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라 늦잠 자고 있었는데 아이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와 나와 아내 사이에 슬그머니 누웠다. 주중에는 아무리 깨워도 일어날 생각도 없는 녀석이 주말만 되면 무슨 에너지가 넘쳐서 일찍부터 일어나 돌아다닐까? 뭐 흔히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5분이라도 더 자려고 눈을 다시 감았다.
옆에 누워있던 아이가 킁킁거리며 뒤척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계절성 알레르기 때문에 코가 막혀서 그러는 줄 알고 무시했다. 그런데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아이한테 울고 있냐고 대뜸 물었다. 나도 잠이 확 깨서 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봤다. 아이는 정말 눈물을 흘리며 훌쩍이고 있었다.
아이의 작은 눈에서 눈물이 왈칵왈칵 쏟아져 나와 뺨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다그쳐 물어도 아이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눈물만 뚝뚝 흘렸다. 말을 하지 않으니까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괜찮으니까 얘기해보라고 달래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냥 베개에 고개를 파묻고 펑펑 울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어젯밤에 재울 때까지도 아무 탈 없이 조용히 잠들었던 아이가 아침부터 서럽게 울어대는 상황이 우리 부부를 적잖이 당황하게 했다.
나는 우는 아이 곁에 앉아서 손을 잡고 등을 쓸어주기만 했다. 아내는 아이한테 티슈를 건네주고 진정되길 기다렸다. 5분이나 흘렀을까? 아이는 몸을 일으켜 쿠션에 기대어 앉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
“종이랑 연필을 좀 줄 수 있어요?”
“그게 왜 필요해?”
“그거 주면 왜 우는지 말해줄게요.”
“알았어. 가져다줄게.”
아이의 손을 잡고 거실로 나왔다. 아이가 소파에 앉더니 다시 울기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혹시 짐작이 가는 게 있는가 하는 표정을 서로 말없이 주고받았다. 한참을 울고 나서야 아이는 종이와 연필을 달라고 했다. 백지 위에 집을 쓱쓱 그리더니 그 속에 자기와 엄마, 아빠를 함께 그려 넣었다. 잠시 후에 대문 바깥에 나간 자기를 한 번 더 그렸다. 문을 닫는 시늉과 ‘쾅’ 하는 소리를 내더니 다시 울음보를 터뜨렸다.
“엄마가 혼내고 아빠가 문을 세게 닫고 나를 밖으로 쫓아냈잖아요!”
“우리가 언제 그랬어?”
아이를 키우면서 화가 난 적은 많았지만 한 번도 아이를 집 밖으로 쫓아낸 적은 없었다. 그러니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아이한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꿈에서 그랬잖아요.”
“아빠랑 엄마가 그랬어?”
꿈에서 엄마랑 아빠가 자기한테 너무 무섭게 행동했다는 소리였다. 아이는 그전에도 꿈에서 일어난 일을 가지고 자주 화도 내고 울었지만, 이번에는 강도 높게 울어서 놀랐다. 엄마 품에 안겨서 아기처럼 우는 아이를 보니 헛웃음이 나왔지만, 꾹 참았다. 혹시라도 아이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가 아무리 잘못해도 집에서 쫓아내지는 않을게.”
“엄마도 약속할게.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꿈에서라도 너를 쫓아내서 미안해.”
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아이가 느꼈던 감정은 소중하다. 꿈이 얼마나 무섭고 생생했으면 그림까지 그려가며 자세하게 들려줬을까 해서 안쓰러웠다. 혹시 그런 꿈을 꾸게 한 다른 이유가 있을까? 내가 아이를 지나치게 혼내기만 한 건 아닐까?
최근에 내가 아이한테 잔소리를 많이 하긴 했다. 컴퓨터 게임만 하려고 해서 주의를 주었고, 어디서 욕을 배워서 쓰길래 혼쭐을 냈다. 잘못된 행동은 반드시 교정해줘야 하지만 내가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너무 무섭게 얘기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봤다.
아이가 꿈 얘기를 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지금 아이가 겪고 있는 감정을 살필 기회를 줘서 다행이다. 아이가 처음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학교생활 얘기를 전혀 안 해줘서 답답했던 적이 많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잘 들어주고 계속 물어보니까 아이가 조금씩 학교 얘기를 한다. 그나마 대화의 창이 열려 있으니까 아이가 꿈 얘기도 솔직하게 터놓게 되었다고 짐작한다.
아이랑 대화하려고 작은 실천을 하나 시작했다. 학교에 차로 데려다주던 방법도 버리고, 아이의 손을 잡고 등교하는 일이다. 우리는 걸으며 주로 시시한 얘기를 나눈다. 아이가 요즘에 관심 있는 게임 캐릭터나 전략을 꽤 진지하게 늘어놓는다. 쓸데없는 소리라고 무시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 시간을 훈계하는 데 쓰기보다는 아이의 얘기를 듣고 맞장구쳐주려고 한다. 채 10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진심으로 듣고 대화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아이와 내가 온전히 대화할 수 있는 금쪽같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꿈 얘기를 들은 날에는 잔소리를 덜 하고 아이를 한 번이라도 더 안아줬다. 그날 아이한테 필요한 건 바보 같은 짓을 해도 내쫓지 않고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부모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이를 바르게 키우면서도 상처를 주지 않는 균형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주게 되는 일이 있다. 힘든 순간에 아이가 스스로 치유할 수 있게 부모는 곁에서 잘 지켜줘야 한다.
울음 섞인 꿈 이야기도 아이가 보내는 하나의 강력한 신호다. 책의 행간을 읽듯이 꿈 이야기 속에서 아이의 감정의 결을 보고 이해하려고 했다. 온몸으로 전하는 메시지를 잘 받아주었더니 아이와 나 사이에 단단한 끈이 하나가 더 이어진 것 같아서 기쁘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