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도 '디버깅'이 필요했다
몸은 누워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달리고 있던 밤들에 대하여
도시의 모든 불빛이 꺼지고 소음마저 잦아드는 새벽 1시. 남편조차도 잠들어있는 그 시간대의 완벽한 고요가 참 좋았다. 누가 봐도 완벽하게 고요해 보이는 내 방 침대 위에서, 역설적이게도 가장 시끄러운 소음이 시작되곤 했다.
"쿵, 쿵, 쿵, 쿵."
응급실로 달려가야 할 만큼 격렬한 통증은 딱히 없었다. 하지만 내 온몸이 울리는 듯한 그 심장 박동 소리는, 막 잠이 들려던 나를 집요하게 흔들어 깨웠다. 마치 내 안의 누군가가 문을 세차게 두드리며 "자지 마. 아직 긴장을 풀 때가 아니야. 아직 해결 못한 일들이 남았잖아."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파스칼은 인간의 불행이 “혼자 조용히 방에 앉아 있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라고 말했다.
나 스스로는 나름 행복하다고 자부했지만,
몸과 마음은 점점 쪼그라들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육체의 방전이 아닌, 정신의 과열이다
처음엔 몸이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더 일찍 누워보고, 꾸준히 영양제를 챙겨 먹고 (참고로 필자는 영양제 맹신자), 숙면에 좋다는 것 다 먹어도 보고, 심지어는 ‘피곤하면 쓰러져 자겠지’라는 마음으로 몸을 혹사시켜 보기도 했다. 하지만 몸을 쓰면 쓸수록, 침대에 누우면 내 심장은 또다시 크고 빠르게 뛰었다.
요즘은 힘들면 다 번아웃이라 한다. 피곤하고 지치면 ‘나 번아웃인가 봐’라는 말이 쉽게 입 밖으로 나온다. 그럴수록 나는 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난 스스로 멘탈이 강하고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나의 번아웃 비스무리한 증세들은 '육체의 방전'이 아니라 '정신의 과열(Overheating)'이었을 것이다. 몸은 침대라는 안전한 곳에 누워 있지만, 나의 뇌세포들은 여전히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유미의 세포들> 처럼 세포들의 소리들이 와글와글 실제로 내 귀에 들리는 듯 하다.
“내일 그거 마감 맞지?”
“아까 그 말투, 혹시 기분 상했나?”
“지금이라도 다시 메일 보내야 하는 거 아냐?”
"하..지금 할게 너무 많은데"
“걔는 도대체 왜그러지”
"아 목이 너무 아픈데 병원은 언제갈까"
이 뇌세포들의 목소리들이 실제로 귀에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내 뇌는 여전히 심야근무 중이다. 불은 꺼졌고 누워있는데, 뇌세포들의 회의는 끝나지 않았다. 침대 위에서조차 나는 퇴근하지 못한 사람이다. 알 수 없는 에러가 나서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생각의 파편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다. 결국 또 내가 제일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쉬지 못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논리
나는 ‘쉰다는 것’에 대한 정의가 남달랐다. 전시회를 보러 간다던지, 공부를 한다던지, 나에게 유익한 것들을 촘촘하게 쌓아놓는 등의 업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유익한 것들을 좋아했다. 그때 나에게 ‘아무것도 안 하면서 쉰다는 것’, 혹은 ‘편안하게 널브러져 있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딴생각을 하면서도, 누군가를 기다려도, 굳이 굳이 노트북을 펼쳐놓고 무언가를 했어야만 해서 어딜 가나 노트북을 끼고 다녔다. 심지어 금요일 밤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갈 때도 노트북을 껴안고 다녔다. 업무전화도 밤늦은 시각까지 무조건 받았다. 생산적이지 않은 시간은 곧 ‘죽은 시간’이자 ‘나태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억지로 무언가를 읽고, 보고, 채워 넣으려 애썼다. 멍하니 있는 10분을 견디지 못해 불안했다. 하다못해 재미있는 콘텐츠로라도 시간을 꽉꽉 채워야 마음이 편했다.
아이러니하다. 쉴 틈 없이 빡빡하고 알차게 구글 캘린더를 채워 넣을수록 내 삶의 ‘실질적인 효율’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생물학적으로 봐도 나의 '무휴식'은 명백한 오답이었다
근육은 덤벨을 들어 올리는 순간에 커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 중에는 근섬유가 미세하게 찢어지고 파괴된다. 근육이 실제로 성장하고 단단해지는 시간은 바로 운동을 멈추고 쉬거나 편안하게 잠을 잘 때, 즉 '회복하는 시간'이다. 뇌도 마찬가지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쥐어짜면서 정보를 끊임없이 집어넣는 것은 뇌세포를 혹사시키는 '혹독한 노동'일 뿐이다. 나는 내 몸과 머리에 두툼한 쇳덩이를 짊어지고 살았다. 당연히 성장보다는 모든 일에 버퍼링이 생겼다.
