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석류 Jul 17. 2024

도시에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콘텐츠를 만드는 이나래PD

[문화다원 No42] 예술人기획人행정人 부족 간 인터뷰 프로젝트

마흔두 번째 좌표는 춘천으로 가보았습니다. 2024년 5월 30일~6월 2일까지 춘천에서 문화도시 박람회가 있었습니다. 박람회 현장을 방문했을 때, '사람하는 도시, 사랑하는 도시'라는 슬로건이 참여자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업 이면에 '훌륭하게 브랜더 역할을 한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호기심으로 오늘 인터뷰이를 컨택하였는데, 한 가지 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조직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필요한 사람을 채용의 방식으로 합류시켜 함께 일하는 경우가 기본이지만, 외부 전문가와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내부 직원과 외부 전문가의 협력관계에서 어떤 조직문화를 가지는지가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문화재단의 경우에도 에디팅, 디자인, 콘텐츠, 브랜딩 영역에 인력이 필요하지만 내부 직원 중 스페셜리스트는 많지 않습니다. 춘천 문화도시사업의 경우 이런 외부 전문가들이 정규직원과 거의 구분 없이 함께 팀워크를 가지고 일하는 조직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오늘 소개드리고 싶은 분이 있습니다. 에디터, 마케터, 브랜더, 콘텐츠 메이커의 역할을 함께 하는 밝은 에너지를 가진 매력 넘치는 분입니다.


도시에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콘텐츠를 만드는

프로듀서 이나래   


1. 이름은? 사회에서 연차는 어떻게 되시나요?

안녕하세요. 소요프로젝트라는 작은 콘텐츠 제작사 대표이자 춘천 문화도시 콘텐츠 PD로 일하는 이나래입니다. 사회에서 굵직하게 일한 곳은 영화광고대행사에서 5년, 브랜드 스토리텔링 회사에서 5년, 2013년에 홍보 콘텐츠 전문 제작사를 창업해 지금까지 일하고 있으니 사회생활 경력은 21년 정도 됩니다.  

                 

2. 어떤 일을 해 오셨나요. 일터(작업의 공간)에서 당신의 역할을 소개해주세요 & 역할 속에서 자신의 직업정체성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브랜드나 서비스가 자신들의 고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진심을 쉽고 일관된 콘텐츠로 만드는 일을 합니다. 그 콘텐츠는 매거진이나 단행본, 웹페이지로 제작되기도 하고 공간에 연출되거나 때로는 발표자의 이야기로 전달될 때도 있습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전할지, 목적과 목표에 따라 매체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메시지를 설계하는 일이죠. ‘콘텐츠를 기획해서 편집하는 일’ ‘제작된 콘텐츠를 타깃에게 파는 일’ 두 영역을 두루 진행하고 있기에 제 직업정체성은‘에디터와 마케터 사이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2020년 문화도시 조성사업 현장 심사 PPT 中

2020년부터는 춘천 문화도시 사업에 합류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했습니다. 당시 예비문화도시였던 춘천은 법정문화도시 지정을 준비하느라 그야말로 ‘피땀눈물’을 흘리고 있었어요. 저는 사업을 진행하며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의미 있게 편집해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 시민들의 이야기를 모아 문화도시가 지향하는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 춘천이 왜 법정문화도시가 되어야만 하는지 설득하는 발표자료를 구성했죠. 그 과정에서 과거부터 춘천을 상징하는 ‘낭만’이라는 콘셉트를 새롭게 정의하기도 했습니다. 춘천을 낭만도시라고 부르지만, 과연 춘천시민들의 삶에 낭만이 있는지 질문을 던지며 낭만을 위해 많은 부분을 양보했던 춘천이 이제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낭만이 아닌 우리 안의 낭만을 찾아가겠다’는 스토리를 현장 심사 자료에 녹였습니다. 감성적인 부분이 있어서 오히려 독이 될까 걱정했죠. 그런데 춘천분들은 감동적이라고 좋아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문화도시 지정이라는 좋은 결과도 얻고 그 덕분에 저 역시 지금까지 도시문화 콘텐츠 PD로 일하고 있습니다.         

