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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문화행정의
의사결정은 합리적일까?

[장석류의 예술로(路)] 2025.03.03

by 장석류

5개 국립예술단체 통합 의사결정에 관하여


가상 뉴스 : 대통령실 5개 정부 부처 통합추진

미래의 어느 날, 대통령실로부터 이런 뉴스가 나왔습니다. "올해 3월 초 발표 예정인 국정운영 비전에서 교육부, 보건복지부, 과기정통부, 여가부, 문체부를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대통령실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정부 혁신 차원에서 "부처별 기획조정실과 운영지원과의 업무가 불필요하게 중복되어 통합을 통해 정부 행정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제고하고자 한다. 관계 부처 공무원들은 업무가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했습니다. 부처별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니 "따로 우리와 협의한 바는 없다고 하였다." 문체부 기획조정실장, 정책기획관, 운영지원과장은 대통령실의 입장에 대해 "향후 어떻게 일을 해야 하며 이게 무슨 효율을 높이자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라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만약 대통령실이 실제 이런 행동을 하면, 저는 문체부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시민들을 위해 펜을 들 것 같습니다.


5개 단체 통합의 명분 : 효율을 높이겠다는 거짓말

응원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문체부는 안타깝게도 상기 가상 뉴스와 비슷한 맥락으로 문화비전 2035에서 올해 5월까지 '5개 국립예술단체(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국립현대무용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사무처 통합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현시점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인용, 기각에 관한 결정을 기다리는 시점이고, 인용이 된다면 5월 대선 이후 새로운 정부 수립이 빨라질 수도 있습니다. 문화비전 2035는 향후 10년의 정책 비전을 담는 것입니다. 정부의 비전은 우리가 함께 어디로 가보자는 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문화비전은 문체부만의 비전인가요? 문화비전은 문체부 혼자서 하는 단식 경기가 아닙니다. 유관 공공조직과 시민들도 함께 하는 단체전입니다. 보통 일방적으로 통보되는 비전은 발표가 되어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폐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서두를까요?


5개 국립예술단체를 통합하고자 하는 명분은 '행정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제고한다'는 것입니다. 진단한 조직 문제는 예술단체별 사무처가 소규모로 운영되어 전문성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으로 5개 예술단체 ‘통합’을 결정합니다. 각각의 국립예술단체 혹은 각각의 단체가 품고 있는 예술 분야가 지금보다 좀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문제를 우선순위로 두고 해결해야 할까요? 할 수 있는 얘기도 많고, 풀어야 할 과제도 많습니다.


그런데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게 못으로 보이는 인지 편향이 발생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통합이라는 못을 박자, 그러면 효율이 발생할 것이다!?’ 통합이라는 못을 쾅쾅 박으면 예술단체별 목표는 표류하고 서로가 갈등하며 잃게 되는 비효율이 더 크게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건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음과 다른 것입니다. 효율적일 것이라는 행정의 인지 편향에 속지 않는 것입니다. 게다가 정부 행정은 해당 의사결정이 효율적이고 타당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논거를 주지도 않았습니다. 망치를 든 사람이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고 있습니다. 다시 옷을 입고 현장의 얘기를 듣고 판단해야 합니다.


조직이 새롭게 통합되어 시너지가 나려면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존재 이유인 미션과 가야 할 목적지인 비전이 합의되어야 합니다. 통합 조직의 ‘미션’과 ‘비전’을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발레단은 발레단의 비전을 오페라단은 오페라단의 비전이 필요합니다. 서로는 따로 같이 협력할 수는 있지만, 단순 병렬 통합은 각방을 쓰는 형식적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상태가 될 것입니다. 실제 다섯 개 단체는 결합을 원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이 의사결정의 더 큰 위험성은 정작 중요한 논의인 각각의 예술단체와 장르가 좀 더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어떻게 협력해 변화를 만들어야 할까? 등 좀 더 생산적인 논의를 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행정은 합리적일까, 좀 더 좋은 의사결정을 위한 조직문화

행정은 합리성을 추구하지만 정말 합리적일까요? 문화행정학자로서 지난 2년간 연구한 결과물인 저서 <좋은 조직문화란 무엇인가>를 이번 주에 출간합니다. 여기서 조직문화란, 조직에 정착된 일하는 방식과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번 5개 국립예술단체 통합을 다루는 문체부 관료조직의 의사결정 행태를 살피면서 이런 연구 질문이 생각났습니다. 창의적 예술 분야에서 ‘정부 고위 관료에게 정착된 일하는 방식과 태도는 어떻게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의사결정을 만드는가?’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은 제한된 합리성을 가지고 있고, 감정과 직관, 편향에 영향을 받는 의사결정에 관해 연구합니다. 현재 문화부의 ‘조직문화’는 ‘조직의 제한된 합리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합리적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편향을 줄이려면, 내가 가장 잘 안다는 편견을 조심하고 많이 들어야 합니다. 정책의 진짜 수요를 결대로 밀어 치려면, 공을 봐야 합니다. 이대로 배트를 휘두르면 헛스윙 삼진입니다.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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