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막차 워홀러들의 절약(9월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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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막차 워홀러들의 절약(9월 미션)
개인 사정+노트북에 손을 올릴 수 없을 정도의 더운 날씨 때문에 그동안 통신원 활동을 소홀히 했네요. 일단 이번 달 미션 글을 시작으로 다시 활동에 시동을 걸어보겠습니다!
이번 달 미션은 '절약'에 관한 이야기다. 마침 한국에서도 '김생민의 영수증'이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몰이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워홀러들의 절약, 그중에서도 '막차들'의 절약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생각이다. 이 글은 막차 워홀러로 지낸 3년 동안의 개인의 경험과 주변의 한국, 일본 막차 워홀러들의 이야기를 기초로 해 작성한 것으로 매우 주관적이다.
1. 막차 워홀러
막차 워홀러. 워홀러 앞에 붙는 이 '막차'라는 단어가 만들어내는 묘한 동질감과 안도감이 있다. 해외에서 한국인을 만나게 되는 경우 서로에게 하는 질문 중 가장 처음에 하게 되는 것은 역시 비자. '어떤 비자로 이곳에 왔냐'로 일단 그룹과 계급의 구분이 들어간다.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어요’의 2세 이상의 교포, ‘어릴 때 부모님 따라서 이민 왔어요’의 교포 1세, ‘현지인/교포와 결혼했어요’의 배우자 비자, ‘여기서 학교 졸업하고 직장 다녀요’의 취업비자 1, ‘한국에서 졸업하고 여기로 취업했어요’의 취업비자 2,(취업비자 1과 2는 사실 체류 자격으론 같은 비자지만- 종종 구별되곤 한다) ‘여기서 학교 다녀요’의 유학생 비자, ‘(여기서 대학 가려고/한국 대학의 전공이 여기 언어라)어학교 다녀요’의 어학연수 비자, ‘교환학생으로 왔어요’의 교환학생 비자, 그리고 ‘워킹 홀리데이로 왔어요’의 워킹 홀리데이 비자. 해외 생활이 긴 사람들은 그 문화에 익숙해져 역시나 나이를 묻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해외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각종 학생, 워홀러들은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그대로 서로의 나이를 묻는다. 한눈에 봐도 20대 초반의 분들은 서로 동갑임에 반가워 기뻐하기도 하지만(아닐 수도 있음), 몇몇은 나이를 말하기를 꺼리며 한 마디로 정리해 본인의 나이를 살며시 감춘다.
"아, 저 워홀 막차 타고 왔어요."
나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소비 패턴과 소비 스케일 등이 연령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애초에 최저 임금~그보다 조금 넘는 시급을 받으며 일하던 휴학 워홀러들과 매월 백 만원 단위의 돈이 통장에 꽂혀 오고 그만큼 소비해오던 전 직장인 현 막차 워홀러들의 소비가 같을 리가, 같을 수가 없다.
스스로를 ‘막차’ 타고 온 워홀러라 칭하는 이들의 연령대는 보통 한국 나이로 28~31에 분포해있다.(어디까지나 나의 체감이다) 만 나이로는 만 26~30세에 해당하는 나이. 일부 나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만 31세 생일 전까지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신청 가능한 것을 감안했을 사실 만 26~28세는 막차라는 생각이 안 들지만 한국 나이 28세도 30이라는 애증의 숫자에 가까운지라 ‘막차’에 해당할 수 있을 것 같다. 막차 워홀러들의 가장 큰 특징이자 공통점은 1) ‘회사를 그만두고(때려치우고) 왔다’, 2) 더 늦기 전에 한 번쯤 꿈꾸었던 ‘해외생활’을 해보기 위해 워홀 비자 선택 3) 그리고 절대다수가 ‘여성’. 막차로 온 남성분들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지만, 종종 군대 전역 후, 혹은 대학 졸업/중퇴 후 여러 가지 다양한 일을 하시다가 워홀 비자를 선택하시는 분들이 계신 걸로 알고 있다. 이분들은 장기간 하시던 일을 그만두고 왔다기보다는 일의 연장선(개인 사업 발판 마련, 유학 자금 모으기 등)으로 워홀 비자를 선택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일단 이번 글에선 다소 글의 주제와 맞지 않으므로 제외하겠다. 아무튼.
