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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상다반사 Feb 02. 2022

당선 소감

어느 순간 나를 찾는 전화가 울리고

  그 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고, 나는 종로의 낙원 악기 상가에 갔었다. 콘트라베이스 실제로 만져보고 싶다는게 이유였다. 하지만 악기사 사장님 나에게 첼로를 추천하셨다.(보여줄 수 있는 콘트라베이스가 당장 없어서 그런 것 같은데) 내가 헐렁한 건지 사장님이 똑똑한 건지 콘트라베이스보다 덩치는 쪼금 작지만 찐한 커피향의 소리를 지녔다는 그 첼로를 나는 기어코 구입하고야 말았다. 첼로를 사고 나오는 길에는 비가 더 세차게 내렸다.


  우산은 전적으로 첼로 차지였다.


  이 때 든 생각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첼로한테 손과 발이 달려 본인 스스로 우산을 쓰고 다녔으면 좋겠다라는 것과 두 번째는 첼로는 왜 나무로 만들어진 것일까라는 것. 사람처럼 가죽으로 만들어져있다면 비에 젖어도 전혀 걱정이 안될텐데 말이다.


  나는 동대문에 볼 일이 있었기 때문에 지하철을 타야했다. 종로 3가 역 안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손과 발이 달려있지 않은 첼로는 역시나 스스로 개찰구를 통과할 수 없었다. 낑낑대며 첼로를 지하철에 태우고 그제야 핸드폰을 꺼냈다. 부재중 전화 표시가 있었고, 포탈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에는 한 연예인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난 나에게 온 전화보다 연예인의 소식이 더 궁금했다. 그리고 이내  사망했다는  알 수 있었다. 

  전화가 온 건 그 때였다. 그리고 내가 춘문예당선이 됐다는 것 알게 되었다.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난 마침 한 연예인의 사망 속보 기사를 읽고 있었고, 지하철 안은 좁고 좁았고 비까지 내린 터라 모든 것이 축축했다. 담당자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와중에도 한 손으로는 첼로가 넘어지지 않도록 잘 붙들고 있어야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을 찾았다. 세수를 하고 싶었다. '어푸' 소리를 내는 걸로 기쁨의 환호성을 대신 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화장실에 들어가니 또 첼로가 문제였다. 화장실 바닥이 더러워 첼로를 도무지 내려놓을 수 없었고, 난 다시 화장실을 나왔다.


  내가 최연소 문학상 수상자가 될거라고 생각하여 당선 소감을 미리 작성해둔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내 나이는 김애란 작가가 최연소 문학상 타이틀을 받았을 때와 동일한 나이였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단 당선 소감문먼저 작성해놓았다.


  그 해 나는 그 어떤 문학 공모전에도 응모하지 못했다.


  그리고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내 나이로 획득할 수 있는 최연소 타이틀은 아마 대통령이 아니지싶을만큼 난 나이를 더 먹어버렸다. 10년 전에 미리 써놓은 당선 감을 다시 우려먹기엔 그 때의 내가 너무 패기가 넘쳤다. 그러니까 10년 전의 내가 콘트라베이스를 사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면 현재의 나는 콘트라베이스보다 훨씬 작은 첼로도 버거워하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내가 꿈꾸던 당선 장면과도 거리가 있다. 당장 주위에 축하해 줄 사람도 없었으며  당선 소식을 떠들고 다니기엔 유명 연예인사망 소식이 괜히 눈치가 보였다. 사실 그것보단 나의 당선 소식이 주위 사람들에게 그렇게 놀랄만할 일이냐는 것이다. 1월 1일자 신문에 실린 나의 당선작을 읽고 축하 연락을 할 사람들을 손에 꼽아본다면 오른 손가락들로도 충분할 거 같다. 우린 각자 바빠 서로의 안부를 그저 짐작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긴 글을 읽어줄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 오히려 글을 쓰면서 나는 조금 더 외로워졌고 남들에게 차마 전할 수 없는 부끄러운 문장들만 서랍에 켜켜이 쌓여갔다.

  그러니까 당선 소감을 얘기하자면,

  

  마냥 부끄럽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글을 그만 쓸 수는 없는 일이다. 기어코 등단을 했으니 말이다. 구입한 첼로를 도무지 화장실 바닥에 내려놓을 수 없었듯이 글을 쓰는 것 또한 도무지 그만 둘 수 없는 일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당선의 기쁨보다는 앞으로 겪을 수 있는 부끄러움들을 미래의 독자들과 스스럼없이 나누고싶다. 그래도 집에 와서는 세수를 하며 크게 '어푸' 소리를 냈으니 쁨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했지만,


여전히 기쁘다.


그리고 감사하다.

오늘은 서랍을 열어 먼지 쌓인 문장들과 밤을 지새워봐야겠다.




  10년 전에 미리 쓴 당선 소감문은 노트북의 고장과 함께 사라져버렸습니다. 리고 10년이 지나고나서야 다시 쓴  당선 소감문도 사실 미리  본겁니다. 내내 당선 소감문만 쓰는 건 아닐까싶어 상상이라도 등단해볼랍니다. 앞으로 쓰는 모든 글들은 상상 속 일상입니다.  중 몇은 일상 스리슬쩍 넣어보겠지만 상상으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입니다. 부디 상상 속 문학인의 독자가 되어주시기를. 독자만큼은 상상으로 만들어  내고 싶진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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