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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석류 Jul 04. 2024

지역문화유산의 동시대성을
창조하는 문화기획가 하정아

[문화다원 No41] 예술人기획人행정人 부족 간 인터뷰 프로젝트

마흔한 번째 좌표는 '지역x 문화유산x 축제x 관광' 분야를 종횡무진 다니며 활동하고 있는 문화기획가를 만나보았습니다. 지역마다 다양한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유산이 보존의 관점에서는 대체로 잘 지켜지지만, 향유의 관점에서는 늙고 재미없는 문화유산으로만 취급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오래된 것과 잊히는 것에 '문화적 상상력'을 더해 지금의 사람들과 만나게 해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문화유산, 축제와 관광분야를 넘나들면서 사람과 사람, 콘텐츠와 이야기를 연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23년 경남하동에서 진행한 '성돌의 귀환(지역 문화유산과 관광명소를 엮은 1박 2일 프로그램,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납치된 448명 도예가와 발굴된 유물을 스토리텔링, 2023 문화재청장상 수상), 경북안동에서 국가유산진흥원과 함께 ' (밤의 시간 호텔로 변하는) 병산서원스테이', 강원강릉 '(고품격 야간관광 콘텐츠를 경험하게 하는) 관동 풍류의 길'을 프로듀싱한 기획자를 만나보았습니다. 잊히거나 오래된 지역의 문화적 유산에 생명을 불어넣어, 축제와 관광으로 사람들을 찾게 하는 힘에 대해 궁금한 분들이 한번 만나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역문화유산의 동시대성을 창조하는 

문화기획가 하정아


1. 이름은사회에서 연차는 어떻게 되시나요?     

안녕하세요. 저는 문화기획가 하정아입니다. 2000년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24년 차가 되었네요.     

         

2. 어떤 일을 해 오셨나요일터(작업의 공간)에서 당신의 역할을 소개해주세요 역할 속에서 자신의 직업정체성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2000년대 초반 일반회사에 잠깐 다녔고 곧이어 문화예술계로 들어왔어요.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기획자로 출발한 후 줄곧 민간단체에서 기획업무를 해왔죠. 공연, 전시, 문화예술교육, 기업교육, 2009년부터는 문화유산을 활용한 콘텐츠 개발을 중심으로 활동해 왔고요, 2017년부터는 영역을 넓혀서 축제의 정체성을 담아낼 핵심콘텐츠를 만드는 감독으로도 일을 해오고 있어요. 2020년 동대문구 ‘N개의 서울’ 총괄 PM을 짧지만 강렬하게 경험했고, 2021년에는 강원도 평창의 문화도시 총괄기획을 맡아 일하며 지역과 다양한 이유로 연을 맺게 되었죠. 여전히, 앞서 언급한 다양한 목적의 프로젝트를 기획/운영하거나 현장경험을 토대로 현장 이야기를 나누며 살고 있어요. 좌충우돌인 제 경험이나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죠. 사실 모든 과정에서 제가 더 성장, 발전하게 되는 것 같아서 오히려 감사한 날들입니다.      

앞서 문화기획가라고 소개했는데 문화기획가로서의 제 직업정체성은 ‘창의성’과 ‘조율’이라는 단어로 압축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창의성은 정체성이라기보다는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하는 기획가로서의 본질적 속성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그걸 ‘문화적 상상력’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나머지 하나는 ‘조율’인데요, 기획 일을 오랫동안 해오다 보니 문화기획가란 어쩌면 ‘조율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창의성의 시작점인 문화적 상상력에서부터 결과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통틀어 제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조율’이었거든요. 마치 불협화음마저도 아름다운 화음으로 만들어야 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말이죠. 제가 만든 문화적 상상력이라는 판 안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도록 돕고, 과정 자체가 즐겁고 신나서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솔직히 해도 해도 어렵지만, 심장이 뛰는 일이기도 하죠.    

