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의 수술에서 얻는 마음 내려놓기

by 류진환

가끔 스스로 놈팡이인 듯하다. 60이 넘어서 일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놀고 있으니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뉴스를 챙기고 늘 마국 주식 창을 연다. 미 증시가 상승한 날은 한국 증시도 대개 오르니 기분이 좋다. 하지만 반대인 날은 걱정부터 앞선다. 예전에 누가 내게 걱정 나무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미리 걱정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조마조마한다. 성격 탓이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그랬다. 어떤 일이든 사전에 준비하는 성격이다. 그리고 완벽하게 마치지 못하면 늘 기분이 찜찜해 잠을 설친다.


친구나 동료들이 그런다. 팔자가 좋다고. 집사람이 수입이 괜찮은 직장에 다닌다고 용돈까지 얻어 쓰는 줄 안다. 그건 절대 아니다. 남만큼 오래 직장생활은 하지 않았지만 내 몸 하나 건사할 정도의 준비는 해 놓았다. 국민연금을 받으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늘 '처마에 걸어 놓은 곶감을 하나씩 빼먹다 보면 어느 날 하나도 남지 않은 상황'을 보게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들 때도 많다.


그럼 왜 놀고 있나. 묻는 이도 많다. 사실 난 6번의 수술을 견뎌 냈다. 대개 한 번도 경험하지 않는 희한한 경우다. 망막 박리. 눈앞에 비문이 생기고, 그것이 핏덩이처럼 불고 둥그렇게 커져 시야를 가린다. 긴급 수술을 받지 않으면 시력을 잃는다. 물론 비문에 있다고 모두 망막박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고도 근시로 오랫동안 눈을 사용한 결과로 망막이 얇아져 구멍이 생긴 것이다.


첫 증상은 코르나로 온 세상이 무너질 듯 한 2000년 5월. 눈앞에 바문이 생겼는데 별생각 없이 직장생활을 했다. 일주일을 그냥 보내고 너무 불편에 찾은 한 안과에서 경험 많은 의사분이 대학병원으로 급히 가라고 진료의뢰서를 써 주었다. 급하게 집사람에게 연락하고 찾은 병원은 상상을 초월했다. 코르나 환자로 북새통을 이룬 첫 병원에서 코르나가 심각한 지역 사람은 입장할 수 없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찾은 다른 대학병원에서는 검사까지 마친 후 대기하던 중 도저히 상황이 안된다고 다른 병원으로 가란다. 답답할 노릇이고, 막막했다. 누구도 우리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리 부부의 넋 놓은 모습을 본 한 레지던트가 다른 병원을 추천해 주었다. 참 고마웠다. 그의 추천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또 검사와 대기 그렇게 주말이 갔다. 이틀의 기다림에 긴 시간을 보내고 월요일 아참. 한 해에 두 번 찾아가 눈 진료를 받는 현재의 의사 선생님이 그날 오전 진료를 미루고 긴급 수술을 진행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그래도 참 고마웠다.


그렇게 시작된 첫 수술. 우리 부부는 그날의 수술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2년 후 이번엔 왼쪽 눈에 증상이 시작됐다. 다시 긴급 수술. 그런데 수술 후 보름도 안 되었는데 다시 구멍이 생겼다. 망막 박리는 수술 후가 매우 중요하다. 최소 20일 이상 엎드려 있어야 한다. 아래로 압력을 주어야 메운 부위가 잘 아문다. 참으로 긴 시간을 엎드려 살았는데 허탈했다. 다시 세 번째 수술. 그리고 다시 또 수술. 이렇게 총 5번의 수술과 한 번의 시술로 모두 6번의 수술실을 경험했다. 한 번 할 때마다 움직이지 못하게 온몸을 꽁꽁 묶고 1시간 이상 진행되는 수술. 눈 이외는 마취하지 않기에 수술 과정을 모두 느끼고 듣고 있으면 두려움을 넘어 무섭다, 그렇게 한 번 수술을 받고 나면 체중이 많을 땐 10kg까지 빠진다. 긴 시간을 엎드려 있는 이를 간병하는 집사람도 큰 고역을 치렀다. 늘 고맙다,


그래도 운이 참 좋았다. 6번이나 수술을 했는데도 시력을 잃지 않고, 책도 보고 산에도 간다. 늘 감사한다. 그리고 이런 무시무시한 경험을 한 내가 마음을 내려놓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 물론 취업하려고 몇 번 시도했다. 그간의 경력으로 공공기관에 면접을 보았지만, 늘 들러리였다. 그 지역의 유지급이 최종 합격을 했다.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집사람도 말렸다. 마음 쓰고 스트레스로 다시 도질 수 있다고. 그래서 간간이 도서관에서 하는 평생 교육을 수강하고, 틈나는 대로 성과는 거의 없지만 주식 거래를 한다. 이 또한 스트레스의 주범이 될 수 있지만 무료하게 있으면 하루가 너무 길고 지루하다. 물론 조심스럽게 글도 쓴다. 훗날 좀 나은 글을 쓰기 위한 연습이다.


마음 내려놓기. 쉬웠을까. 아니다. 솔직히 어려웠다. 그 간의 경력을 활용해 다시 일터로 가고 싶었다. 당당하게 세상에 나서고도 싶었다.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지 늘 조마조마 했다. 명함 한 장 내밀 수 없는 처지가 늘 불안했다. 남들 앞에 나서기 쉽지 않았다. 시간이 약이다. 천천히 하나씩 걱정의 옷을 벗었다. 그리고 견뎌냈다. 성인군자가 아니라서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러나 좀 더 나이가 들수록 나아질 것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일을 다시 할 수 있을 것이지만 못해도 괜찮다. 스스로 지켜 나갈 용기와 인내가 남아 있다.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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