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출근길 야생에서 나는 부처가 되기로 했다

지옥철에서 스마트폰 대신 멍 때리기

by 류안 RYUAN

“밀지 마세요!!!!!!”

아침 지하철 7호선 강남 쪽 방향 출근길, 어떤 아주머니가 하필이면 출근시간에 나와서 망했다며 밀지 마라고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낸다. 짜증이 나는 아주머니도 이해가 가고, 한번 놓치면 ‘대박 지각’ 이라서 생존위기로 인해 밀어서라도 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상황도 이해가 된다. 나는 두 부류의 경험이 다 있기 때문이다.


지옥철 속 사람들은 마치 좀비 테트리스가 된 것처럼 기괴하게 꺾인 자세로 서로에게 기대어 있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불쾌한 압박감. 이것은 흡사 전쟁터였다. 어떤 날에는 앞에 있는 사람이 백팩을 메었는데 인형키링을 달랑달랑 달고 다니며 내 얼굴을 간지럽혔다. 짜증이 확 났지만 ‘20분만 참자’ 하고 계속 보고 있으면 화가 날 것 같아 옆으로 돌아 눈을 확 감아버렸다. 잠시 시각적인 전쟁이 사그라드니 마음도 조금은 편해졌다.


출근길은 1분 1초가 생존위기이다.

출근길, 주요 환승역에서는 소위 '환승역 러닝크루'를 결성한다. 다음 갈아탈 지하철을 바로 타야 하는데, 한 번이라도 놓쳐버리면 돌이킬 수 없이 지각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통제 불가능한 상황, 수많은 어디론가 이동하려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이 상황 속에서 모두 얼굴이 사색(死色)이 되어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말 기이한 풍경이었다. 이렇게 전쟁 같은 상황 속에서도 내 시야에 들어온 몇몇 사람 중 대부분이 고개를 45도 각도로 꺾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쉴 새 없이 카톡을 하고, 누군가는 자극적인 쇼츠를 수시로 스와이프하며 미간을 씰룩 거린다. 창백한 얼굴 위로 비치는 푸르스름한 액정 불빛, 피로와 짜증, 소음이 뒤섞인 공기. 귀를 막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아수라장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동시간에 영상편집을 하거나 무언가를 처리하며 희열을 느낀 적도 많다. 5 정거장이 길게 느껴지며 느리다고 초조해했다. 1분 1초가 아까운 '속도 중독자'였다. 치열하게 살아야만 했던 모든 순간들이 마음을 더 급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나는 출근길을 일종의 레이싱 경기처럼 살았다. 환승 구간에서는 남들보다 먼저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 미친 듯이 전력 질주를 했고, 역에서 내려 회사까지 걷는 시간조차 아까워 공유 킥보드(씽씽이)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내 머릿속엔 온통 '빨리빨리'뿐이었다. 이동하는 시간은 버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했기에, 그 짧은 틈에도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확인하고 카톡으로 소통을 하고 유익한 쇼츠를 하나라도 더 보는 등 뇌를 혹사시켰다. 1분이라도 늦거나, 1초라도 멍하니 있으면 세상에서 도태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달린 대가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위한 행위들이었을까? 돈 많이 벌기? 스스로의 만족? 여러 가지 다양한 방면에서 대한민국의 성장속도처럼 나에게도 분명히 빠른 성장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일의 효율이 더 좋아진다거나 결과물이 좋았을까?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런 치열한 내 모습에 취해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덧붙여서 추가로 남겨진 것은 너덜너덜해진 신경과 비명을 지르는 목뼈였다. 심해진 거북목 증세와 목 디스크로 통증이 찾아오자, 정신이 확 들었다. 몸이 나에게 "제발 그만 좀 달리고, 고개 좀 들어!"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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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死色)이 된 사람들 vs 사색(思索)하는 출근길

폰을 끄고 눈을 감자, 비로소 내가 보였다. 나는 살기 위해 스마트폰을 가방 깊숙이 찔러 넣었다. 처음엔 불안했다. '급한 연락이 오면 어쩌지?', '지금 이 시간에 남들은 정보를 빨리빨리 습득하는데 나만 뒤처지는 거 아닐까?' 금단현상처럼 손이 떨렸다. 하지만 나는 그 불안을 꾹 누르고, 대신 SONY 헤드셋을 끼고 평화로운 음악을 들으면서 눈을 감아봤다. 흔들리는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두 발을 바닥에 단단히 붙였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웅크렸던 어깨를 펴고, 척추를 꼿꼿하게 세웠다. 정선근 교수님의 “백 년 목”이라는 책에서도 평소 자세를 어떻게 하고 지하철을 타야 하는지 알려준다. 휴대폰을 머리에서 조금 더 위쪽으로 들어 올려 목을 살짝 15도 정도 뒤로 젖힌 상태로 보라고 한다. 책에 있는 이미지를 보고 처음에 볼 땐 피식거렸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일상생활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고통스러워서 하라는 대로 열심히 실천 중이다. 그냥 안 보는 게 낫다 싶어 또 고개를 살짝 들어 눈을 감아버린다. 스마트폰을 보느라 항상 숙여져 있던 고개를 들어 정면을 향하게 하고, 턱을 살짝 위로 올렸다. 목 디스크 때문에 시작한 자세 교정이었지만, 눈을 감고 허리를 펴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시각 정보가 차단되자 지옥철의 소음이 배경음악처럼 멀어졌다. 방금 전까지 나를 짓누르던 피로감과 조바심이 발밑으로 툭, 하고 떨어져 나가는 기분. 가장 시끄러운 곳에서, 가장 완벽한 나만의 독방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SONY 헤드셋으로 노이즈캔슬링까지 해서 클래식을 들으면 더욱 완벽하다.


