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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Dec 03. 2019

예민한 사람으로 살아남기

예민한 성격으로 산다는 것은

내가 친구들에 비해 예민한 성격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중학교 한문 과목을 담당하신 선생님이, 우리 반에서 가장 키가 작은 남학생을 골프채로 두드려패는 모습을 목격한 날이었다.


그 남학생은 원래 평소에도 좀 까불까불하고 밝은 친구였다. 특별히 문제를 일으킨다거나 버릇이 없다거나 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우리 반에서 제일 키가 작은 여학생보다도 더 키가 작고 왜소한 체구였다는 것만 기억나는 걸 보면, 그저 잘 웃고 장난치길 좋아하는 평범한 친구였던 것 같다.


무엇이 그 선생님을 그렇게 분노하게 만들었는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아무튼 그 친구는 엄청나게 맞았다. 그 당시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만큼 무겁게 가라앉은 반 분위기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14살의 나이에도, 그 선생님이 훈육이 아닌, 본인의 분노에 휩싸여서 마구 골프채를 휘두르고 있다는 것만은 우리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지옥같았던 한문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 아이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듯이 소란스러워졌다. 화장실에 가고, 잡담을 하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나중에 담임 선생님이 오셔서 맞은 아이의 교복을 들추었는데, 골프채 자국이 그 조그만 등 전체에 아주 선명하고 끔찍하게 찍혀있었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날 나는 오후 내내 구역질이 나고 속이 미슥거리고 머리가 아팠다. 마치 내가 그 매를 모두 맞은 것처럼, 그 아이의 모습과 선생님이 휘두르던 폭력에 충격을 받았다. 학교가 끝나고도 바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집 근처 놀이터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내 방에 들어가서 혼자 오래도록 울었다.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세월이 흘러 나와 똑같은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예민하고 섬세했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아이가 이유없이 온갖 짜증을 부리고 징징대면, 꼭 나를 보는 것만 같다. 왜 그러는지, 어떤 마음으로 짜증이 났는지 너무나 알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다. 마치 조그마한 나 자신을 보는 느낌이랄까.


성장하면서 사회화(?)가 되어 예민함을 적당히 숨기고 포장할 줄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예민한 어른이다. 매일 지나치게 무심하고 무례한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나지만,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공공장소에서 손을 가리지 않고 기침하는 사람을 봐도, 장우산을 비스듬히 들어 다른 사람을 계속 쿡쿡 찌르는 사람을 볼 때도, 지하철 옆자리 앉아 열심히 파우더 가루를 날리며 화장하는 사람을 보거나, 지하철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서 내 다리에 신발이 닿을락 말락 하는 상황을 만드는 사람을 볼 때면 솔직히 화가 난다.


자기보다 한 두살 어리다고 다짜고짜 반말하는 사람도 거슬린다. 약간 애매하게 존대말을 쓰면서 중간 중간 말을 짧게 하는 것도 물론 거슬린다. 맨스플레인을 시전하거나, 꼰대짓을 하는 것도, 예민하기 때문에 제일 빨리 알아채고 나 혼자 기분 나빠 하는 상황이 되는 것도 참 싫다.


사람들이 무심하게 툭툭 내뱉는 말이나 표정, 눈빛, 행동에도 늘 거슬리는 지점이 존재한다. 제발 함부로 무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뒤끝없는 사람이야' 라는 이상한 합리화 하지 말고, 제발 모든 사람들이 '뒤끝'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착하고 마음 약해 보이는 인상과, 젊은 여자라는 이유로, 편하게 대해도 된다고 말한 적 없는데 그렇게 대하는 사람에게도 화가 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애써 무시하고 훅 들어오는 사람들도 나는 싫다.


이렇게 싫어하는 것도, 화나는 일도 많기 때문에 예민한 사람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은 에너지와 체력을 소모한다. 작은 일에도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마음에 남는 일은 몇 번이나 머리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한마디로 피곤하게 사는 것이다.


그래서 매우 밝고 사회적이고 의욕적으로 보이는 겉모습에 비해, 속은 아주 어둡고 신경질적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겉과 속의 격차가 존재하겠지만, 예민한 사람들은 그 격차가 더한 것 같다.


예민한 사람으로서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왜 그렇게 혼자 예민해? 왜 그렇게 유별나게 굴어? " 식의 반응에 더 이상 놀라거나 속상하지 않다는 점이다. 오랜 세월동안 천천히 나의 예민함을, 나의 유별남을 마치 신체의 일부처럼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마저 나의 예민함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는다면, 정말로 유별나고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다. 이게 꼭 이상한 것만은 아니야, 나쁜 것만은 아니야, 그냥 남들보다 좀더 발달한 감각일 뿐이야, 라고 조금씩 합리화(?)하고 받아들이며 사는 편이 훨씬 편하다.


사실 예민해서 좋은 점도 분명히 있다. 가장 좋은 점은, 나와 결이 맞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금방 알아보고 멀리 한다는 점이다. 편견일 수도 있지만, 소심하고 예민한 사람으로서는 꼭 필요한 방어책이다. 본능적으로 맞서기보단 피하는게 상책이다, 라고 스스로에게 알람을 주는 것이다.


똑똑한 사람이라면, 이런 예민함을 예술적인 영감에 발휘하거나, 뭔가 좀더 나은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예민한을, 고작 스스로를 방어하고 보호하는데 주로 활용하고 있다. ㅎㅎ 이것도 의미가 아주 없는 일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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