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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홀러 류 씨 Sep 27. 2017

[프로워홀러의 네 번째 워킹홀리데이-대만편]

4.프로무소유(?)의 소비

브런치에 따로 올려야겠다고 생각한 이유. 워홀 카페에는 두 개의 글로 나누어 올렸는데 사실 원본이 있고, 너무 잡소리가 길고 양도 많아 워홀 카페에는 줄이고 두 개로 나누어 업로드. 근데 내용상 브런치에 올리는 글스러워서(?) 올려야겠다 싶어 올리기로. 쓰다가 한글 문서로 옮겼더니 7페이지나 되길래... 카페에서 작성->문서로 옮김->이후에 수정이라 카페의 글과는 조금 추가, 변경된 부분이 있다. 맞춤법 검사도 안 하고 나누어버려서 따로 검사하자니 귀찮아서 이번엔 패스.


대만 워홀이 오늘(9/27)을 기준으로 100일 남았다. 100일 후면 정말 정년 퇴직이야...ㅠ_ㅠ


원글

[프로워홀러의 네 번째 워킹홀리데이-대만편] 

4.프로무소유(?)의 소비 

① 절약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워홀 생활 전체)

http://cafe.naver.com/woholfriends/16623

② 애초에 절약하지 않는다. 다만 '강제 절약'만 있을 뿐(대만 워홀 한정)

http://cafe.naver.com/woholfriends/16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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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무소유의 소비



1. 애초에 무소유의 삶     


나는 현재 막바지에 접어들려는 대만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포함해 총 네 번의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했다. 첫 워홀이었던 일본 워킹홀리데이와 이후의 호주, 독일, 대만의 워킹홀리데이에서의 소비 생활은 많이 다르다. 일본 워홀과 3개국 워홀 사이에 3년의 일본 유학 생활과 3년 반의 한국 생활이 껴있는데, 3년의 일본 유학 생활 동안은 '소비'의 기간이었고 한국에서의 3년 반은 '무소유'의 기간이었다.      

일본 워홀 생활 5개월 쯤이 되었던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7년 12월, 한국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일본에 남을까 말까 고민하던 차였고, 하고 싶은 일도 생겼고, 주변의 일본인들은 모두 내게 '워홀이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냐'고 물었다. 그런 질문에 나는 늘 '모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인 나라에선 살지 않을 거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아마 대통령 선거 다음 날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일하던 일본 음식점에서 송별회가 있었다. 이날의 최대 화두는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는데 류상은 과연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가 말 것인가'였고, 나는 잔을 들고 일어서 "여러분, 저는 그 후보가 당선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지 않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대통령인 나라에서 단 하루도 살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선언했고 모두가 박수를 치며 환호해주었다. 그렇게 나의 20대 전체를 투자하는 '탈한국'(요즘 말로 '탈조선)이 시작되었다. 처음 일본으로 워홀을 갈 때만 해도 1년 후에 한국에 귀국해 복학하는 것이 계획이었으나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내가 하도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한국에 안 돌아갈 거야'라고 엄포를 놓자 가족 중 유권자 세 명 전원이 그 사람에게 투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싫어했던 이유는 그 사람이 서울시장일 시절 나는 매일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버스를 타고 통학하고 아르바이트를 다녔는데, 어느 날 서울이 온통 공사장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국토를 난도질 할 거라 생각했고, 그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실제로 난도질을 했더라.(나는 2011년 여름에 한국으로 귀국할 때까지 사대강이 그냥 실체 없는, 존재하지 않는 건 줄 알았다. 믿을 수가 없어서..)     