3. 한번 떠올려 주시겠어요. 당신이 하는(해 왔던) 일을 선택했던 내적인 욕구, 초심, 계기, 우연 등은 무엇이었나요

첫 사회생활은 어쩌다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했어요. 경제적으로 어렵던 시기라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만 하는 일’을 선택했거든요. 금융업 분야의 공공기관에서 1년 반 정도를 계약직으로 근무했는데, 웃을 일이 별로 없던 나날이었습니다.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이상한(?) 어른들을 겪고 나서야 ‘내 길은 이 길이 아니구나’하는 판단을 내렸죠. 그 경험 덕분에 일을 선택하는 기준을 세웠습니다.     


‘하고 싶은 일에 가까이 가자’

여러 가지로 불안하던 상황이었기에 ‘금융’과 ‘공공’이라는 안정적인 키워드를 애써 내 것으로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다음 직장을 선택할 때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를 우선 조건으로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여의도에 있는 영화광고대행사에 면접을 봤죠. 이유는 단순했어요. 대사까지 외울 정도로 좋아하는 영화 광고를 진행한 회사였거든요. 게다가 평소 영화나 책을 보고 글 쓰는 취미가 있었는데, 특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광고의 문구나 기사에 관심이 많았죠. 하고 싶은 일을 가까이하기엔 부족한 점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많은 영화를 봤고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를 공부했어요. 그러다 보니 창작에 욕심이 생겨 영화학교에 들어가 시나리오 수업까지 들었습니다. 조직이 안정적일 때 입사했지만 안타깝게도 회사의 형편이 안 좋아지면서 절 채용해 준 팀장님과 함께 폐업 절차까지 마무리하고 나왔죠. 영화 일은 매력적이었지만 영화 한 편이 기업의 흥망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사실 역시 몸소 깨달았습니다.     


다음 회사를 결정할 때는 조금 신중해지긴 했지만, 좋아하는 일에 가까이 가야 한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어요. 내 속도가 더디더라도 가고 싶은 방향으로 몸을 돌려야 언젠가 닿을 수 있다는 마음이었죠. 그리고 정말 운 좋게 브랜드 스토리텔링 전문 회사인 봄바람에 입사했습니다. 유능한 선배들과 따뜻한 조직 문화로 제 또래의 많은 친구들이 선망하는 회사였거든요. 그곳에서 스토리텔링의 강력한 힘, 모든 매체의 제작은 ‘콘셉트’와 ‘콘텐츠’로부터 시작된다는 걸 배웠죠.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브랜드를 구축하는 다양한 업무들을 경험했습니다. 어떤 날은 취재를 나가고 어떤 날은 전시장으로 출근하고 또 어떤 날은 웹페이지를 기획하고, 또 어떤 날은 책을 들고 마케팅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분야에 경력 쌓고 싶은 사람은 업무의 영역을 넘나드는 게 힘들지 모르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때의 제 모습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문장이 있기 때문이죠.    

*봄바람에 다니던 시절의 사진(봄바람 창립 5주년 전시)

‘질투는 나의 힘’

다들 나보다 더 잘하는 것 같고 나는 뭘 잘하는지 모르겠는 그런 상태랄까. 남들과 나를 계속 비교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걸 질투하면서 한편으로는 더 잘하고 싶은 마음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컸어요. 그런데 마침 다양한 업무를 부딪쳐보니 내가 무얼 잘하는지 무엇이 안 되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죠. 그곳에서 부러울 정도로 능력 있는 동료들을 만나게 된 것도 행운이었습니다. 비슷한 부분도 다른 부분도 많지만, 서로를 잘 보완하고 이해하는 친구들과 뜻을 모아 창업까지 하게 되었거든요.     


2013년 봄, 망원동 반지하에서 소요프로젝트라는 이름의 회사를 만들고 통영의 ‘남해의봄날’ 출판사의 홍보, 마케팅 파트너가 되어 일을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출판과 유통이 서울과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다 보니 지역의 출판사들은 마케팅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거든요. 온라인 홍보는 물론 저자와 방송을 연결하거나 북콘서트를 진행하기도 하면서 정성껏 만든 책이 더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때 마케팅했던 책 중 하나가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이었어요. 작은 도시에서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된 저자들의 여러 사례를 홍보하면서 서울 토박이인 저는 막연하게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죠. 이후에도 전국을 떠돌며 지역을 취재하는 일을 했는데 가는 곳마다 “이 동네에서 살면 어떨까?” 그런 상상을 하게 되더라고요.         

