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 활동의 좋은 점 중 하나는, 공연을 빌미로 평소 가보지 못한 곳을 두루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연주 여행은 통상적인 여행에 비해 제약이 많다. 대개는 정해진 일정대로 움직여야 하고, 웬만해선 공연장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며, 공연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어디 마음껏 빠져들지도 못한다. 따라서 경험의 함량만 놓고 보면, 자유 여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대신 얻는 것도 있다. 한시적이나마 우리 스스로가 새로운 장소, 말하자면 ‘여행지 속의 여행지’를 만들고 있다는 감각이다. 초대 받음과 동시에 초대하는 입장이라고 할까. 연주 여행에서 우리는 여행자임과 동시에 사람들이 거닐고 머물 수 있는 ‘음악적 여행지’가 된다. 이 감각이 여행자로서 경험의 폭을 제한하면서도 특별하게 만든다. 나아가 음악이라는 작고 특수한 렌즈를 통해 해당 지역의 내밀한 표정을 마주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연주 여행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그렇긴 해도, 최근 섬에서 눈바람 맞으며 진행한 촬영은 정말 극기였다. 촬영 내내 ‘그래, 이건 시베리아 같은 극한지 공연을 위한 예비 훈련이야’라고 되뇌었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