아무튼. 이러다보니 나의 소비는 '앞으로의 유학 생활'에 대비한 소비가 되었다.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나는 내가 그렇게 그릇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혼자 사는 집에 젓가락 열 벌이 웬 말이오, 컵은 왜 이렇게 많고 요리도 하지 않는 인간이 후라이팬은 왜 세 네 개씩이나 있고 접시는 왜 이렇게 많은가. 옷, 가방, 신발 등등은 물론 무슨 잠옷이 그렇게도 많은지. 한 번은 전문학교 유학 시절에 6조짜리 우리 집에 친구들이 열 명 가까이 놀러온 적이 있는데 모두가 갈아 입을 옷이 있었다. 다른 유학생 친구 집에 가면 젓가락이 한 벌 밖에 없어 편의점에서 받아와야했고 접시도 부족했는데 우리 집은 열 명이 와도 끄떡없었다. 갑작스럽게 귀국을 정했다. 311 지진 이후의 일본의 '절약'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정신적으로 힘들었고, 매일을 '311 이전의 평험한 하루를 돌려줬으면, 단 하루라도 보통의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보냈다. 연이은 서류, 면접 탈락은 일본 생활에 회의감을 주었다. 귀국에 대해 많이 고민했으나 나는 더 잇아 고민하는 것 조차도 귀찮아 의외로 너무 쉽게 귀국을 질러버렸다. 

귀국을 해야하니 집을 정리해야한다. 집 안을 둘러보았다. 311 지진 당시 여동생이 놀러와 내 방에 있었는데, 옆 방에선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내 방은 하도 물건이 많아(....) 아무 것도 떨어지지 않았다는 그 물건 많은 방을 둘러보았다. 이 모든 것을 다 가져갈 수는 없다. 옷도 한국에서 입을 수 있는 옷과 입을 수 없는 옷들이 있어 분리를 해 버려야만 했고, 내가 하나 하나 사 모은 그릇, 요리 도구들도 모두 버려야만 했다. 그릇들은 충동구매도 아니라 여러 번 찾아가 보고 보고 또 본 후에 그래도 역시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구입한 것들이라 어느 것 하나 속상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문제는 이불이었다. 아무래도 집 해약일까지는 덮고 자는 것이 이불이다보니 해약일 직전(귀국하기 직전의 한 달 동안은 친한 언니 집에서 지냈다)에 버려야했다. 귀국 이삿짐을 업체를 통해 보냈고(여덟 박스+코타츠 한 박스+악기 한 박스, 총 열 박스) 이불은 해약일 직전의 마지막 수거일에 버리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도 못한 문제가. 하필 수거일에 태풍이 와서 비가 많이 내려 이불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이 날이 지나가면 다음 수거일까지는 1~2주일을 기다려야하는데 나는 그 사이에 집을 비워야만 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옆 동네 수거일에 버리기'. 다행히 이틀 뒤에 옆동네가 이불류, 의류 수거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불과 옷들을 걸어서 편도 30분 거리의 옆 동네에 버리기로 결심했다. 부피가 워낙 크고 이것이 잘못된 행위일까봐 두려워 새벽시간을 이용했고, 총 세 번의 왕복 끝에 이불과 옷들을 버렸다. '어차피 같은 행정 구역이고 수거일만 다를 뿐 비 오는 날 버려서 다 젖고 썩은 내 나는 것보단 나으니까'라며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했다. 말이 편도 30분이지 이불과 옷가지를 양 손에 들고 가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고, 7월 말의 여름이라 깜깜해진 밤도 더위를 피할 순 없었다. 이 당시 24시간 영업점의 아르바이트와 매일 연이은 송별회로 5일 동안 두 시간 밖에 못 잤는데 이것 조차도 전철에서 잠깐씩 10~20분씩 쪽잠을 모은 두 시간이었다. 쌓인 피로에 정신이 멀쩡했을 리가 없다. 혼미한 정신으로 마지막 이불을 버렸다. 마지막 이불은 네 번의 겨울을 나와 함께 한 코타츠 바닥에 까는 토토로 이불. 가져가겠다고 하자 여동생이 제발 버리고 오라던 꽤 낡은 이불이었다. 다른 이불과 옷들은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수거장 그물을 덮어둔 토토로 바닥 이불을 보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마음이 깃든 물건을 버리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아닌, 영원한 헤어짐으로 느껴졌다. 돌아오는 길에 토토로 이불이 아른거렸다. 이불이 뭐길래 마음이 이리도 아픈 건지. 토토로 이불을 버리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무소유'의 인간이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3년 반 동안 나는 무소유의 인간으로 지냈다. 어차피 2년 후에 떠날 곳 물건을 사는 것은 다 부질 없다고 느꼈다. 의류의 경우, 나이는 20대 후반이었지만 대학생 신분이었고 전공 수업은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했기 때문에 이동성이 편한 캐쥬얼 차림을 선호하게 되었고 다행히 일본에서 보낸 옷들로 어느 정도는 커버가 되었다. 한국에서 입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보냈던 옷들 중 반은 입지 못한 건 예상 밖이긴 했지만. 차려 입고 나가야 하는 날은 직장생활을 하는 여동생의 옷을 빌려입었다.(다행히 옷 사이즈가 같다) 일본에 가기 전의 나는 책, DVD 등을 구입하는 데에 엄청난 돈을 쓰던 사람이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는 책은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영화는 영화관과 학교의 멀티미디어실을 이용하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구입한 수 백 장의 씨디도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구매, 소비의 기준이 '다음 워홀에 가져갈 수 있는가 없는가'에 맞춰지자 무형의 소비는 하더라도 유형의 소비는 지양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3년 반 동안 지내는 동안의 절약이 아닌 소비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보겠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나의 소비는 일정했다. 수업 중의 식사, 교통비, 휴대폰비, 문화생활비. 휴대폰은 일본에서 가져온 아이폰이 컨트리락이 걸려 있어 사용할 수 없어 아빠가 옛날에 사용했던 2G 폴더폰+포켓와이파이로 생활했다. 심지어 스마트폰 없는 생활을 하겠다며 포켓와이파이맘저도 해약하고 연락은 2G 폴더폰+사진은 똑딱이 카메라+메모는 수첩으로 생활한 적도 있다. 나는 만족했는데 주변에서 힘들어했다. 친구들과 만나 밥이나 술을 먹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내 친구들은 모두 직장인이었고, 몇몇은 이미 결혼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바쁜 건 학생이더라. 일하는 사람들이야 야근이 있더라도 퇴근을 하면 끝이고, 휴일도 있지만 학생은 방학이 올 때까지 퇴근이 없었다. 한국 오면 친구들도 자주 만날 줄 알았는데 웬걸, 1년에 한 두 번 보는 건 일본에서 지낼 때랑 똑같더라. 심지어 만나기 힘든 이유가 내가 너무 바빠서, 내 시간이 안 나서였다. 친구들이 만나더라도 돈 버는 친구들이 뒤늦게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젊은 학생들 사이에서 못 따라가 고생하는 나를 위해 대신 내주곤 했고, 나는 염치불구하고 얻어 먹었다.

