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by 전우 호떡

지난가을, 어머니를 찾아뵈었을 때였다. 첫째도 할머니께 인사드리기 위해 함께했다. 첫째는 다른 일정이 있어 우리보다 먼저 떠나야 했기에 전철을 타도록 역까지 배웅해 주었다. 어머니 댁에는 늘 차로만 다녔던 터라, 전철역까지 걸어가는 길은 처음이었다. 늦은 저녁, 해는 이미 기울고 길은 어둑했지만 가로수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이 희미하게 발걸음을 밝혀주고 있었다.


전철역 입구 근처에 노점 하나가 눈에 띄었다. 무엇을 파는지 궁금해 다가가 보니, 나이 지긋한 여성 두 분이 바닥에 나물과 채소를 펼쳐 놓고 마늘과 나물을 다듬으며 장사를 하고 있었다. 노점 앞에는 한 남성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있었다.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는 어딘가 낯선 기운이 느껴졌다.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허리나 무릎이 금세 저릴 법한데도 그는 미동조차 없었다. 청년이라기엔 다소 나이가 들어 보였고, 자연스레 상인 중 한 분의 아들이겠거니 짐작하게 되었다.


첫째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 노점 앞을 지나게 되었다. 역을 오가는 사람들은 별다른 관심 없이 그 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어느새 상인 곁으로 자리를 옮겨 여전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혼자 둘 수 없어 데리고 나왔으리라. 평생 업처럼 짊어지고 지켜야 할 자식. 아픈 자식을 돌보며 살아온 어버이의 시간이 겹겹이 떠올랐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저마다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기쁨과 희망을 찾아 살아간다. 인생의 희로애락은 누구에게나 있다지만, 어떤 이는 평생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간다. 모든 인생이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까.

가로등 아래, 자식을 곁에 두고 있어야만 하는 어미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삶의 한쪽을 내어주고 자식의 몫까지 감당하며 살아가는 수고를 어떻게 견뎌왔을까. 노점에서 만난 그의 눈망울에는 총기가 없어 보였지만, 어머니 곁에 있으라는 말은 묵묵히 따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애달픔만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 안에서 희망을 읽었다.


그들은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어려운 이웃으로 남기보다, 가정 안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힘겹게나마 서 있으리라 믿는다.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을 받아들이고, 인생에 주어진 숙제를 외면하지 않은 채 그 자리를 지키는 일. 그것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삶이다. 서로의 짐을 나누며 어떻게든 오늘을 건너고, 비록 더디더라도 끝내 자기 자리에서 주저앉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가슴 깊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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