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빈티지, 치즈케익팩토리, 하인스스테이크
신행 6일차
알람을 듣고 일어난 첫날이 아닌가 싶다.
이제야 시차 적응했는데 내일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은 다이아몬드 헤드에 가는 날이다. 발가락을 다친 남편은 더 자고 나 혼자 나갈 준비를 했다. 하와이에 와서 처음으로 바지를 입은 날인듯 하다.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에게 인사를 하고 6시반쯤 호텔을 나섰다.
구글 맵으러 검색해서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약 15분 정도를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려야 했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 기다리는데 어떤 백인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어디 가냐고 해서 다이아몬드헤드로 간다고 했다. 그밖에 어디서 왔냐, 한국에서 무슨 일 하냐, 대학은 졸업했냐, 언제 다시 돌아가냐 등등 물었다. 자신은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직접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다.
사람마다 다르고 내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외국에서 혼자 있는데 백인 할어버지들이 말시키는 것을 별로 안좋아한다. 근데 또 어떻게 거절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버스만 어서 오길 바랬다. 나보고 걸음 속도가 빠르냐고 물어보는데 혹시라도 다이아몬드헤드 같이 가자고 할까봐 나는 하이킹을 아주 좋아해서 뛰어 올라갈거라고 했다. 그러다가 허니문으로 여행온 것이라고 말하고 호텔에 남편있다고 하니까 그 뒤로 질문이 뜨문뜨문~ 적절한 타이밍에 버스까지 와서 할아버지의 질문세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다이아몬드헤드 근처 정류장에서 내렸다. 잘못 내린 것 같았지만 그래도 조금 걸으니 다이아몬드헤드 출입구가 나왔다. 구글맵이 짱이다. 옛날에는 구글맵 없이 어떻게 대중교통 타고 다니면서 해외여행을 했는지 모르겠다.
출입구부터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그냥 사람들 따라서 올라갔다. 블로그에서 봤던대로 터널도 지나고 매표소도 지났다. 전날 밤 홈페이지에서 예약한 후 메일로 받은 qr코드를 보여줬더니 바로 입장 가능했다.
올라가는 코스는 매우 무난하고 쉬웠다. 멀리서 다이아몬드헤드를 봤을 때는 굉장히 높고 가팔라 보였는데 전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발가락을 다친 남편을 끌고 오지 않은건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래도 산은 산인지라 왔으면 매우 고생했을 것 같다. 혼자가 되고 보니 하와이에 커플이 얼마나 많은지 보였다. 다이아몬드헤드에 혼자 올라온 사람은 정말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대부분이 커플이었고, 커플이 아니면 가족단위거나 친구끼리 온 사람이었다.
정상에는 금방 도착했다. 아침이라 그런지 구름이 쫌 끼어있었다. 하와이가 원래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맑은데 한쪽에만 먹구름이 끼어있을 때가 많았다. 곧 사라지긴 하지만. 하필 내가 간 타이밍에 구름이 많아서 화창한 모습은 보지 못했다.
소심해서 사진 찍어달라고도 못하고 혼자서 풍경사진만 잔뜩 찍고 내려왔다. 역시 혼자 다니는 여행은 내 취향이 아니다. 혼자 오니 쓸쓸하고 멋있는 풍경에도 별 감흥이 없다. 벌써 신랑이 그리웠다.
내려올 때는 훨씬 빨리 내려왔다. 버스도 금방 와서 호텔까지 휘리릭 왔다.