가장 큰 지출은 문화생활비였다. 한국으로 귀국한 지 딱 1년이 되었을 때부터 주 1회 수묵화 화실에 다녔다. 시험 기간에도, 졸업 논문을 쓰고 있을 때에도 쉬지 않고 다녔고, 호주로 떠나기 직전까지 매월 기본 10만원씩 고정으로 나갔다. 추가로 영화 관람비. 졸업하고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게 되어 쉬는 날엔 종종 영화를 몰아 보러 다니곤 했다. 주로 쉬는 날에 조조로 보러 혼자 보러 가거나 극장의 할인 쿠폰을 이용해 하루에 많게는 세 편까지 달리곤 했다. 수묵화와 동시에 사진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두 학기 동안 남동생에게 DSLR 카메라를 빌려 수업을 들었고, 수업이 끝난 후엔 필름 카메라로 갈아탔다. 계산을 해보니 새로운 DSLR 카메라를 구입해 사용하는 것보다 필름 카메라를 이용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도 장기적으로도 더 싸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카메라를 사야하는데 돈이 없어 필름 카메라로 전향'하게 되었다. '장비 욕심의 완전 차단'이라는 순기능 역시 필름 카메라로의 전향 이유 중 하나였다. 이것들은 오직 나를 위한 쓰임으로 아깝다거나 이 부분에서 절약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내게 내가 만족하는 소비는 낭비가 아니다.