*남해의봄날 정은영 대표님과 나,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 도서 북콘서트

‘나만의 속도를 찾아 춘천으로’

그러다 만난 곳은 춘천이었습니다. 2015년 소요프로젝트는 춘천문화재단의 ‘문화매거진 POT’ 창간호를 기획하게 되었죠. 당시 강승진 팀장님(현재의 춘천문화재단 도시문화센터장)이 ‘관스러운’ 매거진이 되지 않도록 판을 잘 깔아(비전문가의 간섭을 막아?)주셔서 POT에 끓어오르는 춘천의 문화를 예쁘게 담기만 하면 되었어요. 그때 받았던 느낌과 신뢰가 문화도시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한동안 춘천과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이어가다가 창업 7년 차인 2018년에는 함께 동업했던 친구들과 이별하게 되었어요. 각자 하고 싶은 일로 향하려는 선택이었습니다. 춘천으로 완전히 오고 싶었던 저는 서울의 소요프로젝트를 춘천의 소요프로젝트로 옮겨왔습니다.

* 소요프로젝트가 기획한 춘천문화매거진 POT 창간호

창업 이후에 저는 정말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낍니다. 내 안에 긍정이 이렇게 많았나? 놀랄 때도 있죠. 제가 하고 싶은 일과 가까워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하는 대부분의 일이 즐겁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니 좋아진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특히 지금 문화도시 춘천에서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많아요. 나만의 속도를 찾고 싶어서 춘천에 왔는데,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져 버렸네요. 하고 싶은 일을 향한 저의 여정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4. 당신이 하는 일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고객은 누구인가요  

전에 문화재단의 한 친구가 저에게 물었어요. “어떻게 짜증도 안 내고 일하세요?” 그래서 전 “짜증도 나고 일하기 싫을 때도 있지만, 클라이언트 앞에서 그러면 안 되죠.”라고 대답했죠. 그 친구는 우리가 클라이언트냐며 서운해했지만, 이곳에서 5년째 일하니 사실은 동료이자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답니다. 하지만 저에게 도움을 의뢰한 조직의 동료이기에 여전히 클라이언트라는 마음을 갖고 일합니다. 1차적으로 일을 의뢰한 고객이 ‘조직의 동료들’이라면, 조직에서 만든 콘텐츠와 메시지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2차 핵심 고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1차 고객과 함께 2차 고객이 누구인지를 세심하게 설정하고 2차 고객이 받을 이미지와 변화를 상상하며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4-1. 당신이 생각하시는 고객에게, 당신은 어떤 역할기대와 요구를 받는다고 생각하나요.

‘끝까지 함께 고민해 주는 것, 과정에서 나온 가치를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일은 콘텐츠만 흥미롭게 매체에 담고 끝나는 일도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에게 무엇을 알리고 싶은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또는 ‘이 사업을 좋은 콘텐츠로 만들고 싶은데, 무얼 만들지 모르겠다’라는 지점부터 시작할 때가 있죠. 그럴 때는 내가 담당자라고 생각하고 함께 고민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무엇’도 중요하고 ‘어떻게’도 중요하지만,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상기합니다. 담당자가 원하는 정량적 성과와 정성적 성과도 미리 설정해 보고요. 어떤 담당자는 성과에 대한 의욕이 높아서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사업의 통합적인 메시지와 전략 안에서 기획할 수 있게 방향을 잡아줍니다. 정답을 제시하는 것보다 함께 고민해 주고 가치를 엮어내는 역할이 조직이 저에게 원하는 바라고 생각해요.

* 마음을 모아 함께 일한 사람들을 호명하고 싶어서 기획했던 문화도시 박람회 벽면 디자인

문화도시 사업의 경우 타깃이 분명하면서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모든 시민’이라는 고객은 사실 모호하죠. 사업의 성격에 따라 물론 다른 점이 있습니다만, 참여자의 숫자로만 성과를 측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성장과 지지, 영감을 원하는 사람들이 진짜 필요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숫자 너머의 가치를 잘 읽어내려면 지역을 잘 아는 게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역사와 문화를 꾸준히 공부하고 도시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흡수하려고 해요.             