막차 워홀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자분들의 경우에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경우는 대략 최소 6~8년, 최대 10~11년 정도 회사생활을 했을 테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에 진학한 경우는 재수, 삼수, 1년 휴학(학비 마련, 어학연수, 워홀 등), 취업재수생 등을 고려했을 때 최소 2~3년, 많게는 6~7년 동안 회사 생활을 했을 것으로 예상한다.(체감상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3~5년 이상 사회생활을 하다가 워홀 비자를 선택한 여성들이다)
즉, 이들은 대학 휴학생 워홀러, 막 졸업해 모아놓은 돈이 많지 않은 워홀러들과는 약간, 살짝 다르다.
2. 소비와 절약, 그 사이에서
막차 워홀러들은 한국 통장에 비축 자금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물론 아닌 경우도 있다→나) 재직 기간 동안 다 학자금 대출이니 부모님 생활비니 보험비니 뭐니 다 지출해 모아놓은 돈이 많지 않다고 해도, 일단 ‘퇴직금’이라는 것이 통장 안에 존재해 있는 경우가 많다.
일단 출국 전에 머리 속으로 앞으로의 ‘해외 생활’을 그림 그릴 것이다. 첫 해외 생활이라면, 그토록 바라 왔던 해외 생활이라면 머리 속의 그 모습은 다소 컬러풀하고 여기저기 장미꽃 장식도 달려있을 수도 있다.(당장 그 꽃 장식을 때어내세요.)
1)
워홀 생활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 것인가. 회사를 그만두고 워킹 홀리데이라는 비자로 타국 생활을 선택한 순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패턴의 소비를 하게 된다. 일하지 않고 모아놓은 돈을 쓰면서 그동안 힘들었던 내 영혼에게 1년이라는 안식년을 주고 싶을 수도 있고, 현지 언어도 배울 겸 현지 사람들과 어울릴 겸(희망사항) 종종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보내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테고, 아니면 만약을 대비해 한국 통장의 돈은 아예 건드리고 싶지 않으니 워홀 국가에서 자급자족하며 지내는 것이 목표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선택한 워홀 국가에 따라 시급과 세금, 일자리 상황이 다르므로 하나로 일반화할 순 없지만 워홀러들의 대부분이 스스로를 ‘외노자(외국인 노동자)’라고 칭한다. 어떤 나라에서는 한국의 법정 최저 시급보다도 적은 돈을 받으며, 어떤 나라에서는 한국에서 지낼 시절 연봉에 한참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워홀 생활의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다. 막차 워홀러들의 고민은 여기서 생긴다. 바로 ‘내가 이 돈 받고 일하려고 한국 직장 때려치우고 여기까지 와서 이 고생인가’라는 공통된 ‘현타’.
2) 누군가의 이야기-1
기대와 설렘 반 걱정과 두려움 반, 잠도 제대로 못 잔 채 비행기에 탔다. 그동안 마음 어딘가 한 구석에 고이 간직하기만 하고 이루는 것은 꿈도 못 꿨던 해외 생활을 나이 서른이 다 되어 드디어 이루게 되었다.
처음 한 달~두 달은 너무 좋다. 워홀 기간 동안 지낼 집을 구하는 게 생각보다 좀 힘들고 스트레스긴 했다. 외국인인 게, 동양인인 게 왜 도대체 뭐가 잘못이라고 그러는 건지, 집 보러 가는 것조차도 약속이 틀어지길 여러 번. 그래도 이러나저러나 잘 해결되어 드디어 이곳에도 나의 보금자리가 생겼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 새롭고 자극적이다. 로마자, 한자 등으로 가득한 외국어 간판은 익숙하지 않아 가끔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지옥 같은 출근길, 너나 잘해 싶은 짜증 나는 상사도, 이걸 도대체 왜 하고 있는지 모를 의미 없는 퇴근 직전의 회의와 보고서도, 내 영혼을 갉아먹는 것 같았던 야근과 회식도 그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의 내 생활엔 존재하지 않으니 세상에나 여기가 바로 천국처럼 느껴진다. 슬슬 아르바이트를 시작해볼까 싶지만 아직은 이 자유가 너무나도 좋다.