      

3. 한번 떠올려 주시겠어요당신이 하는(해 왔던일을 선택했던 내적인 욕구초심계기우연 등은 무엇이었나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제가 살던 시골은 문화예술의 황무지나 다름없었어요. 당시 제가 경험한 문화예술이라곤 연예인이 소속되어 있던 군악대 연주회, 활동으로는 중창단과 글짓기, 방송반이 전부였거든요. 그랬기 때문에 대학로에서 경험했던 소극장 공연들은 정말 신세계였어요. 놀라운 첫 경험이었거든요. 아마도 그때부터 문화예술 쪽으로 막연한 동경이 시작되었던 것 같아요. 문화예술 세계가 좋았어요. 그때, 이걸 해야겠다, 싶었죠. 그렇게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실제 겪어낸 대학로에서의 삶은 상당히 괴리가 있고 고되고 열악했어요. 문화예술 관련 전공자가 아닌 데다가 일반회사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비교체험이 더 심했죠. 그래도 위로와 용기와 동기부여가 되어준 좋은 멘토들과 동료들을 만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감사하게 생각해요. 

     

시작은 그랬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나름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어요. 처음엔 선배들을 달달 볶으며 기획을 잘할 방법을 빨리 배우려 노력했고, 그다음엔 프로젝트를 경험한 대상자들이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는 게 좋아서 계속했고, 또 그다음엔 일을 맡기는 기관의 예산을 가치 있게 쓰고 뭔가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게 즐거웠던 것 같아요. 그 과정들 하나하나가 지금의 저를 계속해서 나오게 만든 동력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안정과는 거리가 먼 민간에서 겪어야 했던 문화기획가로 사는 삶은 정말 녹록지 않았으니까요. 같은 시기에 시작한 100여 명의 동료들이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걸 보면 잘 알 수 있죠     

      

4. 당신이 하는 일에서당신이 생각하는 고객은 누구인가요?     

저를 제외한 모두라고 생각해요. 일을 맡기는 행정 관계자, 함께 일을 만들어가는 현장 관계자와 예술가 그리고 프로젝트를 경험하기 위해 찾아오는 다양한 대상들까지 누구 하나 속하지 않을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4-1. 당신이 생각하시는 고객에게당신은 어떤 역할기대와 요구를 받는다고 생각하나요? 

 제게 일을 주는 행정 관계자는 예산을 효과적으로 쓰면서도 과업의 목적성을 잘 반영한 프로젝트를 기획해 주길 바라고, 현장 관계자와 예술가들은 합리적인 개런티를 받고 존중받으면서 의미 있는 프로젝트 만들기를 원해요. 그리고 그 프로젝트를 경험하는 대상자들은 자신의 시간을 즐겁고 가치 있게 해 주길 바라죠. 특별할 게 없는 상당히 일반적인 부분이지만 쉽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고, 또 핵심적인 부분이기도 한 것 같아요. 고객이라 표현하니 좀 어색하긴 한데, 제가 만나는 고객들의 역할과 성격이 저마다 다르다 보니 각각 다양한 역할기대와 요구가 존재해요. 그래서 저는 그들의 각기 다른 역할과 요구를 이해해야 하고 그 사이에서 적절한 ‘조율’을 통해 일을 만들어가야 하는 ‘조율자’의 역할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파악한, 그들이 제게 원하는 역할과 요구이면서 제 직업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는 거죠.          


5. 당신이 하는(해왔던일의 시퀀스('---')는 보통 어떤 흐름으로 이루어지나요?

 지금까지 제가 해온 일의 흐름을 살펴보면 발견하고-연결하고-조율하는 과정으로 수렴되는 것 같아요. 제게 주어진 미션을 통해 하나의 ‘프로젝트-판’을 만들게 되는데요, 그때부터 문화적 상상력을 펼쳐내기 위한 온갖 ‘발견(이를테면 역사, 문화, 공간, 재원, 사람과 조직 등 일을 도모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가용 가능한 자원들)’의 과정이 시작됩니다. 그다음 그것들을 하나씩 ‘연결’ 해 나가고, 그 과정에서 ‘조율’을 통해 일의 결과를 만들어내게 되죠. 제 일은 그 과정이 무한반복되는 것이라 볼 수 있어요.  

