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예술×기술) 협업 워크숍

기술을 대하는 방식과 태도 '2×2 스펙트럼 매트릭스'를 중심으로

by 장석류
수요 : 예술이 '공학(기계, 전자, 컴퓨터 등) 기술'을 만나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 영역을 특정 예술 장르로 분류하지 못해 우리는 '다원' 장르라고 얘기합니다.

문화예술 공공조직 중에서 나의 예술 영역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자극을 받고 싶어 하는 예술인을 대상으로 '예술×기술'이 만나는 기회와 환경을 제공하는 곳이 많습니다. 예술가와 공학자를 섞어 놓으면, 어떤 융합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말이죠. 하지만 현실에서는 기대보다 '협업 링크'가 잘 걸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예술과 기술이 만나는 다원 영역에서 '수요를 결대로 밀어치는' 협업 방식에 대해 고민해 보았습니다. 성남문화재단과 진행한 <예술기술, 업 스케일링> 워크숍을 설계, 진행 과정을 나눠보겠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 있고, 어디로 가고 싶은가

전지 한 장이 벽에 붙어 있었다. 가로축과 세로축이 교차하는 단순한 2×2 격자. 누군가 앞으로 나왔다. 매직펜을 들고 격자 위에 자기 이름을 썼다. 그리고 화살표를 그었다. "저는 지금 여기 있는데, 여기로 가고 싶습니다." 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예술기술 융합, 다원예술. 이 씬에 있는 사람들조차 서로를 잘 모른다. 장르의 경계가 흐릿하고, 작업 방식이 제각각이고, 쓰는 언어가 다르다. 회화에서 출발한 사람과 전자공학에서 출발한 사람이 같은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도, 서로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이것을 나눌 공통 언어가 없었다. 올해 성남문화재단 〈예술기술, 업 스케일링〉 커뮤니티의 협업 워크숍을 설계하면서 이 문제를 먼저 풀어야 했다. 15인의 지원서와 포트폴리오를 읽으며 한 가지가 선명하게 보였다. 이들은 각자 다른 곳에서 왔고, 각자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그 '다름'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 협업의 출발점이었다.


이를 위해 경쟁이 치열했던 면접 과정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지원서와 포트폴리오 전체 파일을 분석했다. 워크숍 설계에 앞서 참여 의도와 기술을 대하는 태도를 유형화해보고 싶었다. 또한, 스스로 본진으로 생각하는 곳이 어디인지가 궁금했다.


왜 협력인가

기술은 무어의 법칙으로 팽창한다. 반도체 집적도가 2년마다 두 배가 되듯, 기술 변화의 속도는 지수함수다. 반면 인간의 창작 경험과 감각이 통합되는 속도는 선형이다. 이 둘 사이에 매년 간극이 벌어진다. 개인이 모든 기술의 최신성을 단독으로 감당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협력은 선택이 아니다. 동시대 예술가의 생존 전략이다. 게다가 예술인은 일반 직장인처럼 출근의 루틴을 가지고 동료를 만나기도 어렵다. 협력이 필요하다.


협력이란 무엇인가

그런데 '협력'이라는 말이 너무 쉽게 쓰인다. 이름을 나란히 올리는 것을 협력이라 부르기도 하고, 각자의 작업을 함께 전시하는 것을 협력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자를 쪼개보면 이야기가 선명해진다. 협(協)은 십(十)과 력(力) 세 개로 이루어진 글자다. 십(十)은 네 방향이 중앙으로 모이는 구심점이고, 력(力) 셋은 머릿수와 다양성이다. 여러 에너지가 하나의 방향으로 모이는 것, 그게 협의 본뜻이다. 협력(協力)은 타인을 이해하고 각자의 힘을 보태는 초기 단계다. 협업(協業)은 공동의 목표를 위해 전문적인 업(業)을 결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단계다. 협력 없이 협업은 없다. 먼저 서로의 업(業)을 봐야 한다.


