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이 순간 내가 존재하고 있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일 것이다. 그 감사의 대상은 부모님이요, 나를 지켜주시는 신이며, 가르침을 주신 스승님들이다. 또한 지금의 나를 지도해 주신 교수님과 훈육요원들, 그리고 곁에서 함께해 준 모든 사람들 역시 그 대상이다. 고난 속에서 때로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그것은 결국 잠시 스쳐 지나가는 감정일 뿐이다. 이번 하기 군사훈련(이하 하훈) 기간 동안 4학년 생도들의 훈육과 훈련을 위해 애써 주신 훈육요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우리 기수 모두가 무사히 훈련을 수료했음에 감사한다.
하훈 7주는 숨 가쁘게 흘러갔다. 1학년 생도를 대상으로 한 교관화 실습을 준비하고 강의하며 보낸 3주, 육군훈련소에서 훈련병 생활을 지켜보고 조교 임무를 실습하며 보낸 1주, 전방 지휘 실습으로 야전부대에서 보낸 2주, 그리고 이동과 정비에 소요된 1주. 지나고 보니 총 7주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있었다.
이번 하훈은 장교에 준하는 대우를 받으며 비교적 신사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던 기간이었다. ‘자율에 바탕을 둔 소대장 준비 기간’이라는 표현이 올해 하훈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육군훈련소에서 훈련병 생활을 지켜보며, 장차 나의 소대원이 되고 부대원이 될 사람들의 훈련병 시절과 그들의 사고방식, 의식을 나름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동시에 나 자신의 기초군사훈련 과정과 1학년 시절을 되돌아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전방 지휘 실습에서는 예비사단과 전방사단이라는 성격이 다른 두 사단에서 소대원들과 함께 먹고 자며 많은 것을 느꼈다. 그 경험은 단순한 인상에 그치지 않고, ‘내가 소대장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고민으로 이어졌다. 앞으로도 계속 ‘부대원들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를 고민하겠지만, 이번 실습은 병사들의 모습과 의식 성향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병사들과 함께 생활하며 바람직한 소대장상, 그리고 소대원들이 바라는 소대장상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들과 함께한 경험과 지휘 실습을 바탕으로, 나만의 지휘 기법을 차근차근 정립해 나가고자 한다. 실무부대를 체험하며 소대원과 함께하는 소대장의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느꼈지만, 그 과정 속에서 분명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조직이 군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적으로만 그려왔던 모습뿐 아니라 현실적인 난관 역시 크겠지만, ‘만만해서가 아니라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번 실습에서 나의 목표는 ‘관찰’이었다. 병영생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기에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해보겠다는 생각보다는, 병사들의 일상을 지켜보며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부분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대화를 통해 병사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어떻게 해야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지휘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처음에는 환경도 낯설고 사람들과도 서먹했지만, 내가 먼저 다가가자 그들 역시 마음을 열어 주었고, 실습 기간 동안 큰 갈등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소대에서 함께한 하루하루는 모두 인상 깊게 기억에 남는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가 실습했던 소대원들은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주야로 이어지는 경계근무와 작업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몫을 다하며 군 복무에 충실했다. 계급을 앞세우지 않고 병장들 또한 빗자루를 들고 청소에 나섰으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가리지 않고 성실히 생활했다. 규정에 따라 순찰근무를 수행하는 소대장, 솔선수범하는 소대장의 모습을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실습 중 좋지 않은 모습도 눈에 띄었지만, 그것 역시 훗날 나의 주변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삼아야 할 교훈으로 남았다.
이번 실습을 통해 특히 느낀 것은 자기관리와 인간관계의 중요성이었다. 조직 속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인간관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대장과 병사들의 관계뿐 아니라, 인접 소대장과의 관계, 부소대장과의 관계, 중대장과의 관계 역시 군생활에서 직접 마주하게 되는 만큼 중요하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결국 원만한 대인관계가 조직을 지탱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특별한 기교가 있어서가 아니라, 구성원들과 거리감 없이 수더분하게 지내는 태도가 삶에서 바람직한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건강과 체력 관리 등, 타인을 대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떳떳하게 세울 수 있는 자기 관리가 필수적임을 깨달았다.
야전 산골짜기 전방사단에서 실습하며 지나온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니, 그동안 많이 부족했고 마치 온실 속 화초처럼 지내왔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기도 했다. 하훈 기간의 경험은 거대한 조직 속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했지만, 그 속에서 얻은 가르침은 결코 작지 않았다. 지휘 실습을 통해 접한 군의 모습과 야전 선배 장교들에게서 들은 현실적인 조언과 당부의 말씀을 하나하나 메모하며, 앞으로의 군 생활을 위한 지침으로 삼고자 한다. 남은 생도생활 동안 지금까지 느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가며 더욱 정진하여, 장교로서의 자질을 닦고 소대장을 준비하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다.
1997년 9월 태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