호텔에 도착하니 신랑은 호텔 수영장 썬베드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심심하긴 했지만 매우 좋았다고 했다. 나도 심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꼭 가고 싶었던 다이아몬드헤드라서 다녀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6시 반에 출발해서 다녀오니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나가서 브런치를 먹자고 했다. 가이드님이 추천해준 카페에 가서 아사히볼과 브런치 메뉴를 시켜먹기로 했다. 그런데! 사람이 엄청 많았다. 테이블은 비어있는 것도 꽤 있는데 주문하는 줄에 서서 정말 한참을 기다렸다. 테이블이 꽉 차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주문하는 줄에 왜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 있는 것인지, 빨리빨리 해치워버리는 한국사람으로써는 이해가 안됐다. 중간에 포기하고 가버리고 싶었지만 신랑은 지금까지 기다린 이상 먹고 가야한다면서 기다리자고 했다. 또 나는 주문했는데 그때 막상 앉을 테이블이 없으면 어떡하냐면서 테이블도 미리 맡아놔야하는거 아니냐고 했는데 신랑은 주문하고 그때 테이블 맡아도 늦지 않다며 다독였다. 실제로 주문을 하고 나서도 앉을 테이블이 꽤 많아서 미리 테이블을 차지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 보니 더욱더 테이블은 비었는데 주문 줄은 왜이렇게 길고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이해가 안됐다. ㅋㅋㅋ
성격 급한 나에게 하와이 웨이팅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인내 끝에 아사히볼과 커피, 브런치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사람이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듯 아주 만족스럽게 먹었다. 특히 아사히볼이 하와이에서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많이 추천하는 메뉴 중 하나였는데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 메뉴는 집에서도 만들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요거트 사서 바나나, 블루베리, 딸기, 그레놀라를 넣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배도 부르고 해도 뜨거워지고 해변에서 놀기로 했다. 와이키키에 와서는 한번도 바다에 몸을 담궈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와이까지 욌는제 와이키키 바다에는 몸을 담궈봐야지!!
튜브가 하나 있어야할 것 같아서 마트에서 10달러를 주고 튜브 하나를 샀다. 바람을 넣고 비치타올 2개를 빌려 해변으로 나갔다.
와이키키비치에 처음으로 바다에 몸을 담궈봤다. 바다 멀리까지 나가도 땅에 발이 닿았다. 파도는 쎘다. 튜브에 기대서 더 큰 파도가 오길 기다리기도 하고 더 큰 파도가 오는 쪽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더 먼 바다에는 큰 파도 위에서 보드를 타는 서퍼들이 한가득이었다. 이 서퍼들은 아침 일찍부터 파도를 타고 있었다. 서핑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하와이는 정말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싶다. 나도 큰 파도를 맞으러 더 먼 바다로 나아가고 싶었지만 겁이 나서 멀리 가지 못하고 해변 근처에서 놀았다. 그래도 신났다. 신랑은 바다에 들어오지 않고 해변에 누워 핸드폰을 했다. 땡볕에 누워 핸드폰 하는 신랑에게 미안해 그늘이 있는 수영장 썬베드로 자리를 옮겼다.
주로 애기들이 수영장에서 놀고 있었다. 미끄럼틀이 있길래 한 번 타봤다. 생각보다 너무 재밌었다. 또 타고 싶었지만 애기들만 타는 것 같아서 안탔다. 그늘 진 썬베드에 누워있으니 정말 시원했다. 신랑은 여기가 지상낙원이라며 자기가 누웠던 썬베드 위치 중 가장 좋다고 했다. 호텔 수영장과 바다가 가까워 신랑은 그늘에 두고 바다에 가서 한번 더 놀다가 왔다.
호텔로 들어와 샤워를 하고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치즈케익팩토리라고 디저트로 주문할 수 있는 치즈케익이 유명하다고 한다.
야외 자리에 자리를 잡고 미트볼 파스타와 피자를 시켰다. 미트볼 파스타는 살짝 짰지만 파스타면이 굉장히 얇은 것이 식감이 좋았다. 피자는 어딜가나 맛있다.
디저트로 나오는 치즈케익이 메인인 것 같지만 배불러서 디저트는 생략했다. 계산서를 달라고 하고 트래블월넷 체크카드를 줬다. 택스를 포함한 금액을 미리 계산해서 주고 팁은 나중에 한국에 오고 나서야 계산되었다. 메뉴판 금액에 세금 포함되고 팁 문화 없는 한국이 좋다. 미국은 메뉴 주문할 때랑 나중에 계산해야할 최종금액 보면 차이가 너무 크다…!!! 사기 당한 느낌 ㅠㅜ
그래도 푸른 하늘과 높은 빌딩 속 야자수가 서있는 화와이 와이키키만의 풍경 속에서 늦은 점심을 여유롭게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좋았다.
오늘은 마지막날 밤이니 해변에서 느긋하게 노을을 보자고 신랑에게 얘기했다. 우리 숙소 건물(쉐라톤 와이키키)은 둥근 형태로 딱 해가 지는 부분을 건물이 가리고 있어서 룸에서 바다는 잘 보여도 해지는 풍경을 보지 못했다. 숙소에서 멀지는 않지만 선셋이 유명한 해변을 찾아보니 Ala Moana Park가 나왔다. 걸어가기는 좀 멀어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신랑은 발이 아파 빨리 걷지 못하고 버스 시간은 맞춰야겠고 마음이 부산했다. 그래서 그냥 눈 앞에 해변으로 걸음을 돌렸다. 아마 Fort DeRussy Beach인듯 하다.