아, 한국에서도 나는 '신용 카드'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다. 무조건 체크 카드 사용. 신용 카드라는 것이 나의 제정 신용을 담보로 돈을 땡겨서 먼저 쓴 후 돈을 대신 내준 카드사에게 나중에 갚는 시스템 아닌가. 일정한 수업이 없으니 제정 신용이 없을 뿐더러 돈을 빌려서 쓴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신용 카드는 사용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사용할 생각이 없다. '현재 실제 현금이 있는 만큼만 쓰는 것'이 내 소비의 기본이다.(물론 학비, 부동산 등 대출은 다른 얘기다)

 


2. 워홀 생활 중의 소비     


호주로 워홀을 떠났을 때에도 나의 소비 기준은 오직 하나였다. '다음 워홀에 가져갈 수 있는가 없는가'. 거기에 더하여 '짐 늘리지 않기'까지. 가져온 만큼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 목표였다. 옷은 그 나라에서 구입한 옷을 입는 게 최고라는 것을 이미 일본에서 가지고 돌아간 옷들을 못 입게 된 것에서 배웠기 때문에 애초에 옷은 적게 가져왔고, 지내는 동안 싼 의류 매장에서 한 철 입고 버릴 옷들을 구입했다. 이것은 호주, 독일 그리고 현재 대만에서도 계속 지키고 있는 부분이다. 가져온 옷 중에 낡은 옷들은 버렸고, 새로 구입한 옷 중에 다음에 가져가도 될만한 옷들을 취했더니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되어 귀국짐이 늘어나지는 않았다.     

식비는 호주에서도, 독일에서도, 그리고 현재 대만에서도 음식점에서 일하기 때문에 그나마 식비 지출이 적다고 생각한다. 다만 호주 생활로 '먹으러 다니는 것'에 눈을 뜨게 되어 한 끼에 쓰는 돈의 스케일이 꽤 커져서 문제다. 위와 장이 약해 평생 외식을 즐겨하지 않았던 내가 외식을 즐겨하게 된 것은 온전히 호주에서 팔이 불어진 사고 때문이었다. 왼쪽 팔이 완전히 두 동강으로 부러져 두 달 동안 작은 물건 조차도 드는 것이 금지였기 때문에 요리가 불가능, 밖에서 사먹을 수 밖에 없어졌다.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보고 하다보니 돌아다니며 먹는 것에 맛들이게 되었다. 게다가 호주, 특히 멜버른과 시드니는 미식의 천국. 독일에서는 외식하는 일이 별로 없이(내 돈은 소중하다) 일하는 가게에서 먹거나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이 보통이었다. 파스타 가격이 워낙 싸 늘 파스타를 종류별로 구비해놓고 떡볶이 소스를 만들어 정체불명의 요리를 먹곤 했다. 집 바로 근처에 되너 케밥집이 있어 그곳에서 감자튀김과 케밥을 자주 사 먹기도 했고.      

호주에서도 독일에서도 먹고 여행하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먹기 위해 여행을 하기 위해 돈을 더 벌었을 뿐이다. 독일에 있을 때 독일 국내와 인근 국가들을 다녀왔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어 관광지에서 '기념 상품'을 사는 것을 고민해봤고 나는 무게가 나가지 않는 기념 상품을 선택했다. 장기간 워홀러로 지내기로 한 나의 워홀 생활 모토는 '100 g도 열 개가 모이면 1 kg'.           



3. 대만에서의 소비     


대만은- 하하하하하하.......... 지금까지 내가 워홀로 지낸 네 개의 나라 중에서 가장 힘겹게 지내고 있다. 네 나라 중 유일하게 법정 최저 임금이 한국 수준보다도 낮은 대만. 처음 몇 달은 '내가 월급 받던 퇴사 워홀러도 아니고, 지금 1n 년을 서비스업에서 일하고, 음식점이 7년차이고. 물론 어디서나 최저임금 받으면서 일하긴 했지만 내 노동의 가치가 고작 이만큼이라니'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고, 외식을 할 때면 '시급은 이 금액인데 도대체 음식은 왜 이렇게 비싼 것인가.'싶어지더라. 두 시간 분의 시급으로도 먹을 수 없는 한 끼. 사실 나는 서비스업, 음식점 시급으론 상당히 높은 시급으로 일하고 있다. 처음에 구했던 한국 업체 아르바이트(현재 퇴사)는 시급이 150원이었고, 그 다음에 구한 일본 음식점(현재 퇴사)의 시급은 180원, 현재 일하는 음식점은 더 올라 시간당 200원이다. 대만 법정 최저 시급이 133원, 많은 대만 서비스업, 한국 음식점들이 시급을 140원 정도로 주고 있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호주, 독일처럼 여행 다니고 뭐 그런 삶은- 언제쯤 가능하려나, 귀국이 세 달 남았는데. 