세 가지 도구

워크숍은 세 가지 도구로 설계했다. 첫 번째는 이미지 카드 자기소개다. 수십 장의 이미지 카드를 테이블에 펼쳐놓고, 나를 표현하는 카드를 고른 뒤 그 이유를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카드가 있으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카드로 향한다. 내향적인 사람도, 자기표현이 낯선 사람도 카드를 매개로 이야기할 수 있다. 예술인들로 구성된 이 그룹에서 특히 강력하게 작동했다. 같은 카드를 고르고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왔고, 그 차이가 서로에 대한 첫 번째 호기심을 만들었다. 한 참여자가 말했다. "카드가 있어서 평소에 이야기하던 것 외에 다른 틀로, 짧은 자기소개에서도 깊고 많은 생각을 꺼낼 수 있었다." 이 워크숍을 설계하게 된 데는 한 가지 계기가 있었다. 이전 커뮤니티의 참여자가 마지막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서로를 너무 늦게 알았어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협업은 결국 서로를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앎은 생각보다 일찍, 깊이 시작될 수 있다.


두 번째는 강점 카드다. 내가 잘 쓰는 힘이 무엇인지를 찾는 과정이다.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융합 창작자일수록 자신의 강점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강점 카드의 워딩이 힌트가 되어, 혼자서는 찾기 어려웠던 자기 역량의 언어를 팀 안에서의 대화를 통해 발견하게 된다. 세 번째가 핵심이었다. 기술을 대해는 태도와 방식을 담은 2×2 매트릭스다.


매트릭스 위의 발견 : 기술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

이 두 축이 교차하면 네 개의 사분면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현장에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처음에 참여자들은 자신의 좌표를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나는 어디 있는 거지?" 스스로 말하면서, 옆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누군가의 화살표를 보면서 — 그렇게 논의를 거치며 점점 자신의 위치가 명확해졌다. 매트릭스가 정답을 주는 도구가 아니었다. 대화를 통해 좌표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이미 피어 러닝이었다.

가로축은 매체의 형태다. 왼쪽은 코딩·알고리즘·AI 등 디지털 기술, 오른쪽은 센서·기계장치·아두이노 등 물리적 기술. 공학적인 관점으로 보면 왼쪽은 컴퓨터공학에 가깝고, 오른쪽은 기계공학, 전자공학에 가깝다. 왼쪽은 온라인 디지털 세계, 오른쪽은 물질적으로 현존하는 물리적(Physical) 오프라인 세계이다.


세로축은 기술을 대하는 태도다. 위는 기술을 직접 분해하고 조립하며 다루는 재료(Material)로서의 기술, 아래는 완성된 소프트웨어나 툴을 활용하는 도구(Tool)로서의 기술. 세로축의 아래는 연출가적 관점에서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기술을 도구적으로 사용하는 태도에 가깝고, 위쪽은 기술감독 관점에서 다양한 재료를 탐구하는 태도에 가깝다.


어떤 이탈리안 요리사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 요리사가 한식 다이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초반에는 고추장, 된장, 간장 등을 재료를 이탈리안 요리의 한식의 바이브를 입혀보는 도구로 대했다가 그 깊이를 더 알기 위해서 '한국의 장'을 재료로서 탐색할 수도 있다. 어느 순간 '한국의 장'이라는 재료가 충분히 탐색되었다 싶으면 다시 요리를 설계하고 구성하는 연출의 입장에서 '한국의 장'을 도구로서 대할 수 있다. 이 얘기는 어떤 창작자가 한 가지 분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4가지 분면을 움직이며 성장한다는 의미이다.

1사분면(물리적×재료)의 물리적 개척자, 2사분면(디지털×재료)의 시스템 설계자, 3사분면(디지털×도구)의 디지털 연출가, 4사분면(물리적×도구)의 공간 안무가로 이름을 붙여보았다.