젊은 남자애들이 모래 사장에서 비치볼을 하고 커플들은 잔디밭에 누워있고. 와이키키랑 매우 가까운데도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우리도 앉아서 노을을 기다리며 사람 구경을 했다. 신랑이랑 커플로 나이키 포스 운동화를 맞춰 신고 여행을 간터라 둘다 운동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주로 사람들이 신고 있는 운동화를 많이 구경했던 것 같다. 한국도 그렇지만 하와이도 포스 신은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다들 어쩜 그렇게 깨끗하게 신는지 신기했다.
그런데 아뿔싸!.!!! 하늘이 맑은데, 분명 날씨가 너무 좋은데, 해가 지는 그 부분만 먹구름이 가득하다. 어찌 나에게 이런 일이..!! 하와이 와서 해변에 앉아 아름답게 바다로 지는 노을을 보고 싶었는데 애매하게 실패하게 생겼다 ㅠㅠ
그러나 기다려도 먹구름은 사라질 생각을 안하고 신랑과 해변을 따라 호텔로 돌아왔다. 영화같은 노을은 보지 못했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서히 저물어가는 하와이를 두 손 잡고 거닌 그 순간은 참 좋았다.
가이드님이 추천해주신 스테이크집을 하와이 여행의 피날레로 예약해둔터였다. 스테이크집을 가기 직전 미리 검색을 해봤는데 오메?! 가격이 생각보다 너무 비쌌다. 스테이크 가격에 세금 붙고 팁까지 내면 300달러는 될 것 같았다. 신랑에게 가격 얘기를 하니 스테이크를 먹고 싶다고 했던 신랑도 마음이 살짝 식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미 예약한 시간은 거의 다가왔기에 가기로 했다. 드레스코드가 있다고 하여 둘다 가지고 온 옷 중에서 가장 차려입은 것 같은 스타일로 갈아입고 출발~!
저녁 9시 예약이라 늦은 시간 꽤 걸어가야 했다. 와이키키비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인데다 늦은 시간 둘이 걸어가니 혹시나 이상한 불량배를 마주치진 않을지 괜히 마음이 콩딱콩딱했다. 그러나 괜히 마음만 콩딱콩딱할 뿐이었다.
레스토랑 앞에 도착하니 대기하는 손님들이 꽤 있었다. 예약시간 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우리도 레스토랑 앞에서 잠시 대기해야 했다. 곧 우리를 찾는 웨이터가 나왔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내부는 여러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식사 중인 손님들의 옷차림이나 인테리어나 조명이나 고풍스러움이 느껴졌다. 서빙하는 웨이터분들도 모두 풀정장으로 착장하고 있어 고급스러움이 더해지는 것 같았다.
미리 블로그를 보고 생각해간 요리를 주문했다. 스테이크와 관자요리를 하나씩 주문했다. 그런데 스테이크 맛도 그냥저냥하고, 양도 너무 많아서 절반 정도만 먹고 남겨야 했다. 우리가 안 먹고 남기자 포장을 해주긴 했는데 어차피 내일 아침 떠나는 일정인데 이걸 먹을 일이 있을까 싶었다. 아까운 마음때문인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여행 중 처음으로 투닥거렸다. 다행히 언제 그랬냐는 듯 또 풀리긴 했지만 말이다. 후~ 역시 사람은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하와이 신혼여행은 끝이 났다.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꿈꾸던 하와이에서 와서 새로운 풍경과 새로운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낯선 곳에서의 긴장감, 힘들게 번 돈을 짧은 시간 안에 팡팡 쓰고 있어 무조건 더 즐거워야 한다는 강박감이 오묘하게 섞인 여행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해외여행은 마냥 새롭고 즐거운 시간은 아니었다. 직장 생활이 힘들어질수록 여행을 떠난 지금 순간을 즐겨야 한다는 강박과 낯선 곳에서의 불안이 더 커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또다시 하와이에서의 순간을 그리워하고 있고, 인스타, TV를 보며 해외여행 중인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그러면서 또 다음 여행을 기약한다.
참 해외여행 복이 많은 건지 신기하게도 다음 해외 여행은 가을에 떠날 것 같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