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삶을 위험할 정도로 농축시켰다

하이젠베르크의 피아노, 그리고 나를 지키는 리추얼에 대하여

by 류안 RYUAN

서울의 속도는 늘 나보다 반 걸음 빨랐다. 그 속도의 리듬에 발을 맞추지 못하면 엇박자가 나면서 털썩 넘어지거나, 영영 뒤처질 것 같은 공포가 나를 지배했다. 나를 갉아먹으면서 나오던 눈에 보이는 성과들.. 사람들은 그것을 '열정'이라 불렀고, 나는 그러한 모든 상황들이 내 인생의 도파민이었다. 24시간 꺼지지 않는 도심의 불빛 속의 내 모습은 마치 나의 젊음을 담보로 타오르는 불꽃 전쟁터 속에서 살아남는 자 같았다.


낮에는 모니터 너머의 디자인 시안들, 그리고 처리해야할 숱한 서류들과 씨름하며 치열하게 나를 증명했고, 밤에는 화려한 조명 아래 다양한 사람들과 섞여 웃음을 터뜨렸다. 지하철이 끊기고 택시를 타고 집에 가면서 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한강의 야경을 보며 내가 꽤 근사한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했다. "오늘도 치열하고 재밌었다" 카페인으로 억지로 깨운 감각들은 늘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날 서 있었다.


어느 날 저녁 8시,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어~일하니~? 지금 !@#$%했는데~~ " "응 근데 지금 바빠 끊어" 남편에게도 전화가 종종 왔다. 통화 거절을 눌렀지만 긴급한 상황에서는 카톡으로 "잠깐 받아봐" 라고 말해야만 겨우 전화를 받았다. 이것 뿐만이 아니라 '메인'으로 해야할 무언가에 몰두하느라 내 일상과 개인업무들을 챙기지 못하는 다양한 상황들이 많았다. 머릿속은 항상 '문제해결'이었고, 겉으로는 잔잔해 보이지만 내 마음속은 세계 대 전쟁이었다.


하이젠베르크는 그의 저서 《부분과 전체》에서 젊은 시절 친구들과 도보 여행을 하며 나눴던 대화를 회상한다. 그는 우리가 맹목적으로 기능적인 삶(일, 성과)에만 몰두할 때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배가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그 기능이 얼마나 효율적인지에만 몰두하느라, 정작 그 배가 나침반을 잃고 제자리에서 뱅뱅 돌고 있다는 사실은 잊고 산다."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부분과 전체》와《물리와 철학》의 저자인 베르너 카를 하이젠베르크는 전쟁과 같은 삶을 살았다. 그의 가장 뜨거웠던 젊은 시절은 '리얼리티 전쟁'시대였다. 딱 2차 세계대전 때 30대 후반~40대 초반쯤이었다. 딱 지금의 내 나이다. 사회 구성원으로 한창 치열하게 일할 나이인데 당시 나치는 유대인의 물리학이라고 하며 현대물리학을 탄압했었다. 총대를 메고 독일 물리학의 생존을 위해 핵무기 개발 연구소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차피 원자폭탄 제조는 당장 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그곳에서 원자로(에너지생산) 개발에 집중했다. 이후에도 괴팅겐 선언을 하는 등 핵무기 반대와 과학자들을 보호하는 데에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의 삶을 내가 직접 맞닥뜨렸다고 생각하고 가까이 들여다보면 마음이 철컹 내려앉는 기분이다. 젊은 나이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석학이었는 데다가 2차 세계대전에서 징집영장을 받고 '우라늄 클럽'이라는 거대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런 생활 속에서 '영혼'을 유지하며 생활할 수 있었을까? 하이젠베르크는 젊은 시절에는 음악가와 물리학자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했을 정도로 수준급의 피아니스트 이기도 했다. 낮에는 우라늄클럽 연구소에 있고, 밤에는 바흐를 연주했다. 어쩌면 그 아이러니한 도덕적 불안감이 가득한 상황 속에서 나를 살리는 나만의 '리추얼'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순간 중 하나인 히로시마 원폭 투하... 하이젠베르크가 연구실 칠판에 적었던 물리학 공식은 지옥도가 되어 땅 위에 펼쳐진 것이다...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으로 시작한 물리학이 수 많은 선택과 상황적인 문제로 인해 통제 불가능한 재앙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14만 명 규모의 사망으로 이어진 생각만 해도 끔찍한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독일 과학자들이 집단 우울과 패닉에 빠졌을 때,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밤새도록 슈베르트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했다고 한다. 이 스토리를 상상만 해도 마음이 울컥하면서 온몸에 전율과 소름이 돋는다.


과연 우리의 삶에 히로시마 원폭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우리는 삶을 위험할 정도로 농축시키고 있다.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멍하니 하늘을 보는 시간조차 걸러내고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가족과의 식사는 불순물처럼 제거한다. 그렇게 순도 100%의 성취만을 향해 삶을 압축할 때, 우리는 그것을 '열정'이라 부르며 신성시하지만, 물리학에서는 그것을 "폭발 직전의 불안정 상태"라고 부른다. 히로시마의 비극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다. 폭탄 내부에서 임계질량이 채워지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우리의 번아웃도, 관계의 파탄도 마찬가지이다. 갑작스러운 불행은 없다. 우리가 미친 듯이 달려가는 동안에 내면에서는 소외된 '감정'들이 임계질량을 향해 조용히, 아주 치명적으로 압축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차갑고 거대한 금속덩어리를 가슴에 품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가슴에 새겨둔 채 오늘도 야근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파티가 끝나고 돌아온 방 안의 공기는 늘 서늘했다. 수많은 사람과 잔을 부딪치고, 쉼 없이 프로젝트를 완수해 냈지만, 정작 내 마음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의 나를 보았다. 눈은 웃고 있었으나 그 안의 생경한 무표정이 나를 움찔하게 했다. 내가 놓친 것은 거창한 성공이나 명예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주 사소하고, 그래서 더 가슴 아픈 조각들이었다.


나는 '열심히' 살았지만, '살아있음'을 느끼지는 못했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기계처럼 목적지를 향해 질주했을 뿐, 그 길가에 핀 작은 꽃들의 향기를 맡을 줄 모르는 여행자였다. 폭발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내가 쌓아 올린 커리어와 통장의 숫자들이 <핵분열>을 일으켜 내 일상을 집어삼킬 때, 그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가족의 웃음소리, 건강한 육체는 불순물처럼 증발되고 검은 그림자만 남게 되지 않을까?


분명히 하이베르크가 처음 시작은 순수한 학문으로 시작한 것 처럼 순수한 열정으로 공부를 하고 일을 하면서 꿈을 키워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잊는다. 히로시마의 비극처럼 개인의 삶도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외부의 충격이 쓰나미처럼 들이닥쳐 나를 집어삼키려고 할 때, 나를 지켜줄(붙잡아줄) 닻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리추얼'이라고 부르고 싶다. 남들에게 보여주기식 루틴이 아니라 내 영혼을 온전히 지켜주고 지극히 사적인 시간 말이다. 나만의 호흡으로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같은 끔찍한 사건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일상에 들이닥치는 사건사고들과 함께 나를 집어삼킬 때, 내 영혼이 부서지지 않도록 나를 지켜줄, 나만의 건강한 리추얼을 우리는 반드시 찾아야 한다.


©루안 RU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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