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 AI 시대에 10년째 사부작 종이신문을 구독하는 이유
"어? 오늘은 신문을 읽니?"
현관 앞 신문을 가져와 뒤적이는 내 등을 보며 남편이 장난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 말투에는 '구독료만 내고 분리수거함으로 직행하던 날들이 더 많지 않아?'라는 귀여운 팩폭이 섞여 있는 듯했다.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응! 오늘은 읽었거든~"
1면의 헤드라인 몇 줄과, 흥미로운 칼럼 하나. 그게 내가 읽은 전부였지만 나는 당당했다. 그리고 문득, 10년째 이 헐거운 신문 구독과 함께 일어나자마자 이런저런 일을 하며 양치질을 하면서 아침을 시작하는 것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나에게 아침의 모든 리추얼은 '지켜야 하는 엄격한 규율'이 아니라, '그냥 누리고 싶은 즐거움'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신문 읽었어?"라는 남편의 질문에, "오늘은 안 읽었어, 대신 종이 냄새가 참 좋네!"라고 웃으며 답할 수 있는 여유!
디지털/AI 시대에 10년째 종이신문을 사부작 거리는 이유
찬 공기가 으스스한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 6시. 나는 일어나자마자 잠옷 차림 그대로 현관 앞에서 잘 읽지도 않는 신문을 바스락 거리며 들여온다. 현관 앞 바닥에 놓인 회색 종이 뭉치를 집어 들 때 손끝에 전해지는 차가운 냉기, 그리고 '바스락' 하는 건조한 마찰음. 나는 이 신문을 들고 들어와 정수기 옆 바 테이블에 툭, 하고 무심하게 올려놓는다. 1면의 헤드라인을 슬쩍 훑어보기도 한다. 흥미로운 기사가 보이면 조금 더 뒤적거려 보지만, 사실 어떤 날은 단 한 글자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그대로 분리수거함으로 직행할 때도 있다. 누군가는 스마트폰만 켜면 공짜로 쏟아지는 뉴스를 굳이 돈을 내고, 그것도 다 읽지도 못할 종이 뭉치를 구독하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10년째 이 '비효율적인' 구독을 멈추지 않고 있다. 나에게 신문을 들여오는 행위는 정보 습득 그 이상의, 하루를 여는 습관적이고 감각적인 의식(리추얼:ritual)이기 때문이다. 남편의 말처럼, 나는 신문을 며칠씩 안 읽고 쌓아둘 때도 있다. 예전 같았으면 "아, 돈 아까워. 나 왜 이렇게 게으르지?" 하며 자책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내가 신문을 구독하는 진짜 이유는 정보 습득이 아니라, '디지털 세상에서 잠시 로그아웃하고 종이를 만지는 그 고요한 순간'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엄지손가락의 무한 스와이프 대신, 바스락거리는 종이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켜면, 우리는 곧바로 '알고리즘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짧은 쇼츠를 넘기다 보면 아침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그곳은 나를 자극하는 뉴스, 남들의 화려한 SNS, 확인하지 않은 카톡내용들이 뒤섞인 소란스러운 곳이다. 뇌가 깨어나기도 전에 도파민 샤워로 나의 의식을 반짝 깨운다. 그래서 나는 아침의 첫 감각만큼은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에 내어주는 것에 몸의 감각을 익혀놨다. 굳이 일부러 노력해서 진행한다기보다는 습관적인 행위에 가깝다. 물론, 곧바로 핸드폰에 직행하며 푹 빠져버릴 때도 많이 있지만 잉크가 묻어나는 거친 종이의 질감을 손끝으로 느끼는 순간이 쌓이고 쌓일수록 도파민에 듬뿍 절여져 있던 나의 뇌가 조금은 잠잠해진다. 신문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나는 신문의 쿰쿰한 냄새와 '촤르륵' 소리는 그 어떤 ASMR보다 명징하게 내 뇌를 깨운다. 종이신문 속에서도 세상의 시끄러운 잡음들이 즐비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훈훈한 이야기들도 많이 있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꼼꼼히 읽어보지 않더라도 그냥 스쳐 지나가듯이 봐본다. AI와 디지털 뉴스의 가장 큰 특징은 '무한대'이다. 스크롤을 내려도 내려도 끝이 없다. 내가 모르는 정보가 더 있을 것 같고, 더더욱 궁금해서 검색을 해가며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끝이 없다. 아무리 큰 사건이 터져도 종이신문은 정해진 지면 안에서 끝난다. 마침표를 찍고 끝이 보인다. 더 궁금해지면 AI로 검색해 볼 때도 있지만, '끝이 있다'는 감각이 나도모를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몽롱한 아침, 나를 깨우는 역동적인 양치