5. 당신이 하는(해왔던) 일의 시퀀스( '기-승-전-결')는 보통 어떤 흐름으로 이루어지나요?

가능하다면 최종 결정권자가 누군지 파악하고 결정권자의 욕망을 먼저 확인하려고 합니다. 콘텐츠에 담고 싶은 메시지나 이미지, 콘텐츠를 통해 얻고 싶은 결과는 무엇인지를 파악하죠. 그 과정에서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점검하고, 불필요한 것을 거둬내기도 해요. 이러한 인터뷰 이후에 콘텐츠 기획에 들어가면 좀 더 효율적이기도 하고 삽질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의미 있는 삽질은 좋은 경험으로 쌓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담당자와 결정권자의 욕망이 다르거나, 결정권자가 다수일 경우 불필요한 일을 여러 번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춘천 문화예술단체의 청년기획자들이 해커톤을 거쳐 기획한 공연예술축제 ‘2024 봄식당’에 멘토로 참여

콘셉트를 결정할 때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충분히 받고 공감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협업에서는 특히 이 과정에서 콘셉트가 더 단단해진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리서치입니다. 같은 고객을 가진 분야에서 비슷한 콘셉트와 스토리, 디자인은 없는지 살펴보고 어떻게 차별성을 둘 수 있을지 전략을 세웁니다. 이후의 콘텐츠 제작 단계는 비슷하지만, 세심한 소통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따라 결과물의 퀄리티는 확연히 다릅니다. 제대로 된 신호를 주고받았는지 자주 점검하고 사업이 끝난 후에는 결과는 물론 전 과정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있습니다.         

       

6. 일의 과정에서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혹은 '요구받는 가치'는 무엇이 있나요?

기업 일을 할 때는 퀄리티를 더 끌어올리고 싶다는 욕망으로, 작은 출판사들의 책을 마케팅할 때는 정성껏 만든 책을 정성껏 잘 팔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그때그때 맡은 일에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문화도시 콘텐츠 PD를 맡으면서는 처음으로 공공의 영역에서 하는 사업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죠. 문화도시에서 펼치는 일 중에서는 “내가 언젠가 돈을 많이 벌면 해봐야지” 꿈꿔봤던 사업도 있습니다. 먹고사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즐겁게 사는 삶도 중요하니까요. 그렇기에 이들이 공공의 예산을 잘 쓰도록 도와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있습니다. 내가 번 돈이라면 몇억짜리 불꽃놀이로 콘텐츠를 만들지는 않겠죠?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콘텐츠들이 도시 곳곳에 많아지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합니다.     


7. (최근 3년 동안) 당신이 특히 해결해보고 싶었던 문제(과제)는 무엇이었나요, (문제) 과제를 만났을 때, 진입장벽 혹은 페인포인트(그 동안 해소하지 못한 불편함, 어려움 등)는 무엇이었고, 어떻게 풀어보려고 접근하셨나요.

춘천에 지역 브랜드 출판사가 많지 않다는 점이 아쉬웠어요. 출판 시장이 어렵기도 하고 출판사들도 버티려면 (춘천 같은 산업 구조에서는) 공기관에 납품하는 책들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책들은 처음부터 독자와 분야를 정하고 만든 책이 아니라서 서점으로 진입하기 힘듭니다.

*로컬에-딛터 1기에서 ‘지역의 이야기를 담는 방법’ 수업을 진행

도서 마케팅 일을 하면서 만난 저자나 책을 내고 싶은 사람 중에 간혹 ‘자신의 원고가 진정성 있고 좋은데, 독자가 왜 선택을 안 하는지’를 궁금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읽어보면 진정성은 있는데 지루한 경우도 있고 원고가 그대로 책이 된 걸 본 적도 있습니다. 기초 원고를 흥미로운 책으로 편집하는 에디터의 역할이 중요한데, 지역에 에디터가 별로 없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젊은 청년들에게 에디터 교육을 시키고 실습으로 직접 시민들을 (매년 춘천의 변화를 이끄는 시민 100명의 인터뷰집을 발간하는데 참여) 인터뷰하는 방식을 제안했어요. 그렇게 시작된 사업이 ‘로컬에-딛터’였습니다. 정원도 늘려서 진행할 만큼 많은 청년이 지원했지만, 결과물을 만드는 데 집중하느라 참여자들에게 하나하나 피드백을 주지 못한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참여자 대부분이 자신의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컸고, 아직 에디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부분도 많았죠.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모든 비즈니스와 연결되는 ‘에디터의 시선과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판을 깔아보고 싶어요.


