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갑사를 찾는 중생

by 류진환

'남도의 금강산' 월출산 서북쪽 구림리에서 늙은 벚나무 길을 접어든다. 신라 말기 도선 국사가 창건하였다는 도갑사(道岬寺)로 가는 길이다.


2차선의 다소 굽은 길이 많은 곳곳에선 4차선으로 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찾는 이들이 날로 늘어남을 짐작 해 본다. 무엇을 갈구하고 갈구하러 오는 것인가. 가슴에 검은 멍을 한 가득 안고 이 길을 달려 천년이 넘은 고찰(古刹)의 불상 앞에 머리 조아리면, 해탈(解脫)은 아니더라도 번뇌(煩惱)는 씻어 갈까.



이런 저런 생각에 기울어 진 운전대를 다시 가다듬는다. 좌측 편으로 월출산이 보인다. 다가오고 멀어지는 기암절벽의 우뚝 선 자태에 탄성이 절로 난다.


문득 한참 전 처음 남도 여행을 할 때가 떠오른다. 해남으로 가면서 월출산을 마주 했을 때 였다. 말 그대로 골산(骨山)의 자태를 보며, 기암의 괴석들에 놀람을 금치 못했었다. 마침 인근에서 하루 밤을 묵고 아침 일찍 산을 향해 돌아서는 순간, 안개 속에서 장엄하게 모습을 들어내며 나를 향해 바라보던 그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에 새롭다.


벚나무 길이 끝나고 굽이굽이 도니 도갑사가 눈에 들어온다. 마침 한적한 평일이라 입장객도 거의 보이지 않자, 맘 좋은 안내원은 주차료와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다소 사소하다지만 여행자의 마음을 붕 뜨게 하기는 충분하다.


일주문을 지나 해탈문(解脫門)으로 오르는 언덕에 야생 차나무가 무성하다. 이곳에서 차잎를 따고 다려 스님들은 도(道)를 닦는 길에 잠시 위안을 얻었을까, 그저 혼자만의 생각을 하며 해탈문에 들어선다. 국보 제 50호로 지정된 단아한 맞배지붕의 해탈문은 조선초기 고건축물로서 고려말 주심포 건축구조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도갑사는 신라 말기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으며, 조선 전기 1456년(세조 2) 수미(守眉)대사가 중건하였다. 국보 제50호로 지정된 도갑사의 해탈문은 현존하고 있는 한국의 건물 중 보기드문 옛 건축물이다. 이 곳에는 대웅보전(大雄寶殿:지방유형문화재 42호)·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보물 89호)·도선국사비(지방유형문화재 38호)·명부전(冥府殿)·팔각석등대석(八角石燈臺石)·3층석탑·5층석탑·석제(石製)구유 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이외에도 도선 및 수미대사의 영정(影幀)이 봉안되어 있다.


여기엔 또한 사찰을 창건한 위대한 고승의 탄생설화가 고스란히 담긴 곳이기도 하다.
신라말, 도선국사의 어머니가 성기동 골짜기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떠내려 오는 참외를 먹고 잉태하여 도선을 낳았다. 도선의 어머니는 처녀가 아이를 낳았으니 남의 이목이 두려워, 아이를 숲에 버렸다. 그런데 비둘기 떼가 몰려와 아이를 보살피므로 기이하게 여겨 문수사 주지가 데려다 길렀다. 그래서 이곳 지명인‘비둘기 숲’이라는 한자말의‘구림’이 생겨났다.


훗날 도선은 장성하여 중국에서 풍수지리를 공부하고 돌아온 후, 이곳 문수사 터에 도갑사를 세웠으니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因緣)의 귀중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진 대웅보전에 들어섰다.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진다. 갑자기 몸 안에서 서글품이 몽글몽글 솟음을 느낀다. 살아도 살아도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바램이 저 만큼이나 멀리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중생은 어리석은가 보다. 그 앞에서 다시금 소원을 성취하게 해달라고 머리를 조아린다. 경내에 어둠이 서서히 내린다. 커다란 눈발이 성큼 성큼 다가온다. 이내 경내 전체가 하얗게 덮인다. 어둠이 내리는 속에서 하얀빛의 세상이다. 어리석은 중생은 아닌 줄 알면서도, 이 모습이 세상사 모두가 온전한 일로 덮여주는 부처의 은덕이라 여기고 싶음을 뉘인들 모를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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