일어나자마자 물도 마시지 않고 양치부터 하는 건 나만의 오랜 습관이다. 밤새 입안에 고여 있던 텁텁한 공기는, 마치 어제 하루 종일 삼켰던 말들과 정리되지 못한 생각들의 찌꺼기 같다. 신문을 식탁에 올려둔 나는 칫솔을 물고 욕실을 빠져나온다. 나의 양치는 조금 유난스럽고, 훨씬 역동적이다. 나는 입안에 거품을 문 채로 거실로 나와서 베란다로 향한다. '드르륵-' 하고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킨다. 겨울에도 어김없이 아침엔 꼭 환기를 시킨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훅 하고 들어오며 환기가 될 때, 당연하다는 듯이 베란다 바로 앞의 선반 위에 비치된 인센스 향을 '딱' 피운다. 안과 밖이 동시에 시원해지는 이 감각이 좋아서 나는 칫솔을 물고 베란다 앞을 서성이다가 TV의 전원을 켜고 유튜브에서 화면배경이 예쁜 오늘의 BGM을 고른다. (여전히 양치는 하고 있다) 유튜브 스트리밍에 재즈 피아노 선율이 흐르면 칫솔질의 템포도 왠지 조금 우아해지는 느낌이다. 식탁 위로 다가가 아까 던져둔 신문의 헤드라인을 다시 한번 쓱 훑어보기도 한다. 남들이 보면 산만하다고 할지 모른다. "양치나 제대로 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에게 이 시간은 누가 보면 산만한 멀티태스킹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나에겐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지휘다. 오른손으로는 칫솔을 움직여 내 몸을 깨우고, 왼손으로는 창문을 열고 음악을 틀며 아침을 연다. 욕실에 얌전히 서 있는 대신 거실을 활보하며 내가 만드는 소음과 움직임들이 집안 구석구석에 "이제 아침이야!"라는 신호를 보낸다.
온기가 가득한 거실, 차를 내리는 시간
양치를 하면서 입안이 말끔해지면, 자연스럽게 주방으로 가서 전기포트의 스위치를 누른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고요한 아침을 따뜻하게 채운다. 찬장에서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오늘의 찻잔을 꺼낸다. 어쩌다 보니 찻잎이 모여있는 수납장 안에는 다양한 찻잎이 즐비하다. "오늘은 어떤 차를 마실까~" 구수한 향이 좋은 둥굴레차, 정신을 맑게 해 주는 녹차,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면서 찬기를 가시게 해 줄 쌍화차, 향이 가득하게 블렌딩이 되어있는 꽃차, 마음이 가는 대로 하나 골라 차망에 올려 따뜻한 물을 가득 담아 우려 본다. 찻잎의 은은한 향기와 스팀이 배경음악과 함께 거실에 퍼진다. 바로 마시지 않고 두 손으로 감싸 쥐며 온기를 느껴본다. 이 행위는 특히 겨울에 참 좋다.
차가운 신문을 만지느라 서늘해진 손끝에서부터 온몸까지 따뜻하게 녹아내린다.
나의 아침 리추얼은 매일 조금씩 바뀐다. 어떤 날은 신문을 읽는 대신 멍하니 창밖을 보며 양치질만 5분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따뜻한 차 대신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켜기도 한다.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다.
"지금 이 행동이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가?"
"감각을 통해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도록 깨워주는가?"
이 질문에 "YES"라고 답할 수 있다면,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시간조차 훌륭한 리추얼이 될 수 있다. 아침루틴을 도장깨기 하듯이 실행하느라 바쁜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남들이 좋다는 루틴을 억지로 흉내 내며 숙제하듯 아침을 보내지 말고, 나를 미소 짓게 만드는 사소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을 찾으라고.
매일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행위 자체를 즐기는 마음(태도)이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