8. (최근 3년 동안) 당신이 기억나는 '보람의 순간'이 있었다면?

5월 30일부터 6월 2일까지 진행한 문화도시 박람회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네요. 2020년 예비도시 때가 가장 힘들 줄 알았는데, 그걸 뛰어넘는 힘듦과 보람이 있었습니다. 전기도 물도 들어오지 않는 춘천 중도 레고랜드 주차장에서 춘천마임축제와 함께하는 축제형 박람회로 진행되었거든요. 전국 문화도시의 노력과 성과 그리고 문화도시 춘천이 추구하는 방향성, 그리고 2024 춘천마임축제의 컨셉인 WARM BODY ‘따뜻한 몸’까지 아우르는 콘셉트와 슬로건을 만들어야 했죠. 도시별 홍보 부스의 콘셉트는 물론 강원도 네 곳의 문화도시를 한데 모은 전시관인 강원특별관까지 맡아서 부담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저를 믿고 맡겼다는 책임감에 상반기엔 박람회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습니다.     

 

‘사람하는 도시, 사랑하는 도시’

문화도시 춘천의 사랑스러운 동료들, 협업을 위해 내 것을 양보하는 춘천의 다양한 조직, 현장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축제 스태프, 도시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시민들, 혼자가 아닌 이웃과 더불어 살자고 다정한 모임을 기획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 슬로건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문화도시 그게 뭐 그렇게 대수라고? 차라리 중요한 데 돈을 써라” 이야기하지만, 사람들이 도시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요? 이번 박람회는 슬로건처럼 춘천 사람과 춘천의 사랑이 다 했던 박람회였습니다.

*창작과비평사 서교빌딩에서 열린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북토크에서는 저자인 서진영 작가와 소설가 정지돈이 함께

 박람회 말고도 보람의 순간은 꽤 많습니다. 강원도 고성의 온다프레스 출판사와 서울의 서진영 작가와 협업해 기획한 책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를 출판한 일도 저에게는 근사한 자랑거리입니다. 특히 제64회 한국출판문화상에서 내로라하는 책들과 경쟁하며 기획편집 부문 본심에 진출했는데, 누군가는 이 책에 담긴 진심을 알아봐 주었다는 생각에 무척 기뻤습니다. 진심을 다한 일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만큼 보람 있는 순간은 없는 것 같습니다.    


8.1. (지난 문화도시 박람회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사람하는 도시, 사랑하는 도시' 브랜딩이 인상적이었어요. 브랜딩 과정을 좀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2021년에 청주에서 열린 제1회 문화도시 박람회부터 2회 서귀포, 3회 영도까지 직접 박람회에 참가해 춘천 부스를 기획하고 운영했습니다. 청주와 서귀포에서는 “모든 도시는 문화로 특별하다”라는 슬로건, 영도는 도시의 정체성을 담은 “바람을 타고 파도로”라는 부제로 박람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지역의 대형 문화공간이나 컨벤션 센터에서 문화 분야의 관계자나 이해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사업 성과를 공유하며 교류했던 자리였죠. 그러나 춘천은 그러한 대형 공간이 없기도 하고, 춘천마임축제와 결합하면서 그동안 쓴 적 없었던 야외 주차장 부지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축제형 박람회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메시지와 콘텐츠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도시에서 펼치는 문화도시의 정책 홍보보다는 우리 지역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도시인지를 보여주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었죠.


춘천마임축제 강영규 총감독님, 강승진 센터장님과 대화도 나누며 아이디어를 찾고 그 과정에서 센터장님에게 몇 가지 (따뜻하고 착한) 슬로건을 제시했는데, “그것도 좋은데, 더 좋은 게 있을 것 같아.”라는 피드백을 주시더라고요. 골치가 아프다가 떠오른 기억이 있었죠. 연초에 춘천에도 문화재단에 관광의 기능을 넣어야 한다는 이슈가 있어서, 요즘의 관광은 무엇인지 고민한 적이 있어요. 제가 가고 싶은 지역에는 항상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볼거리 먹거리보다는 ‘사람’이 먼저 떠오르는 걸 보면 지역은 ‘사람’이 곧 브랜드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동네, 공간,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죠. 사람이 좋아서 머물고 사람이 싫어서 떠나잖아요.