대만에서 유례 없던 강제 절약 생활을 하고 있다. 수입이 문제인지 지출이 문제인지 모르겠더라. 월세는 대만돈 8,000원으로 비교적 싼 방임에도 불구하고 돈이 모이질 않는다. 한국 업체에서만 일했던 기간은 수입이 적어 모아온 돈을 모두 탈탈 털어서 지냈고, 더 이상 환전할 돈이 없어 급하게 일본 음식점에서 투잡을 시작했다. 일본 음식점에서 투잡을 시작한 이후로는 지난 몇 달 동안 가계부 어플을 이용해 지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내 기준으로 내 지출에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런데 왜 나는! 돈이 없는 것인가! 왜 매달 가불을 해야만 하는 가불요정이 된 것인가!!! 

커피와 음료 값이 나가지만 내가 대만 워홀 정착지를 타이난에서 타이베이로 변경한 것은 커피 투어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이 부분의 지출은 내겐 필요한 지출이다. 식비는 역시 애초에 외식으로 해결할 생각으로 대만에 왔다. 키친의 유무가 집 선택 시 고려사항이 아니었던 이유기도 하다. 다행히 일본 음식점에서 일하기 시작, 동시에 룸메들이 사라져 쉐어하우스에서 강제 혼자 생활을 시작해 냉장고 사용이 가능해진 4월 중순부터 식비 지출이 줄어 매달 식비(커피, 음료 값 제외)는 대만돈 5,000원 전후로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나는 매일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는데 한 달 총 교통비는 지금까진 매달 대만돈 1,000원 정도. 9월부터는 과자값을 줄였다.

대만에서의 생활이 만 8.5개월이 지났지만 여행은 가보지 못했다. 여름이 너무 덥기도 했고, 아직 잉여 자산이 발생하지 않아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4. 대만에서의 '돈 절약'   

  

1) 주거비를 줄이는 방법

주거비를 줄이는 방법은 하나다. 조건을 낮추면 낮출 수록 방세는 줄어들고, 조건을 더하면 더할 수록 방세는 올라간다. 나는 세 명이 함께 사는 쉐어하우스를 선택했(지만 현재 몇 달 째 강제로 혼자 사는 중이)고, 중심가에서 다소 떨어져있고, 낡은 건물의 옥상을 개조한 5층으로 엘레베이터가 없으며, 공과금은 월세에 포함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혼자 지내게 되었을 때 걱정했지만 집주인의 부모님이 공과금을 '그냥 넌 이만큼만 내~'라며 '대~~충' 받으셔서 고지서를 인원수대로 칼 같이 나누었던 집주인과 함께 살았을(함께 살던 집주인은 미국으로 이민갔다..) 때 내던 금액의 반도 안 내고 있다.     


2) 교통비를 줄이는 방법

a. 타이베이는 U-bike니 O-bike니 하는 대여 자전거 시스템이 잘 갖춰져있다. 체력이 있다면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 하는 것도 교통비를 줄이는 좋은 방법일테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이 자전거 사용법을 모른다. 1) 출근 전, 퇴근 후에 자전거를 수 십 분 동안 타고 왔다갔다 하기엔 내 체력이 너무 저질이고 2) 몇 해 전에 한 쪽 무릎 위 근육을 다쳐 그 이후로 자전거를 타면 종종 무릎이 뒤틀리는 듯한 심한 통증이 있기 때문에 이제 자전거는 타지 않는다. 나 자전거 진짜 잘 타는데..ㅠ_ㅠ

b. 타이베이 시내는 코딱지만하다. 마음만 먹으면 동에서 서까지 걸을 수 있는 거리다. 시간이 많이 걸릴 뿐이지.     


