래도 그 1년 동안의 경험이 의미가 있었던 것은, 해외 업체와 계속 영어로 이메일을 주고받고, 전달 사항을 번역해서 해당 부서나 공장에 전달하고, 메뉴얼을 번역하는 등의 업무를 했었기 때문에 영어가 크게 늘었고, 이를 통해 내 적성을 발견했다는 점이었다.


그때 경기도로 출근하기 위해 버스를 타면 늘 잠실 근처를 지나갔는데, 창 밖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며 항상 부러워했었다. 나도 잠실같은 곳에 있는 회사에 다녔으면... 그때는 26살이었으니까, 강남이나 광화문 같은 곳으로 출근하는 로망이 있었다.


그 이후 원하던 대로 중견기업, 다시 대기업으로 이직하게 되었다. 바라던 대로 역삼동과 삼성동에 있는 멋진 빌딩에 위치한 회사 - 직원들에게 화장실 청소도 안 시키고, 바퀴벌레 볼 일도 없는, 겨울에 따뜻한 물로 양치도 할 수 있는 ㅋㅋ - 에 취직한 것이다.


물론 그것이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그 안에서도 나름대로 불공평한 처사와 불만들이 늘 있었지만 사회가 얼마나 냉혹한지 깨닫게 되었던 나는, 아무리 회사가 불만이어도 쉽게 그만두지는 못했다. 그만두더라도 무언가 나만의 특화된 장점, 무기를 가지고 나가자, 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고생할 줄을 모른다는 둥, 대기업만 가려고 한다는 둥, 그런 얘길 들으면 좀 가슴이 답답하다. 왜 대기업만 가려고 하는지, 왜 고생하려고 하지 않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는 들여다보지 않고 겉으로만 판단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먹고 살 수 있는 월급과 환경, 회사의 부품이 아니라 '사람'인 존재로 존중받는 느낌, 적어도 미래에 대한 작은 가능성과 희망이 보인다면,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기꺼이 중소기업에서도 일할 수 있다. 나도 내가 원하던 '영어를 쓸 수 있는 업무'라는 점 하나만 보고 그곳에서 일했고, 원했던 외국계 회사로 갈 수 있었던 좋은 징검다리가 되주었지만, 1년 이상은 도저히 버티지 못하게 만들었던 그 악조건들은 여전히 참 씁쓸하다. (아무리 나 자신과 타협해도 그 화장실의 바퀴벌레들을 참을 수는 없었다..)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 '꿈'을 이야기 하는 빈도는 점점 더 적어진다. 대신에 '연봉'이나 '승진', '퇴사', '이직'과 같은 단어를 더 자주 이야기하게 된다.


꿈을 찾아 훌쩍 떠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하지만 꿈이라는 것이 그렇게 훌쩍 떠나면 찾아지는 것일까? 나는 오히려 내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 계속 부딪쳐가면서 무엇이라도 해보는 과정에서 꿈도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일이라도, 내가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조금씩, 작은 점들을 찍어가며 선을 이어가야 어떤 그림이라도 나올 수 있는 것 아닐까.


너무나도 유명한 스티브 잡스가 했던 말이 있다.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내가 지금 찍고 있는 이 수많은 점들이, 어떤 선으로 연결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많은 점들을 찍으며, 조금씩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 선을 그려나갈 수 있는 노력은 할 수 있다. 그 노력은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냥 막연히 좋은 일, 별 이유는 없지만 그냥 하고 싶은 일, 이걸 하고 있을 때면 참 행복하다 싶은 일. 이런 것을 가졌다면 일단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그것이 꼭 직업으로 연결되지 않아도, 하나의 점을 이미 찍고 있는 거니까. 수많은 점들이 어떤 방향으로, 어떤 선으로 연결될 지는, 조금씩 경험을 쌓아나가며 만들면 되는 거니까.


취직에 도움도 안되는데, 스펙에 도움도 안되는데도 하는 일. 돈도 많이 못 버는 분야인데도 하고 싶은 일. 그냥 좋아서, 끌려서 하는 일. 어른이 될수록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더 줄어든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건 더욱 어려워진다.


그래서 오히려 천천히 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도 늘 조급해하며, 몇 살에는 뭘 이루고, 몇 살 정도 되면 이것 이것 정도는 이뤄야지 하는 고정관념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오히려 내가 가고자 하는 꿈을 더 더디게 만들었을 뿐이다.


불안하고 확신이 없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기쁨, 행복감, 이걸 할 때 나는 가장 나답다는 확신을 가지고 굳건하게 밀고 나갔다면, 좀더 내가 원하는 길에 빨리 도달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여전히 점을 찍고 있는 중이다. 어떤 선은 다른 방향으로 비껴 나가기도 했지만, 여러 개의 선을 그리다보니 이제는 이 선들이 어떤 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마치 가지치기 하듯이 나와 맞지 않는 일들을 걷어내다 보니, 조금씩 방향을 찾아가는 것 같다.


선이 더 선명해지도록, 오늘도 점을 찍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다. 점점이 찍다보면, 언젠가는 나만의 그림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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