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도시의 소음 속에서 빛난다고 생각했다

by 류안 RYUAN

서울에서 태어나 나고 자란 젊은 날의 나는 도심 속의 커리어우먼 같은 내가 참 멋졌다. 복잡한 지하철을 뚫고 정신없이 바쁘게 출근하는 내 모습에 취해있었다. 사람들이 가득한 강남의 카페들,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시끌벅적한 분위기, 화려한 불빛,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대화와 웃음들, 또는 노트북 앞에서 쉴 새 없이 바삐 움직이는 나의 손.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누구보다 바쁘게 살고, 과하게 일하고 과하게 즐기며, 스스로를 불태우는 것이 '멋진 어른' 또는 '멋진 커리어우먼'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스크린샷 2025-12-11 22.56.41.png


서울의 소음과 내 심장은 늘 긴장상태였고 그 리듬에 맞춰 달리는 모든 순간이 마음에 들었다. 도시는 늘 시끄러웠지만, 나는 그 소리를 날 응원해 주는 소리라고 여겼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사람들이 나를 찾는 것, 일이 미친 듯이 몰리면 나는 빛나고 있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어떤 날에는 "나 이틀에 하루만 자도 될 것 같아. 살만한데?"라고 말한 적도 있다. 마치 리듬을 타면서 연주를 하듯이 모든 일을 대했다. 마치 도시는 늘 Allegro로만 연주되는 교향곡 같았다. 도시의 속도가 곧 나의 속도이고, 세상이 원하는 것이 곧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빠른 템포에 취해 나도 모르게 삶을 악보가 '촤르르' 넘겨지듯이 살았던 것이다. 늘 그렇게 초조하면서도 동시에 즐기며 살아왔기 때문에 이 과정은 누구나 겪는 것이라 생각했다. '뚜렷한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기보다는 그저 이런 삶이 당연한 것이라 여겼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딱히 후회도 없다. 그땐 그런 삶이 너무 좋았다.


다만, 어느 날 몸이 나에게 조금씩 신호를 보냈다. 숨이 가빠지고, 마음이 빨리 뛰고, 아무도 시끄럽지 않은데도 내 안에서만 소음이 커졌다. 마음이 무너졌다기보다는 에너지의 총량과 중심이 흔들렸을 것이다.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마음이 무너졌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가족과 친구들, 나의 동료들..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이 내 에너지를 대신해 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혼자 있는 시간’의 중요성을 배웠다.

늘 삶은 매 순간 나에게 깨달음을 준다.


하루의 어느 순간,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이 서울 한 폭 판의 도심 속에서 홀로 고요한 시간을 잘 견딜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의외로 간단했다. 단 10분이라도 나만의 작은 테이블에서, 또는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고요함 속의 작은 리추얼들이 쌓이고 쌓여서 나를 번쩍 일으켜 세웠다. 마음의 소음과 가빠진 심장이 잔잔해졌다. 마음속 저 깊숙이, 심해층 10km 지점까지 울리는 고요한 심연의 만족감이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한다. "이렇게 하면 삶이 바뀌어요" "~이렇게 하면 180도 달라진 나를 발견하게 될 거예요" 사실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날 만한 드라마틱한 변화가 아니다. 단지,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서울의 빠른 리듬 속에서 적당히 그 리듬을 잘 타며 스며들어 나만의 방식으로 잘 적응하는 것이다. 또한 중간중간에 나만의 속도에 맞는 다양한 박자의 '쉼표'를 캘린더 곳곳에 집어넣고 의도적으로, 틈틈이 나를 침묵과 사색의 세계로 집어넣었다는 것뿐이다.


악보에는 도시의 속도는 여전히 너무 빠르고 사람들은 바삐 움직이지만, 알레그로(Allegro)와 안단테(Andante), 다양한 방식의 쉼표(Rest)를 넘나들며 이제는 세상의 속도에 나를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악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알레그로(Allegro) : '빠르게'를 뜻하는 악곡의 속도 지시어. 알레그로 모데라토(Allegro moderato) 보다 빠르고, 비바체(Vivace) 보다 느리다.

*안단테(Andante) : `느리게'의 뜻. 모데라토(moderato)와 아다지오(adagio)의 중간 속도. 걷는 정도의 속도.

*쉼표(Rest) : 음악이 연주되지 않고 쉬는 시간의 길이를 나타내는 기호 (온쉼표, 이분쉼표, 사분쉼표, 팔분쉼표, 십육분쉼표)


ⓒ루안 RU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