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는 꿈결처럼 스며들었다가 어느새 흘러갔다. 기숙사로 돌아갈 둘째와 다시 짐을 꾸렸다. 작은 어깨에는 책가방을 메고, 손에는 부피 큰 이불 가방을 들고, 뒤로는 캐리어를 끈다. 가냘픈 체구에 세 개의 짐을 메고 가는 모습이 짠하다. 버스에 오르는 아이의 뒷모습이 멀어질수록, 마음도 함께 따라간다. 내려서 30여 분을 걸어간다 하니, 그 길이 유난히 멀게 느껴진다.
귀가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한 달에 한 번뿐인 귀가, 우리 가족에게는 기다림 끝의 축복 같은 시간이다. 둘째가 오기 전부터 아내는 아이가 먹고 싶다던 음식을 떠올리며 시장을 돌았다. 식재료를 고르는 손끝에는 기억이 묻어 있었다. 기숙사 식단이 아무리 풍성해도, 엄마의 손맛에는 미치지 못함을 아내는 잘 알고 있었다.
아내는 부지런히 장을 보고, 조용히 부엌에 선다. 칼끝이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가 하루의 리듬처럼 집안에 번진다. 그 리듬 속에서 향이 피어나고, 정이 끓는다. 둘째는 엄마의 밥상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학교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그 곁에서 조용히 듣는다. 이 시간이, 이 평범한 저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밤이 깊으면 전화벨이 울린다. 자취 중인 첫째의 전화다. 아내는 첫째의 하루를 받아내며 긴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준다. 두 딸은 어릴 적부터 엄마의 그윽한 눈빛을 마주하며 자랐다. 엄마에게 경청하는 법을 배웠고, 그 마음의 깊이를 닮았다. 세상살이에 부딪히면, 지금도 가장 먼저 엄마를 찾는다.
얼마 전, 첫째의 친구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내는 “그럴 수도 있지요. 예, 그래요.” 하고 다정히 응대했다.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전화를 끊은 뒤, 첫째에게 자초지종을 묻고 차분히 짚어주었다. 다그치지 않는다. 잔잔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한다. 화를 내기보다 이해로 품고, 꾸짖기보다 기다림으로 이끈다. 그런 아내의 깊은 사랑 속에서 두 딸은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났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배웠다.
두 딸이 이렇게 밝고 단정하게 자랄 수 있었던 건 오롯이 아내 덕분이다. 아내는 두 아이의 가슴에 따뜻하고 깊은 사랑을 심어주었다. 아내의 은덕에 힘입어 두 딸은 정중하고 바르게, 이웃에 대한 배려심을 품고 자라주었다. 작은 일에도 큰소리 내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채근하지 않고 조곤조곤 살피는 지혜 ― 아내가 보여준 삶의 방식을 우리는 어깨너머로 체득했다.
저녁 무렵, 아내가 부엌에서 야채를 씻는다. 창가로 스며든 빛이 아내의 어깨를 감싼다. 요리를 준비하는 아내의 뒷모습에는 묵묵한 성스러움이 깃들어 있다. 그 순간 문득 깨닫는다. 우리 가족의 평안은 바로 저 손끝에서, 저 고요한 리듬에서 피어나고 있음을. 세상의 소란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박자 ― 그 리듬이 아내에게 배어 있다. 그리고 그 리듬이, 우리 가족의 사랑을 지탱하며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