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넘어 : 나의 해방여행

by 미쎄쓰 애듈란

나는 이 여행을 '해방여행'이라 명명했다. 만료된 여권을 다시 발급받는 것으로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여권용 증명사진을 찍고 여권을 신청하여 발급받기까지 3일 정도가 소요되었다. 그러고 보니 증명사진을 찍는 것도 10여년 만이었다.


다음 해야할 일은 비행기표를 예매하는 일이었는데 깜짝 놀랄 고백 한가지를 하자면 스스로 인터넷을 활용해 항공권을 예매한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22살 배낭여행을 떠났을 땐 여행사를 통해 왕복항공권을 구매했었고, 그 후 해외이주를 했을 때나 여행을 다닐 때는 모두 남편이 예약을 했었기 때문이다. 출발 날짜, 좌석의 위치, 경유 유무, 경유시간, 항공사 등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옵션을 비교하는 것에 최적을 선택을 해야한다는 압박감과 피로감을 느꼈다. 최적의 선택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이 여행에서 나만의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걸음을 떼고 나니, 내 안에 있던 막연한 두려움이 조금씩 걷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준비한 것은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는 일이었다. 이것 역시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발급 방법과 준비물, 면허시험장의 위치를 찾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막상 발급 절차는 매우 간단했다. 앞면은 한글로, 뒷면은 영문으로 된 면허증을 받아들자 가슴이 쿵쾅거렸다. 면허를 딴 지 20년이 넘었지만 나는 아직도 아는 길만 가는 동네 드라이버다. 물론 결혼 전 회사를 다닐 때 동부간선도로를 통해 강북에서 강남까지 출퇴근을 하기도 했지만, 임신 후 운전대에서 손을 놓게 되면서 운전은 남편의 몫이 되었다. 또한 내 차가 아니면 절대 운전대를 잡지도 않았는데, 20년 무사고임에도 불구하고 혹시 남의 차에 기스를 내는 등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번 해방여행에서 나는 이 두려움도 넘어볼 생각이었다.




남편은 결혼하고 거의 매 해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해외를 다녀왔다. 그럴 때마다 '마누라도 다녀와요.' 라고 말했지만 그동안 나는 한번도 실행에 옮긴적이 없었다. 남편은 내가 혼자서 여행을 떠날 용기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매번 그렇게 말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내가 항공권을 예매하고, 국제운전면허증까지 발급받으며 차곡차곡 떠날 준비를 시작하자, 그의 마음도 편치 않았던 것인지 어느 날은 '나만 두고 정말 갈 거야?'라며, 내 마음 한구석에 있던 그와 함께 떠나고 싶은 마음을 자극하기도 했다.


남편의 말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혼자 떠났다. 출국장에서 그와 마지막 포옹을 하며 '다녀올께요'라고 말할때는 어린이집 등원 첫날 부모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처럼 아주 잠깐 엉엉 울기도 했다. '다녀올께요'라는 말이 그렇게 슬프게 들리다니. 아마도 나의 안전지대(남편)를 벗어난다는 불안감과 앞으로의 여정을 혼자 감당해야만 한다는 외로움에 순간적으로 압도되었던 것 같다.


출국장에 들어서자 엄청난 인파와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가 긴장감을 더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더니, 곧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갱년기 증상 때문인지 긴장한 자의 자연스러운 신체현상인지 모를 매우 볼썽 사나운 몰골로 출국심사를 무사히 마치고 게이트에 가까워질수록 일상을 벗어난다는 희열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감각이 반가웠다. 핀란드에 가면 만나야 할 사람들, 가야 할 곳들,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하며, 나는 두근두근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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