‘프로젝트-판’을 만들기 위한 일을 시작할 때, 첫 번째 단계는 ‘파악’하는 일이에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미션이 도출된 ‘배경’과 미션에 대한 관계자들의 ‘관점’이나 ‘의도’를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거든요. 경우에 따라서는 관계자들의 관점이나 의도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명확히 설정하지 못한 상태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미션의 방향성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고민해 보려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초반에 질문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그게 프로젝트의 목적과 본질을 놓치지 않는 거라 생각하거든요. 그로 인해 드물지만 협업 파트너가 달라지는 경우도 생겨요. 어쨌든 그다음은 미션을 풀어가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는데요, 자료조사부터 연구개발, 자문, 구체적인 기획안 수립과 수정 보완, 운영 및 결과에 이르기까지 좋은 방법론을 찾아 나가는 긴 과정을 거치게 되죠.     


저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인사이트’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문화적 상상력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제게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죠. 그래서 새로운 문화나 영역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또 만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사람 도장 깨기랄까요? 일상이 워케이션이고 모험이고 여행인 셈이죠. 워낙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다행스럽긴 한데, 노력의 질과 양이 떨어져 상상력이 빈곤해지거나 습관적인 유형의 상자 안에 갇혀 버리면 더 이상 기획가로서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거든요. 비슷한 유형의 프로젝트일지라도 무분별한 Copy, Paste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문화는 정답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만들어내는 게 좋을 수도 아닐 수도 있죠. 하지만 눈여겨 볼만한 좋은 사례를 만들거나 다양한 접근방법을 보여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추진해 온 과정과 결과물이 또 다른 시사점과 접근법의 시작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꼭 들어맞는 좋은 답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요. 물론 좋은 사례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말이에요.       

   

6. 일의 과정에서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혹은 '요구받는 가치'는 무엇이 있나요?     

저는 문화의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문화의 쓸모’라고 표현하면 다소 이질적일까요? 실제로 제가 해온 모든 프로젝트에서 문화의 쓸모를 찾기 위한 노력이 적지 않았어요. 여기서 ‘쓸모’란 가성비라는 경제적 논리의 관점이 아니에요. 문화의 의미와 가치, 역할을 요즘 시대의 흐름에 맞도록 고민하고, 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였죠.     

문화는 그 자체로 의미와 가치, 효과를 지니고 있음에도 현실에서는 좀 다른 취급을 받곤 했어요. 이 분야에서 일하는 동안 뜻밖에도 공적지원에 대한 문화의 쓸모를 증명하도록 수없이 요구받았던 것 같아요. 예산이 작든 크든 관계없이 곱지 않은 시선이었어요. 정책 기조와 시대 흐름에 따라 사업이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고 시기도 제각각으로 일관성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예측도 어렵고 준비도 쉽지 않고 발전시킬 기회도 사라지기 일쑤라 안갯속에 서 있는 기분이었죠. 좀 허탈했어요. 예술과 행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괴로움도 많았던 것 같아요. 그것 때문에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 지원방식과 제도, 정책 기조와 현황, 활용이나 작동하는 방식 등 문화의 역할과 가치에 관심이 많았죠. 문화의 쓸모를 찾는 일은 공적자금 투입에 대한 사회의 이해를 돕고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작동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언젠가 문화의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프로젝트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문화의 쓸모’라는 책을 써보고 싶어요.       

   

7. (최근 3년 동안당신이 특히 해결해보고 싶었던 문제(과제)는 무엇이었나요, (문제) 과제를 만났을 때진입장벽 혹은 페인포인트(그동안 해소하지 못한 불편함어려움 등)는 무엇이었고어떻게 풀어보려고 접근하셨나요     

문화(축제를 포함한 다양한 영역의 문화예술프로젝트)의 ‘지속가능성’이에요. 중앙이나 기초의 기조와 정책 방향에 따라 들고나는 사업이 수두룩하고, 내일을 약속할 수 없는 불안함에 시달리다 보니 곧 사라질 프로젝트에 공을 들이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거나 회의적이기도 했었죠. 저와 팀원들의 생계문제뿐만 아니라 지속가능성이 없는 단발성 프로젝트가 결과적으로는 좋지 않은 인식과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어요.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발전방안의 제언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적인 문제였죠. 그래서 더 예산의 가치를 드러내고 중장기적 문화의 쓸모를 찾아내고자 노력했던 것 같아요. 현장 관계자와 예술가들을 지키면서 동시에 문화의 효용성을 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요. 물론 결과물을 잘 만들어야 하는 게 전제되어야 하죠. 그런 노력들이 더해져서인지 담당자는 계속 바뀌는데 지속해 온 프로젝트가 몇 있었고, 어떻게 그게 가능했냐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었어요. 그런 토대를 만들기 위해 초기 단계부터 관계자들을 설득하고 사례를 보여주는 일을 정말 열심히 하는 편이지만 여전히 너무나 어려운 일인 것 같네요.    