3) 식비를 줄이는 방법

a. 식비를 줄이는 최고의 방법은 음식점에서 일하는 것이다. 현재 일하는 가게에선 영업이 끝나고 다 같이 저녁 식사를 먹는데, 남은 건 다 내가 싸온다. 내가 현재 혼자 살고, 생활비 전체를 이 가게에서 벌어서 쓰고 있고, 꽤 빠듯하게 지낸다는 것을 아는 주방 식구들이 알게 되어, 요즘은 애초에 양을 많이 만들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 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대만 친구들도 챙겨가기 시작했다.

b. 타이베이의 식비는 천차만별이다. 싼 로컬 아침 식사집은 20원 대부터 시작하지만(찐만두 등은 개당 15원~) 떼우는 것이 아닌 제대로 먹으려면, 맛집에서 먹으려면, 분위기 좋은 곳에서 먹으려면 250~400원은 그냥 깨진다.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레스토랑은 대만 안에서도 고급 레스토랑 축에 끼는 곳인데, 메인 메뉴 중에서 가장 싼 메뉴는 음식 하나에 대만돈 750원이다.(가장 비싼 건 1,050원) 

c. 그렇다고 슈퍼에서 재료를 사 집밥 해먹기에는 대만의 장바구니 물가는 비싸다. 특히 냉동 식품이 참 비싸다. 호주, 독일에선 냉동 피자도 먹곤 했는데 대만에선 너무 비싸서(개당 대만 돈 300원 대) 아직 먹어본 적이 없다.

d. 도대체 누가 대만 물가가 싸다고 한 건가...... 한화와 환율 대비로 계산하면 싸게 느껴질 순 있지만 여기서 벌어 먹고 살기엔 잔인하게 느껴질 정도다. 내 대만 친구들은 모두 '우리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외국인이 벌어서 살기엔 살기 힘든 나라'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 본 나라, 한국을 포함한 다섯 나라..라고 하기엔 어느 나라든 도시별 물가 차이가 크기 때문에, 살아본 도시 중 '벌어먹고 사는 체감 물가'로는 타이베이가 톱이다. 서울과 공동 톱... 한국에서는 부모님 집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주거비가 들지 않았으나, 서울에서 집을 빌려서 산다면 서울이 더 빡 셀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오히려 체감 물가, 삶의 질을 고려했을 때 싸고 만족스럽게 지낸 곳은 호주의 멜버른이었다. 독일은 세금이 깡패긴 했지만 꼬박꼬박 여행 다닌 것 생각하면 세금에도 불구하고 괜찮았고. 일본은 워홀 기간은 유학 자금을 모았고, 유학 기간엔 학생 신분이긴 했지만, 학생 신분이었음에도 공부하면서 알바하면서 학비와 생활비(2년 동안 달달이 4.8만엔의 장학금을 받아서 그나마 가능) 모두 충당했다는 점이 한국에 비하면 훨씬 삶과 소비의 질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한화와 환율 대비 절대적 금액이 비싼 나라는 '물가'는 비쌀 순 있지만 동시에 임금이 높기 때문에 생활에서 물가가 비싸게 느껴지는 일은 별로 없다. 내가 살아온 나라들의 물가를 비교할 때 하는 말이 있다. 

"호주에선 2주 동안 돈 모아서 아이폰을 중고로 550불 주고 사고, 바로 여행도 갔다. 심지어 팔이 부러져 두 달 동안 일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있을 때 직전의 두 달 반 동안 모은 3천 달러로 두 달 동안 일을 안 해도 살 수 있었다. 일본에선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 모두를 모았고, 독일에선 세금이 깡패였지만 여행은 많이 다녔다. 어디든 내가 가져간 초기 자금은 비슷했지만, 대만은 이곳 생활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나는 가불 요정으로 가불 받지 않은 달이 없었다."     


