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YUC Jan 07. 2023

건물 계단 청소 아르바이트 구하기

파면, 해임당한 나는 왜 '멋진' 교수인가?

거실 소파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아르바이트 앱을 뒤적거렸다. ‘청소’라고 키워드를 넣었다. ‘청소년’ ‘청소 미화’ ‘청소 알바’ ‘청소 미화원’ ‘청소 업체’ 등등이 검색되었다. 몇 번 검색하자 ‘계단 청소’가 눈에 들어왔다.   


‘연령무관’, ‘학력무관’, ‘경력무관’. 완벽하게 나의 조건에 맞았다. 특별히 학력무관에서 마음이 놓였다. 학력을 속여도 된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학력이 거추장스럽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90년대 초반 교사로 일 할 때였다. 아마 ‘콜라텍’이었던 것 같다. 궁금해서 동료들과 들어가려고 했다. 입구에서 막았다. 중고등학생만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때 처음으로 나이가 거추장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학력의 부담감은그때의 느낌과 다르지 않았다.


문자를 남겼다. 50대 중반, 청소이력 없음, 중소기업 명예퇴직.

      

하루가 지나서 문자로 연락이 왔다. 일이 있어서 바로 확인하지 못하였다는 설명이 있었다.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그와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00 약국 앞으로 와서 전화하면 나머지 위치는 다시 알려준다고 했다. 간단한 자기소개서를 가져오라고 했다. ‘간단한’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하긴, 청소하는 사람의 신상을 낱낱이 알고자 하면 오히려 사람 구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 같았다.  

    

학력 문제가 자유로워지자 채용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사무실 위치도 걸어서 대략 30분이면 되었다. 모든 조건이 나를 위해서 있는 것 같았다.      


계단 청소가 마음에 든 것은 단순히 학력을 속일 수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긴 속이는 것도 아니었다. 구태여 박사까지 마쳤다는 것을 말할 필요가 없을 뿐이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빗자루와 대걸레질을 하면 저절로 운동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울증과 당뇨 때문이라도 움직임이 필요한 나에게는, 그야말로 일석이조(一石二鳥)였다. 운동하면서 돈을 번다고 생각하자 자존감이 높아졌다. 빨리 일하고 싶었다.  

    

사장은 원래 열쇠 수리공이라고 했다. 잠긴 문을 따 주는 것도 주된 수입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수입이 점점 줄었다고 했다. 디지털 자물쇠가 보급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빌라 계단 청소를 부탁했는데, 생각보다 수입이 괜찮아서 열쇠를 접고 본격적으로 계단 청소를 시작했다고 했다. 계단 청소로 아들과 딸의 집도 한 채씩 마련해 주었다고 했다. 거실에는 그동안의 해외 여행지 사진이 걸려있었다. 내가 못 가본 남미도 있었다. 그의 자랑이 내 것처럼 느껴졌다.   

   

사장은 나에게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오라고 했다. 나는 아무런 토도 잘지 않았다. 평소와 달리 나는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왔다. 어디 간다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약속한 곳으로 가자 사장은 자신의 청소 구역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계단을 올라갈 때 구석구석 잘 살펴보라고 했다. 거미줄이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맘에 들려고 목을 쑥 빼고 계단 구석구석을 과장되고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사장은 한 번 쓴 걸레를 잽싸게 갈아 끼우는 방법을 몇 번씩이고 연습시켰다. 생각보다 잘되지 않았다. 신경이 쓰였다. 혹시나 시작도 하기 전에 잘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사장은 대걸레로 계단 바닥 닦는 방법을 몇 차례 시범 보여주었다. 지나치게 꾹꾹 눌러 힘을 쓰지 말라고 했다. 약물 때문에 살살 훑어도 먼지가 잘 털어진다고 했다. 체육과 학생들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자신이 없어졌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쓰지 않던 근육을 쓰기 때문에 처음에만 힘들고 좀 지나면 익숙해진다고 했다. 사장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러 가지로 헛갈렸다.     


세 시간가량 함께 일했다. 사장의 와이프가 소질이 있다고 칭찬했다. 사장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사장의 집으로 갔다. 사장의 와이프가 직접 점심을 해서 주었다. 채용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밥을 먹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사장은 청소 시 주의점을 적은 종이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대략 십여 가지였다. 사장은 오늘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다시 정리해 주었다. 묘한 권위가 느껴졌다. 슬쩍 주눅도 들었다.


차를 마시고 나자 사장의 친구가 왔다. 미리 언제 오라고 약속한 것 같았다. 친구의 외모는 사장과 달리 껄렁껄렁해 보였다. 담배 냄새가 났다. 싫었다. 사장은 친구가 내 사장이 된다고 소개했다. 자신의 구역 일부를 친구에게 떼어주었다고 했다. 자신은 일을 더 줄일 생각이라고 했다. 돈도 벌만큼 벌었고, 무엇보다도 함께 청소하는 와이프가 계단 오르내리는 것을 힘들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장의 친구와 일한다는 것에서 마음이 불편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완전한 을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할 때 부르기 쉬운 호칭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를 '류 과장'으로 부르기로 했다. 나는 아무 경험도 없었지만 졸지에 빌라 계단 청소 전문 업체의 과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하긴 대학에서 학과장으로 있다가 잘렸으니, 어쩌면 그들이 나를 다시 과장으로 불러준 것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나는 오전 6시 30분에 청소를 시작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파면, 해임당한 '멋진' 교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