      

8. (최근 3년 동안당신이 기억나는 '보람의 순간'이 있었다면     

최근에 제가 주로 다뤄온 프로젝트는 지역의 문화자원을 활용한 문화관광콘텐츠예요. 지역의 문화자원 중 핵심적인 것으로 유무형의 문화유산이 있는데, 이 자원은 협의적 개념의 ‘역사’에 국한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넓은 의미에서 역사는 시간의 켜에 쌓인 인간사회의 유무형의 문화유산과 활동의 총체인지라 문화의 근간이라 할 수 있고 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 또한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안에 사람들의 모든 것이 있어요. 도시가 가진 이야기 전부라는 뜻이죠. 저는 버려지거나 잊히거나 오래된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고 사람들의 품으로 다시 돌려보내주는 일을 하는 셈이에요. 옛것도 사람도 공간도 서로 연결되어 존재감과 행복을 느낄 때 문화기획가로서 큰 보람을 느껴요. 대체적으로 이런 프로젝트는 도시의 매력을 재발견하고 더해서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는데 그게 정말 뿌듯해요. 이 프로젝트들은 도시를 만나게 하는 또 하나의 연결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 경남하동. 하동군청과 함께 하는 ‘성돌의 귀환’ (2023년 12월, 문화재청장상 수상)     


‘성돌의 귀환’은 지역의 문화유산과 관광 명소를 엮어 만든 1박 2일 프로그램으로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납치된 448명의 도예가와 발굴된 유물을 토대로 스토리텔링했어요. 하동군청을 비롯해 지역의 여러 협업파트너(하동주민공정여행 놀루와, 하동요의 정웅기 도예가, 다원, 하동생태해설사회, 매계마을 등)들이 함께 만들고 있죠. 마을호텔로 변신한 매계마을은 베이스캠프가 되고 시골마을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도록 집과 집밥을 제공받는데 합리적인 가격으로 예산을 지원하고 있어요. 올해부터는 호스트인 마을 어르신들이 참가자를 환대하는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에요. 참가자에게 제공하는 간식꾸러미도 하동군의 예닐곱 개의 사회적 경제기업들이 개발한 지역의 특산물로 맛과 고급을 놓치지 않고 만들었어요. ‘성돌의 귀환’은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문화자원을 촘촘하게 연결한 지역협력형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방식을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문화재청장상(2024년 5월, 국가유산청으로 명칭 변경)을 수상했어요. 올해 5년 차인 ‘성돌의 귀환’은 도시로의 접근성을 높이고 하동을 더욱 재미있게 여행할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들기 위해 코레일과 연결하는 등 방법을 찾으려 노력 중이에요. 프로그램을 통해 하동을 알게 되었고, 좋아졌고, 또 궁금해졌다는 사람들이 앞뒤로 날을 붙여 여행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젠 여행 관련 정보도 함께 제공해야 하나 싶은 정도예요.   

▲ 경북안동,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진흥원과 함께 하는 ‘병산서원스테이’     