우리 뇌는 깨어 있는 동안 끊임없이 정보를 처리하며 '베타 아밀로이드' 같은 노폐물(독소)을 만들어낸다. 이 찌꺼기들은 우리가 깊은 휴식에 들어갔을 때, 뇌의 청소시스템 '글림프 시스템'이 작동하여 뇌척수액이 뇌세포 사이를 흐르며 씻어낸다. 마치 식기세척기처럼 뇌 곳곳을 씻어내며 쌓인 대사 노폐물과 독성 단백질을 수거하여 뇌 밖으로 배출시킨다. 만약 쉬지 않는다면? 더럽고 냄새나는 쓰레기가 가득한 방처럼 뇌라는 방 안에는 노폐물 독소로 가득 차고, 정보 처리 속도는 현저히 느려진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캐시 메모리가 꽉 찬 컴퓨터처럼 독소가 가득가득한 뇌를 빵빵하게 돌리며 "왜 이렇게 느려!"라고 다그치면서 새벽까지 억지로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멍하니 있는 시간은 시스템 종료가 아니라, 더 잘 돌아가기 위한 '최적화' 과정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머리로는 알았지만, 뼛속깊이 깨닫지 못했다. 급박한 상황들을 매일 마주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버티는 것 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 베타 아밀로이드(Beta-amyloid, Aβ) :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서 발견되는 아밀로이드 플라크(노인반)의 주요 구성 성분인 단백질 조각(펩타이드). 노화, 산화 스트레스, 유전적 요인 등으로 인해 Aβ의 항상성 유지에 문제가 생기면 비정상적으로 축적됨. 스트레스 호르몬은 뇌에서 아밀로이드 전구체 단백질(APP)의 발현을 증가시키고, 결과적으로 베타 아밀로이드 생성을 증가시킴. 만성 스트레스 및 수면부족은 베타 아밀로이드 축적을 가속화시킴.
내 삶에도 '디버깅'이 필요했다
나는 디자이너였지만 파이썬이나 HTML 같은 코딩언어를 아주 조금 맛보기로(?) 배운 적이 있었다. 언어들은 아주 대차게 냉정했다. 내 생각에 코드를 온갖 검색을 해가면서 공부해 가며 완벽하게 짰어도, 괄호 하나를 닫지 않거나 점 하나를 잘못 찍으면 프로그램 전체가 작동하지 않았다. 전문가라면 30분도 안 걸릴 것을, 그거 하나 때문에 결괏값이 안 나와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하루 종일 고생하고 밤을 지새운 적이 있다. 단 하나의 사소한 '문법 오류(Syntax Error)'가 전체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것. 그것이 코딩의 세계였다. 그때 당시에는 ai도 없었기 때문에 전문가 없이 혼자 사부작사부작 작업하면서 오류가 생기면 머릿속이 하얀 백지가 되고, 정말 귀신보다 더 무섭다.
나는 '휴식'이라는 괄호를 닫지 않은 채, 계속해서 '일'과 '생산성'이라는 명령어를 마구잡이로 입력하고 있었다. 그러니 내 뇌가 '버퍼링'에 걸린 건 당연했다. 처리해야 할 불안과 걱정의 데이터는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그걸 처리할 용량은 바닥이 나있었던 게 아닐까? 무한 루프(Infinite Loop)에 빠진 코드처럼, 나는 침대에 누워서도 "내일 뭐 하지? 아까 실수한 건 없나?"라는 생각을 강박적으로 반복했다. 겉보기에 나는 가만히 멈춰 있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내 머릿속 CPU는 과열되어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디버깅(Debugging) :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서 발생하는 논리적 오류(버그)를 찾아내고 수정하는 과정으로, 코드의 문제점을 분석하여 예상치 못한 결과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며, 더 나아가 원하는 기능이나 성능을 구현하는 필수적인 개발 작업
몸이 마지막으로 나에게 주는 "긴급경고"
잠깐 나에게 찾아왔었던 불면증과 심장의 두근거림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것이 어쩌면 공황장애의 전초전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어느 날 밤의 심장 두근거림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어진 내 몸이 띄운 파란색 블루스크린이었다.
"치명적인 오류 발생.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강제로 종료합니다."
내 삶의 코드가 꼬이지 않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디버깅(오류 수정)'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