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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다 7시간전

서랍에 글을 넣어두었다

언제든 꺼내서 고치고 발행할 수 있다면



어제 동서문학상 맥심상 상품이 왔다. 대상, 금은동상, 입선도 아닌 그 아래 맥심상에도 이리 마음을 써주니 감사했다. 상장에 캘리그래피 액자라니, 이런 것 처음 받아본다. 날씨도 겨울처럼 추워지니 커피가 당겨 카누와 맥심 모카골드까지 3잔을 마셨다. 퇴근 후에는 집에서 하이볼을 마시며 조촐하게 자축했다. 덕분에 이번주부터 시작한 다이어트는 물 건너갔다.


왜 기쁨은 오래가지 않을까? 처음 맥심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며칠, 그리고 내년에 나올 7인의 공저 출판사 계약하고 일주일, 딱 그 정도가 순수한 기쁨의 유효기간일까? 기쁨은 휘발성인 반면에, 뭉근한 슬픔과 권태는 오래간다. 나의 감정 상태를 '기분부전증'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과 동시에 부정적인 감정은 일상을 잠식하고 떠나지 않으려 한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훌쩍 짧은 여행을 가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풍경을 보고 자연 속을 거니는 것은 충분한 기분 전환이 된다.


일상의 쳇바퀴 속에서 쓰고 싶은 글은 날아가고, 쓰고 싶은 글보다 읽고 싶은 글이 더 많아지고, 혹은 읽고 싶은 책 보다 보고 싶은 영상이 더 많을 때, 어제 받은 소포는 하나의 채찍이 되어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래서 기쁨보다 슬픔이 더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뛰어난 작가도 많고 훌륭한 책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냥 넌 네 글을 쓰라고 누군가 말하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쓰고 싶은 글이 많았는데, 점점 글을 쓰려는 욕구가 떨어지는 것은 갱년기 탓인가. 나이 탓 하지 말고, 일상의 피로와 허무에 쓰러지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는다.


브런치에는 '작가의 서랍'이 있다. 블로그의 임시저장 글보다 '작가의 서랍'이라고 하니 얼마나 있어 보이는지. 오래된 나무로 만든 서랍에는 칸칸마다 다른 종류의 글이 꽤 많이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단상, 에세이, 습작 소설 등. 언제든 서랍에서 마음에 드는 글감을 꺼내어 쓱쓱 고쳐서 발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행히도 내 작가의 서랍은 비어 있다. 비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채울 공간이 다는 뜻이기도 하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마음 귀퉁이에서 꺼낸 것은 작은 희망 하나. 그 마음 하나로 글을 쓴다. 잘 쓰기 위해 묻어두지 말고 그냥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 매일 쓰지는 못해도 글의 끈을 놓지 않고 오래 쓴다는 것, 상을 받든 받지 못하든 그것이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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