징비록을 쓴 서애 류성룡 선생을 모신 안동의 병산서원은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연속유산)’ 9개 중에서도 으뜸가는 서원이에요. 영국 왕실에서도 방문해 화제가 되었죠. 조선시대에 교육과 사회적 활동면에서 진가를 발휘했던 전국의 서원들은 쓰임새가 점차 사라지고 이제는 발걸음이 뜸한 공간이 되었죠. 물론 병산서원은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교육기관으로서 유적지 이상의 역할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던 지역체류형 콘텐츠예요. 오후 6시, 관람객들이 모두 떠나고 나면 병산서원은 호텔로 변신해요. 기존에 운영해 온 교육 중심의 서원 기능을 완전히 바꿨죠. 중정은 로비로, 동재와 서재는 객실로, 일곱 폭의 산수화 병풍 같은 만대루는 열린 카페로, 창고 같던 고직사는 레스토랑으로 완전히 탈바꿈했죠. 세계유산인 서원의 의미와 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서원의 내외부를 새롭게 정비했어요. 서원의 특성을 고려한 디자인으로 이부자리를 제작하고, 객실 용품도 자연주의적 것들로 교체하고, 스텝들의 유니폼은 한복을 모티프로 삼아 제작했어요. 류성룡 종가의 종부님께 조언을 얻어 프랑스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셰프와 함께 서원과 안동의 주요 식재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3가지 상차림도 개발했죠. 모든 것들에 서원의 특징적 요소를 담았지만 완전히 새롭게 준비하고, 비움으로 다시 채워갈 수 있도록 손님들을 극진히 모셨어요. 하회마을 관계자는 고택들을 두고 활용측면에서 고민이 깊었는데, 서원뿐 아니라 향교며 고택을 이런 방식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생각이 확장되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 외 안동 고택 관계자들 대상으로도 경험을 공유했는데, 뭐라도 시작해 보려는 분들의 끝없는 질문을 받으며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했다는 것에 기뻤던 것 같아요.          

▲ 강원강릉,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진흥원과 함께 하는 ‘국가유산방문캠페인’     


강릉에서 선보인 ‘관동 풍류의 길’은 창덕궁 ‘달빛기행’, 경복궁 ‘별빛야행’처럼 지역에서도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고품격 야간관광 콘텐츠를 경험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프로그램이었어요. 모든 공간에서 영화 같은 장면연출을 주요하게 생각했죠. 사람의 이야기가 흐르고, 역사성과 장소성에 어울리는 풍류와 차 한 잔에 담긴 또 하나의 달과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했어요. 물론 지역에도 좋은 콘텐츠가 많지만 이 프로젝트는 국가유산방문캠페인사업의 일환으로 우리 문화유산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한 목적이 가장 커요.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쇼핑과 미식여행만 하지 말고 지역을 찾아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게 목적이었죠. 그래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운영되기도 했어요. 왕족이 지은 강릉 선교장에서 펼쳐진 ‘관동 풍류의 길’은 지역민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수도권 쪽에서 더 많이 오셨고, 저녁프로그램이다 보니 지역 내 체류로 연결되는 경우도 생기는 것 같았어요. 강릉을 조금 더 깊이 만나는 시간이었다는 피드백에 마음에 온기가 흐르는 것 같았죠. 최근에는 주로 지역협력형, 지역체류형, 워케이션, 야관관광을 키워드로 하여 지역의 문화자원을 활용한 여러 프로젝트를 기획, 실험해 봤는데요, 이러한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들이 지역을 다채롭게 만나고, 알아가고, 또 사랑하여 머물 수 있게 하는데 조금이나마 통로 역할을 한 것 같아서 보람이 컸어요. 앞으로도 지역의 고유한 자원을 품격 있고 재미있는 콘텐츠로 개발하는데 좋은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계속 기회가 이어지면 좋겠네요.     

     

9. 당신이 가진 내적인 힘들 가운데어떤 힘이 강하신 것 같나요(장점나다운 것 등)?    

‘나다운 것’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저는 ‘경계를 넘나드는 문화기획가’를 지향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네요. 관심 분야도 많고 다양해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탈이죠. 저에게 경계란 업무의 영역이 될 수도 있고, 과거나 현재처럼 시간이라는 축이 될 수도 있고, 예술인, 기획인, 행정인과 그 외 여러 종류의 관계가 될 수도 있는데요, 굳이 경계를 두고 싶지 않아요. 누군가는 제게 정체성을 묻고, 또 누군가는 깊이에의 강요를 말할지도 모르지만 저는 오히려 여러 영역의 경험들이 지금의 저를 만든 좋은 자양분이었다고 생각해요. 어떤 미션이든 문화적 상상력을 발현하는 일이 정말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고증과 검증이 수반되는 역사문화를 다룬 경험이 많다 보니 대체적으로 개연성 있는 스토리텔링에 강한 편이에요. 새로운 관점 찾기를 좋아해서 방향성 설정과 연구개발 과정의 비중이 크죠. 프로젝트별로 생각을 모아둔 기획노트만 모아도 뭔가 나올 거 같네요. 그리고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디테일도 상당히 신경 쓰는 편이고요. 이 부분들이 제 고객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 같고, 저를 차별화해 주는 것 같아요      