그리고 한두 달쯤 지났을 때 일단 환전해 온 돈이 슬슬 바닥난다. 집 구할 때 보증금 등으로 지출이 컸고, 야금야금 먹는 데에 많이 썼는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아르바이트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현지 언어의 이력서를 준비해본다. 한국 업체는 최저 임금도 안 챙겨주고 한국인들이랑 일하는 건 얻는 게 없을 것 같아 기왕이면 현지인이 운영하는 곳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일해보고 싶다.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구직 사이트를 뒤적여 보고, 지역 신문의 구인란도 유심히 살펴보며 내가 원하는 조건의 업체들 중 몇 군데에 이메일로 이력서를 보낸다. 기왕이면 한국에서의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일,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경력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근데 기다려도 연락이 안 온다.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일단 먹는 것의 지출을 줄이고,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가급적이면 걸어서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력서를 출력해 들고나가 가게 앞에 구인 공고가 붙은 가게들에 이력서를 내기 시작한다. 서비스업은 해본 적 없지만, 식당에서 일해본 적은 없지만 지금 그런 상황 가릴 때가 아니다. 이 상태로는 한국 통장에 손을 대야할지도 모른다. 이력서를 50장 100장을 돌려서 어쩌다 운 좋게 면접을 잡아도 채용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이력서만 돌리는 시간들이 불안해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보험이라도 들어놓자 싶어 한국인 커뮤니티의 구인구직 게시판을 뒤지기 시작한다. 면접에 가니 시급이 가관이다. 근데 지금 찬 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통장에 빵꾸는 메웠다.
처음에야 내가 상황이 급하니 구한 일이지만 크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단순한 일이라 일에 성취감을 느끼지도 못한다. 과거 한국에서 비슷한 일을 해본 적 있는 사람들은 ‘한국에서도 질릴 정도로 했는데 여기서도 이러고 있다’, 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은 ‘내가 이러려고 그렇게 죽어라 공부한 것인가 자괴감 느껴’, 이렇게 각자의 마음에 어두운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수입이 많지 않고 안정적이지 않다. 일이 익숙하지 않고 언어도 버벅대다 보니 근무 시간을 많이 받지 못한다. 지출을 줄이기로 결심하고 다시 식비 지출을 줄여간다. 이참에 그동안 찐 살이나 빼보자란 마음이 절약 의욕을 높여준다. 선택할 수 있는 가격의 폭이 넓지 않으니 먹을 수 있는 메뉴 역시 한정적이다. 제대로 된 식사보다 끼니를 때우는 수준의 식사가 많아진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도 한계가 있다. 현지 음식이 질려 한식이 먹고 싶은데 한인 마트에서 조미료를 사는 것도 부담이 되고 한국 식당에 가서 먹자니 너무 비싸다. 전 회사 동기가 이번에 사원에서 대리 달았단다. 하아... 나는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냐. 한국 돈 단 돈 몇 천 원에 손이 벌벌 떨리는 이 상황이 정말 현실인거냐. 다들 잘 지내냐고 물어보는데 잘 지낸다는 말 외엔 할 수 있는 말도 없다. 아아 서브웨이 샌드위치 이제 그만 먹고 싶다, 젠장 몸에서 양상추가 자라날 것만 같다. 엄마가 해준 밥이 먹고 싶어... 우리 집 개새끼도 보고 싶고... 한국 가고 싶어.....