그럼, 도시에는 어떤 사람들이 많아져야 할까. 저는 무조건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시보다 사람이 가진 사랑이 많은 도시, 그리고 그런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도시에 내일이 있다고 생각해요. 문화도시는 바로 그런 내일을 만드는 사업이죠. 도시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도시를 위해 ‘하는 사람’이 도시에 남습니다. 그런 의미를 잘 전하고 싶었는데 ‘하는 사람’을 ‘사람 하는’으로 뒤집었더니 메시지에 생동감이 더해졌습니다. ‘사랑하는’도 연상되죠. 이 슬로건을 만들고 뿌듯했는데 동료들도 맞장구를 쳐주어 기뻤죠. 센터장님은 거기에 ‘사랑하는’도 넣자고 해서 ‘사람하는 도시, 사랑하는 도시’가 탄생했습니다.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강영규, 문화도시 춘천 콘텐츠 PD 이나래, 춘천도시문화센터 축제팀 과장 최수현,  센터장 강승진

9. 당신이 가진 내적인 힘들 가운데, 어떤 힘이 강하신 것 같나요(장점, 나다운 것 등)?

저는 어렸을 적을 떠올리거나 이야기하는 것을 좀 꺼리는 편이에요. 불우한 환경이었고 제 뜻과는 다른 안 좋은 일들이 이어져서 사는 게 녹록지 않다는 걸 먼저 배웠거든요. 그래서 좋은 점은 맷집이 좋다는 겁니다. 그리고 밝음. 사람들이 제게 밝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밝음은 어쩌면 생존전략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래서 지금의 제가 스스로 기특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나를 조금 더 아끼고 나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몇 가지 규칙을 정했습니다. “겪지 않은 일을 추측하거나 단정하지 않는다. 일단 부딪혀본다. 어차피 겪을 일이었음으로 후회하지 않는다. 미워하는 데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일단 이 정도의 규칙을 가지고 사는데 앞으로 추가될 수 있습니다. ^^         

*춘천 로컬크리에이터와 대화하고 있다

10. 당신의 생각과 행동에 영감/영향력을 주었던 책, 음악, 공연, 영화, 전시 혹은 저자, 작가 등을 소개시켜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예전에는 책이나 음악, 영화, 공연에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저는 시를 정말 좋아해서 영감을 얻고 싶을 때는 시집을 펼쳐보곤 하죠. 좋아하는 시인은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도 힘들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저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영감을 주는 콘텐츠가 달라졌습니다. 바로 시를 쓰는 것과 춤을 추는 일이죠. 시는 3년 정도 배우고 썼는데 시인이 되고 싶어서라기보다 시를 쓰면서 나를 더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시 쓰면서 스트레스도 받지만 치유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시를 쓸 때마다 상황에 적절한 단어를 찾아보곤 하는데, 그런 훈련이 일에도 꽤 도움이 된답니다.         

*자작시 ‘신작로’ 기타리스트의 세탁기(2021, 달아실) 출간

11. 앞으로 어떤 일(작업, 역할)을 하고 싶나요? 그것을 위해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준비하고 있(싶)나요?

앞으로 어떤 지역에서 어떤 일을 할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지역을 넘어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요.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이 가진 서사에 감동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 연결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그러면서 ‘헤쳐 모여’ 일하고 싶어요. 소속감도 좋지만, ‘프로N잡러’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기도 해요. 그래서 준비하는 일은 다른 지역으로 떠나서 사람들을 만나기! 아직 바빠서 못하고 있지만, 조만간 떠날 거예요.  

*춘천 지역 시 읽기 모임에 참여한 모습

12. 당신을 좀 더 알 수 있는 소셜미디어/사이트/뉴스를 알려주세요.

https://www.facebook.com/oopsnarae 

    

장석류의 예술경영 인물열전,

"Fusion of horizon".


도시에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콘텐츠를 만드는 프로듀서 이나래 편. 끝.    


매거진의 이전글 지역문화유산의 동시대성을 창조하는 문화기획가 하정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