느리게 걷는 연습, 나를 기다려주는 시간

이제 나는 환승 통로에서 뛰지 않는다. 목적지가 조금 멀어도, 공유 킥보드 대신 두 다리로 천천히 걷기를 선택한다. 나도 모르게 빨리 걷기, 급하게 걷기를 할 때가 있는데 의식적으로 '천천히 걸어도 괜찮아'를 속으로 외친다. 모두가 우르르 뛰어나갈 때, 나는 의식적으로 발바닥이 지면에 닿는 감각을 느끼며 느리게 걷기를 연습한다. 예전에는 이 시간이 낭비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안다. 이 느릿한 호흡은 뒤처져 있던 내 영혼이 내 몸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시간이라는 것을. 고개를 숙이면 보이는 것은 타인의 삶(SNS)이나 세상의 소음뿐이다. 하지만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서 발을 땅에 온전히 디디면, 비로소 나라는 존재가 느껴진다. 오늘도 나는 지하철 한복판에서 눈을 감는다. 스마트폰에 고개를 조아리는 대신, 의식적으로 더 자주 꼿꼿하게 고개를 들기로 결심했다. 내 맑은 영혼은 구부정한 몸에는 깃들지 않을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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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분노에 전염되지 않고 나만의 평온을 지키는 법

지옥철이라 불리는 지옥 같은 지하철 출근길은 단순히 사람이 많은 곳이 아니다. 그곳은 온갖 날 것의 감정들이 여과 없이 부딪히는, 거칠고 위험한 감정의 야생이다. 매일 아침, 나는 이 쇠붙이 같은 지옥철 안과 기다리는 승강장에서 별의별 사람들을 마주한다. 내가 끼고 있는 이어폰을 뚫고 들어올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정치 이야기를 하며 삿대질하고 싸우는 어르신들, 허공을 향해 알아들을 수 없는 욕설을 쉴 새 없이 내뱉는 정신이 이상해 보이는 청년의 남자, 그리고 좁은 통로에서 어깨가 살짝 스쳤다는 이유만으로 눈을 부라리며 "아이씨"라고 시비를 거는 사람까지.


처음에는 무서웠다. 그다음엔 불쾌했고, 나중엔 화가 났다. '도대체 아침부터 왜 저러는 거야?', '왜 하필 아침부터 내가 저런 소리를 들어야 해?', '내가 뭘 잘못했냐'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고, 그들의 부정적인 에너지가 검은 연기처럼 내 몸을 '쉬이~~~~' 휘감는 기분이 들었다. 그 불쾌한 감정은 사무실에 도착해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내 잘못도 아닌데, 누군가가 뿜어낸 분노의 작은 파편에 내 아침이 엉망진창이 될 때가 많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지하철 안의 저 소란스러운 사람들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 같다는 것을. 태풍이 온다고 해서 태풍에게 화를 내는 것이 무의미하듯, 그들의 분노에 내가 반응하고 감정적으로 매몰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이 아수라장 한복판에서, 내 마음을 지켜보기로 했다. 바깥에서 아무리 천둥번개가 쳐도 단단한 유리창 안은 고요하듯, 나만의 단단한 마음의 결계를 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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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마라’라는 말은 아함경(阿含經)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이다. 첫 번째 화살은 누구나 맞을 수 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은 맞지 마라고 한다.


1. 첫 번째 화살 (어쩔 수 없는 현실/고통) : 살다 보면 누구나 맞는 고통. 시험에서 떨어지거나,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받거나, 아프거나, 투자가 실패하는 것 등 물리적인 상황. (이건 부처님도 어쩔 수 없음)

2. 두 번째 화살 (내가 쏘는 마음의 고통) : 첫 번째 화살을 맞고 나서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지?", "난 망했어", "그 사람 진짜 나쁜 놈이네!" 하면서 욕심/분노/고집으로 인해 좌절하는 감정


사람을 망치는 가장 무서운 세 가지 마음의 독

= 탐진치(貪瞋痴 -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고집)


지하철에서 욕설을 듣거나 시비 거는 사람을 마주치는 것, 그것은 내가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린 첫 번째 화살이다. 그건 그냥 일어난 사건일 뿐이다. 하지만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기분 나빠, 재수 없어'라고 곱씹으며 내 아침을 망치는 것. 그것은 내 손으로 내 가슴에 꽂는 두 번째 화살이다. 나는 더 이상 그 어리석은 자해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이 소리를 지르든 말든, 그것은 그들의 입에서 나온 자연재해와 같은 소음일 뿐, 내 내면으로 들어와야 할 메시지가 아니다. 나는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읊조린다. '저것은 나에게 하는 소리가 아니다. 저것은 그저 지나가는 바람 소리다.'





이제 나는 출근길의 소란스러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상황을 나의 평정심을 테스트하는 수행의 시간으로 받아들인다. 뒤에서 누군가 고성을 지르면 '아, 오늘도 내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내 인생이란 게임에서 NPC(Non-Player Character)가 등장했구나'라고 생각하며 허리를 더 꼿꼿이 세운다. 부정적인 에너지가 덮쳐올수록, 나는 내 안의 긍정과 평온의 에너지를 더 강하게 끌어올린다.


진흙 속에서도 연꽃은 피어난다. 가장 시끄럽고, 가장 무례하고, 가장 혼잡한 지하철 한복판. 그곳에서 타인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심호흡 한 번 하고 고개를 들어 나만의 고요한 호흡을 지켜내는 것. 이것이 내가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행하는 나만의 리추얼이자, 야생의 도시에서 나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지하철 문이 열린다. 바깥의 소음은 여전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도 내 마음의 호수는 물결 하나 없이 잔잔해지기를 바란다.


오늘도 나는 무사히, 나를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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