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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의미 Ryu Euimi Feb 29. 2024

당신은 디깅러(Digginger)인가요?

https://youtu.be/qxuiqyif8M0?si=S_PlArhlwvY1KFG-


그런 날이 있다. 영화도 보기 싫고, 책도 읽기 싫고.. 그저 이불속에서 핸드폰만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자주 하는 행동이 있는데, 왓챠피디아 앱에 들어가 영화나 드라마, 책을 무한 검색하고 [보고싶어요] 버튼을 눌러 보관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모은 영화가 1500개가 넘는다. 앞으로 볼 영화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문제는 보고 싶어만 하고 잘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쌓여만 가는 보관함을 보며 쓸데없는 걸 한다고 생각했는지, 보고 싶은 영화가 많으면서 보려는 시도 조차 하지 않는 내 모습이 별로였는지 그동안 나는 꽤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럼에도 이 행위를 끊어낼 수 없었다.


디깅(Digging)

디깅은 ‘파다’를 뜻하는 영어단어 ‘Dig’에서 파생했다. 자신의 관심사에 깊이 파고드는 행위를 말한다.

이를 즐기는 사람을 디깅러(digginger)라고 하며,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특정 콘셉트·캐릭터에 집중해 몰입하는 ‘콘셉트형 디깅’,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 소통하며 몰입하는 ‘관계형 디깅’, 마지막으로 소품뿐 아니라 경험과 관계까지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수집하며 만족과 과시를 추구하는 ‘수집형 유형’이 있다.

결국 디깅은 좋아하는 분야를 발견하고, 과몰입하고, 자신의 취향을 확립하고, 표현하는 등에 집중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내가 하고 있었던 행위가 디깅인 셈이다.


나는 지금까지 디깅이 음악 분야에만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정해진 분야는 없다. 생각보다 디깅은 우리에게 가까이 있었다. 예를 들어보자. 최근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내가 선호하는 장르의 댄서들을 찾아보는 일이 잦아졌고, 틈만 나면 감각 있는 꽃집들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놓곤 한다. 이제 어느 지역에 가도 마음에 드는 꽃다발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R&B에 꽂히고 나서는 유튜브 뮤직을 통해 내 취향의 음악을 모으기 시작했다. 또한, 레드벨벳과 권진아를 포함하여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다른 팬들과 함께 ‘덕질’을 하기도 한다.


Copyright ⓒ 유의미 Ryu Euimi


내 취향 데이터를 늘리는 것, 왜 필요할까?

이에 대한 해답은 디깅 과정 안에서 찾을 수 있다. 나를 미치게 하는 분야가 생겼을 때 주로 디깅을 시작하게 되는데, 나는 이 과정에서 내 취향을 완전히 확립했다.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오롯이 내 취향만 마주칠 수는 없다. 분명 조금씩 다른 것들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나는 ‘왜’ 이것이 취향인지, 혹은 취향이 아닌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 분야 안에서도 어떤 것을 더 선호하는지 명확해질 수 있는 것이다. R&B 중에서도 특히 비트가 돋보이는 음악을 좋아하고, Masego의 음악을 사랑하게 된 사실을 나는 디깅 후에 깨달았다. 취향을 기반으로 한 탐구는 나에게 맞는 활동을 찾아가는 첫걸음일 것이며, 나를 잘 알게 되는 가장 빠른 길일 것이다.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 천만 관객을 보유한 영화 등 다들 좋다고 하는 선택을 두고 나의 취향을 찾아 마구 파는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꽤 귀찮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를 더 알고 싶다면 혹은 고유한 취향을 찾고 싶다면, 지금 당장 디깅을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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