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핥기.

by 류온

아빠에 관한 글을 쓰려고 앉았는데,

다른 글이 술술 써져 버렸다.


고된 노동 속에,

꿈 없이 사는 내 모습.

그게 불행인지도 모르고

싫어도 그렇게 살아야 했던 가여운 어린 나.


그렇게 꿈 없이 살았던 나를

덩어리째 뭉툭하게 툭툭 썼다.


그게 잘 쓴 글이라니.

그게 깊은 감정의 뿌리라니.

양파로 치면

겨우 겉에 묻은 흙만 털어냈을 뿐인데.


내 안에는

켜켜이 더 많은 감정이,

더 많은 상처가 있는데,

그걸 하나씩 벗겨보며,

더 깊은 곳의 나를 마주하려니,

꺼내보기 두렵다.


적나란 것들은 회피하고

뭉툭한 감정들만을 꺼냈더니

후련하긴커녕, 더 갑갑해진 느낌.

겉핥기만 하고 끝나버린, 이 찝찝함.


내 안에서만 살고 있는,

그동안 나조차 애써 외면했던, 깊고 짙은 감정들.


얼마나 깊이 들어가야 볼 수 있을지.

너무도 깊숙이 박힌 그 뿌리를 찾는다 해도,

내 힘으로 뽑아낼 수 있을지..


과거의 뿌리를 통째로 뒤흔들어,

현재로 끌어올린다는 게.

가능한 일이긴 할까.


내 안에서 무엇이 툭 튀어나올지..

나조차 무섭다.


쓰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와버릴 감정들.

나도 모르게 쏟아지듯 써내버릴 글들.

나는 또 어찌 감당해야 할까..


나는,

직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