3) 누군가의 이야기-2
이 짓도 대 여섯 달 정도 지나니 생활에 드디어 안정이 온다. 처음엔 한인 업체에서 일하다가 얼마 전에 다행히 운 좋게 현지인이 운영하는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한인 업체도 현지인 업체도 처음 해보는 일이라 다소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사회생활하던 짬밥이 있어인지 일 배우는 것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처음엔 인사도 안 하더니 이젠 서로 농담을 건네기도 하고, 말이 안 통할 땐 서로 손짓 발짓 난리도 아니다. 내가 이렇게 한참 어린, 열 살 정도 차이나는 애들이랑 같이 일하고 친구처럼 지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어이구, 귀여운 것들. 다행히 일하는 곳에서 직원 식사가 제공되어 식비는 어느 정도 굳었다. 판매하고 남은 음식이나 남은 직원 식사는 집에 싸오기도 한다. 이래서 워홀러, 유학생들이 음식점에서 일하는 거구나.
일이 없는 날은 혼자 동네 산책이나 근교의 다른 동네에 다녀오기도 하고, 같이 일하는 애들과 식사나 차를 함께 하기도 한다. 다음엔 시간을 좀 내서 다른 지방으로도 가보고 싶다. 생활이 안정되니 지출도 많이 늘었다. 기왕 먹는 한 끼 맛있는 거 먹고 싶다. 6개월이 지나고 워홀도 하반기에 접어들었다. 함께 일했거나 한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알게 된 워홀러들이 슬슬 한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다들 살이 쪄서 걱정이란다. 얼마 전에 오랜만에 몸무게를 재보니 세상에나, 8킬로나 쪘다. 같이 일하는 한국인 누구 씨도 나랑 같은 막차 타고 온 워홀러인데 그분도 반년 만에 9킬로 쪘단다. 주변을 보고, 또 얘기를 들어보니 나만 살찐 게 아니다. 원래 다 찐다고 한다. 살을 빼야겠다 싶긴 하지만 그래도 일생에 한 번뿐인 워홀이고 다시없을 워홀인데 먹는 걸로 스트레스받고 굳이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참고 싶진 않다. 이 생활도 얼마 안 남았구나.
3. 막차 워홀러에게 절약이란
워홀 생활 초반과 그 이후의 소비 패턴은 많이 다르다. 안정기에 들어서면 사람 사는 거 한국과 다르지 않게(!) 비슷하게 흘러가는데 그 안정기가 오기 전까지의 불안정한 기간이 해외여서, 타지여서, 혼자여서 더욱 불안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이 기간에 돌아갈까 고민하는 사람들, 그리고 결국 귀국을 결심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사실 모두가 워홀 1년을 다 채우고 귀국하는 것은 아니다. 3개월도 있고, 6개월도 있고, 해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 의외로 빠른 만족에 이만하면 됐다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휴학 중인 학교에 복학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고, 워홀 기간 도중에 다른 미래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쓸 데 없이 긴 이야기는 내가 겪은 워홀 이야기는 아니고(애초에 나는 일한 적도 없고 모아놓은 돈이 없다) 주변 막차 워홀러들에게 들은 이야기, 워홀 생활을 함께 하면서 고민을 들어온 것을 바탕으로 써 본 이야기다.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아닌 사람들도 있을 테고 그건 각자 느끼는 바가 다를 테지만.
솔직히 나는 20대 초중반이든 서른 전후든 워홀러들은 누구나 현지에서 돈 없는 가난한 외국인이긴 하지만 워홀러라고 해서 굳이 절약을 해야 하는 것인가 싶다. 워킹 홀리데이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절약’을 미션으로 내준 것도 ‘워홀러=가난함=절약 필수’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 아닌가. 물론 학생 신분이라면 부모님에게 지원해 달라고 하는 게 미안해서 어떻게든 현지에서 해보겠지만 누군가는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와 맞바꾸어 벌어놓은 돈이 있어 아직은 금전적 여유가 있고, 적지 않은 나이에 용기 내서 온 거, 기왕이면 충분히 이 시간은 만족스러운 순간들로 채우고 싶단 말이다. 돈은 없는 것 자체로도 서럽지만 작은 돈에 벌벌 떨 때가 더 서러워지기도 하더라. 교통비 아끼자고 걷기엔 이젠 몸이 지친다. 이 한 몸 편한 게 제일이더라. 괜히 돈 아끼다가 병원비가 더 많이 나올 수가 있다. 국제 학생증이 있으면 여기저기 할인받을 수 있다는데 애초에 해당도 안 된다.