4) 기타 생활비를 줄이는 방법

-한국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대만은 SNS를 이용한 마케팅이 활발하다. 많은 음식점들이 '페이스북'과 메신저 'LINE'을 통한 무료 쿠폰 및 할인권을 제공하고 있다. 체크해보자.

-買@送@, 몇 개 사면 몇 개를 더 준다~ 예를 들면, 買一送一이면 한 개 사면 한 개 더 준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원 플러스 원'.

공짜로 주는 것 같고, 밑에 개당 가격을 보니 싸게 사는 것 같다. 속지 말자. 이제 막 온 워홀러라면 휴지, 세제 등 구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언제 돌아갈 지 모르는 워홀러'이다. 이제 막 왔으니까 앞으로 계속 쓸 거야~라고 '쟁여놓겠다'는 마음으로 샀다가 급귀국으로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무료로 뿌리게 되는 일이 발생하는 걸 호주, 독일, 대만에서 많이 봤다. 1년을 꽉 채우기로 결심한 사람이더라도 반 년을 지나 후반부에 들어선 사람이라면 모든 생필품 소비는 '남은 날'을 고려해야한다. 싼 값에 팔 수 있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무료 나눔이라고 벌떼처럼 몰려들 줄 알았으나 정작 받겠다는 사람들도 적고, '거래 불발'도 많아 쉽지 않다. 언제나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사는 것이 나의 구매법이다.

-買送만큼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할인률을 의미하는 '折'이다. 65折이면 35%할인, 65%의 가격으로 구입이라는 뜻. 제일 많은 건 '2개째 구입부터 @@折'이라는 글자. 세상에 밑지는 장사는 없다. 있다면 한 푼이라도 더 돈으로 바꾸려는 폐업 땡처리 뿐이다. 소비는 판매자와 구매자의 줄다리기다. 여기서 버티느냐, 넘어가느냐는 구매자의 마음에 달려있다. '내가 정말 저것이 두 개나 필요한가', '한국 돌아갈 때 짐이 되는 물건인가'라고 생각해본 후 소비를 결정한다.

-최근에 과자를 아예 안 먹고 있다. 예전에도 3년 동안 과자를 끊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엔 건강 때문에 끊었고, 이번에는 과자 구입으로 인한 지출을 줄이기 위해 끊은 상태다. 일단 슈퍼에 가면 습관처럼 과자 코너에 들르긴 했지만 요즘은 아예 근처에도 안 간다. 예전엔 카트를 밀면서 하염없이 슈퍼 안을 배회했는데 요즘은 필요한 것(대부분이 대용량 요구르트)만 들고 계산대로 가게 되었다.

-슈퍼나 드럭스토어에 가면 항상 무언가 세일중이다. 대부분이 '기간 한정 세일'이다보니 지금 사야만 이들일 것 같아 자꾸 당장 필요하지 않음에도 언젠가를 위해 사게 되는데- '내일은 내일의 세일이 있다.'      

    


5. 사실 다 마음 먹기에 달린 것


요즘 한국에서 '절약'으로 인기 몰이인 김생민 씨. 마음 속에 김생민 한 명 쯤은 다 있잖아요. 이걸 살까 말까, 이걸 먹을까 말까 고민할 때마다 김생민 씨를 소환해 그가 어떤 말을 들려줄 지 고민해본다. 스뜌핏이 될 지 그뤠잇이 될 지 그것은 내 안의 김생민에게 물어보자. 스스로 '절약해야겠다'라는 마음이 있다면 안 사면 되고, 안 쓰면 된다. '절약해야겠다'보다 '나는 이 순간을 최대한으로 만족하며 살고 싶어'라면 쓰면 된다. 쓰고 후회하지 않는다면 쓰면 되고, 쓰고서 후회할 소비는 안 하면 되는 거다.

나는 절약하지 않는다. 매번 쓰고 싶은 만큼 쓴다. 물욕이 없을 뿐이다. 어차피 필요하지 않은, 귀국할 때 가져가지 않을 물건이라면 애초에 사지 않을 뿐이다. 생활에 필요하고 귀국할 때 가져가지 못할 물건이라면 애초에 '버릴 생각'으로 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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