   

10. 당신의 생각과 행동에 영감/영향력을 주었던 책음악공연영화전시 혹은 저자작가 등을 소개해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백범 김구 선생의 ‘문화강국론’을 언급하면 진부하다 생각하시겠지만 제게는 중요한 ‘소명’처럼 느껴졌어요. 선생의 염원처럼 저도 그러기를 희망하거든요. 제가 문화기획가로 살아가는 동기이면서 문화의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 영향을 주기도 하니까요. <백범일지>는 요즘 읽어도 너무 재미있는데, 어둡고 아픈 시대를 다루면서도 글을 정말 맛있게 잘 쓰시는 것 같아요. 안 읽어보셨다면 꼭 읽어보세요.     

그리고 제가 인생영화로 손꼽는 작품이자 전율을 느꼈던 영화는 <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이에요. 2006년 3월에 개봉된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독일 영화인데요, 이 작품은 베를린 장벽이 아직 무너지기 전 동독의 비인간적이고 억압적인 인권탄압을 다뤘어요. 독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독일 영화상(Deutscher Filmpreis)’을 수상했죠. 올해 연말에는 LG아트센터에서 연극으로도 만날 수 있다고 하네요. 주인공인 동독의 비밀경찰 비슬러(피도 눈물도 안 나올 것 같은 교관급 냉혈한)는 상관의 명령으로 한 예술인 커플을 감시하게 돼요. 극작가 드라이만을 제거하고 배우이자 그의 연인인 크리스타를 차지하려는 사적 명령이었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동안 예술가들의 삶과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철통 같았던 비슬러의 마음이 열리게 돼요. 그리고 오히려 그들의 비밀스러운 보호자로 극적인 삶의 변화를 맞게 되죠. 서사를 가진 타인의 삶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매우 섬세하게 다룬 작품이에요.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드라이만이 그를 위한 책을 써내고 헌정하는데요, 어느 골목의 서점에서 그 책을 바라보던 비슬러(지금은 세상을 떠난 배우 울리히 뮤흐)의 표정이 아직도 떠올라요. 저도, 제가 하는 기획들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누군가의 마음을 터치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 영화예요.    

       

11. 앞으로 어떤 일(작업역할)을 하고 싶나요그것을 위해 누구를 만나고무엇을 준비하고 있()나요?   

사실 워낙 관심 있는 분야가 많고 다양해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그래도 주력으로 하고 있는 걸 꼽자면, 계속해서 지역의 문화자원을 연결해 다양한 문화관광콘텐츠를 개발해보고 싶어요. 여행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누군가의 일상도 여행이 되면 좋겠고, 숨 쉴 틈 없이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즐겁고 행복을 누리게 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저의 주재료는 지역의 문화자원이 될 것 같아요. 그 재료로 어떤 요리(프로젝트)를 만들지 아직 모르겠지만 도시마다 재료가 훌륭하니 재미있거나 괜찮은 상차림이 나오지 않을까요? 공기관과 주로 일을 해온 편인데요, 도시의 문화관광콘텐츠 개발을 고민하는 사람들과의 접점이 더 많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의 사회적 가치, ‘문화의 쓸모’를 구체적으로 실현해 볼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보고 있어요. 여러 사회문제에 대한 다양한 문화적 솔루션을 고민해 보게 될 것 같고요, 아마도 경계를 넘나들 문화기획가들과의 연결과 실험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도시에서 먼저 시작하면 좋을지 찾아보고 있고 또 자문을 구하는 중입니다. 


12. 당신을 좀 더 알 수 있는 소셜미디어/사이트/뉴스를 알려주세요.     

저는 주로 페이스북을 통해 소통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제가 하는 일 얘기와 일을 통해 생각한 것이나 감정들을 적어두곤 합니다. 워낙 소소한 일상이야기라 볼거리는 없지만 슬쩍 공유해 봅니다.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jeonga.ha.3           


장석류의 예술경영 인물열전,

"Fusion of horizon".


지역문화유산의 동시대성을 창조하는 문화기획가 하정아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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