성급한 일반화이긴 하지만 내 경험 상 막차 워홀러들은 전체적으로 1년을 다 채우고 가는 사람이 상당수다. 사실 그중 태반이 ‘버티다’ 가는 것 같다. 대부분의 막차 워홀러들에게 '돈을 모아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거라 생각한다. 한국으로 돌아가 학비를 낼 일도 없으며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둘 정도면 아마 더 이상의 남은 빚(학자금 대출)도 없을 테고. 그동안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었으니 드디어 돈과 시간을 함께 쓰다가 남은 돈으로 귀국할 때 워홀 체류국의 국내 여행 혹은 인근 국가를 여행하고 가면 한국에 귀국하면 그걸로 만족일 수도 있다. 이미 수년 동안의 사회생활로 각자의 소비 패턴과 절약 방식이 있을 테고 그것이 해외라고 해서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소하게 슈퍼나 음식점의 쿠폰을 이용한다거나 세일 기간을 이용하는 정도는 있을 테다.
지친 사회생활, 옭아매던 삶로부터의 일시적 탈출, 정신적 휴식이 어쩌면 그들이 적지 않은 나이에 용기를 내어 워홀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일 지도 모른다. 막차 워홀러의 1년은 누군가에겐 ‘시발 비용’(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쓰지 않았을 비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의 재취업이 걱정됨에도, 나이는 이미 서른이 넘었고, 여자라 재취업이 어려울 텐데 이 공백기가 두렵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꼭 감고 <STOP> 버튼을 누른 사람들이다. 나는 워홀을 네 번이나 했고, 한국 나이 서른, 만 스물아홉의 끝에 호주-독일-대만의 삼 개국 워홀을 시작하긴 했지만 내게 그런 용기가 있을까? 솔직히 그런 결정 하는 거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니, 그 누구에게도 쉽지 않을 것이다.
<김생민의 영수증>은 ‘무조건 절약이야!’가 아닌 애초에 ‘(돈 모으기에)절실함이 있는 자들’을 대상으로 사연을 모집한다. 절약이 ‘쓸 데 없는 사용을 줄이고 아낀다, 모으다’라는 의미라면 막차 워홀러의 절실함은 금전적 소비에 대한 절약보다는 마음과 정신적 소비에 대한 절약에 있을 것이다. 쓸 데 없는 정신적 소모는 줄이고, 지친 나를 좀 더 소중히 하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마음을 더 모으는 그런 시간.
다시 읽어보니 심한 오지랖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뭐라고 참. 무슨 내용인지 정리가 안 되어있다.(글을 다듬고 싶은데 너무 길어서 귀찮다. 내일 아침 출근이라..) 애초에 생각한 내용은 이게 아닌데.. 슈퍼 가서 사진도 찍어왔건만. 그냥 절약이라는 키워드로 무슨 내용을 쓸까 생각하면서 의식의 흐름으로 썼는데, 아마 나는 막차 워홀러들, 막차 워홀을 고민하는 사람들과 막차 워홀 중인 사람들을 (감히) 그저 응원하는 글을 쓰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일단 막차를 선택하신 분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워홀을 선택하기까지 밑도 끝도 없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큰 용기를 쥐어짜 내어 내린 결정일 테다. 무엇보다도- 그동안(일하고 고민하는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모두 마음껏 울고 마음껏 웃는 몸도 마음도 건강한 워홀 생활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