그런데 워크숍에서 중요한 것은 좌표가 아니었다. 벡터였다. 벡터는 물리학 용어다. 크기와 방향을 동시에 갖는 양. 단순히 '어디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만큼의 힘으로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가'를 말한다. 매트릭스 위에서 벡터는 이렇게 번역된다. 나는 지금 어디 있고(본진), 어디로 가고 싶고(추구미), 그 힘이 얼마나 깊은가(역량의 크기). 점 하나가 아니라 점에서 뻗어나가는 화살표. 그 화살표가 각자의 성장 의지를 담는다.


15인의 참여자들에게 두 가지를 물었다. 1) 창작의 고향, 기원, 바탕은 어디인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싶은가. 현재 내 작업 위치에서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 방향으로 화살표를 그었다. 그 순간 매트릭스는 분류표가 아니라 각자의 성장 지도가 됐다. 벡터는 4방향 모두에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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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재료를 직접 조립하던 사람(1사분면)이 코드와 데이터로 정교화하고 싶다고 했다(→2사분면). 디지털로 논리를 설계하던 사람(2사분면)이 그것을 현실의 물질로 꺼내고 싶다고 했다(→1사분면). 디지털 툴로 비주얼을 연출하던 사람(3사분면)이 현실 공간으로 꺼내고 싶다고 했고(→4사분면), 공간을 장악하던 사람(4사분면)이 디지털 연출을 더 정교하게 하고 싶다고 했다(→3사분면). 시스템을 설계할 줄 아는 사람(2사분면)이 공간 연출의 감각을 갖고 싶다고 했고(→4사분면), 물성을 직접 조립하던 사람(1사분면)이 그것을 더 매력적인 결과물로 연출하고 싶다고 했다(→4사분면).


여기서 한 가지가 더 보였다. 벡터에는 크기가 있었다. 매트릭스 위의 점이 클수록 — 즉 그 영역에서의 역량이 깊을수록 —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려는 힘도 컸다. 도구로 기술을 다루던 사람이 재료 방향으로 올라가고, 거기서 역량이 쌓이면 다시 연출 방향으로 내려가고 싶어진다. 직선이 아니라 나선이다. 매트릭스 전체를 나선형으로 넓혀가는 성장의 궤적.


협업의 궁합은 자기 이해에서 시작된다

벡터가 시각화되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옆 사람의 화살표가 눈에 들어왔다. 저 사람이 지금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려는지가 보이자, 그 사람의 포트폴리오와 강점이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다. "저 사람과 나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협업의 궁합은 처음부터 찾는 게 아니다. 그런데 자기 이해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모두의 자기 이해가 동시에 공개되는 순간이다. 내가 나를 아는 것과, 내가 나를 알고 있다는 것을 동료들이 함께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15인이 각자의 화살표를 같은 전지 위에 그렸을 때, 그 지도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것이 됐다. 피어 러닝(Peer Learning)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누군가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서로의 본진과 벡터가 보일 때 동료가 동료의 가장 좋은 교사가 된다.


워크숍의 마지막 순서는 한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나는 ( )을 탐구하는 ( )입니다. 이번 워크숍을 통해 나의 ( ) 강점을 동료들과 나누고, ( ) 영역으로 나의 세계를 확장하겠습니다."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 이 문장을 읽었다. 각자의 언어로, 각자의 벡터를 담아서. 그때 방 안에 생겨난 것은 단순한 자기소개가 아니었다. 내 작업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처음으로 갖게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언어가 생겼을 때, 비로소 서로에 대한 리스펙과 다음 단계에 대한 기대감이 함께 올라왔다.


협력은 매칭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자기 이해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자기 이해는 — 혼자가 아니라 — 서로가 보는 앞에서 화살표를 그을 때 비로소 깊어진다. 피어 러닝이란 결국 이것이다. 내가 어디 있는지를 말하고, 상대가 어디 있는지를 듣고, 그 거리와 방향을 함께 확인하는 것. 그 순간 동료는 경쟁자가 아니라 내 성장의 지형도를 함께 그리는 사람이 된다. 워크숍이 끝난 뒤 한 참여자가 이런 말을 남겼다. "나의 고민이 다른 사람들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좋았다." 또 다른 참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4개 분면으로 나눠지는 것이 재밌었다. 같이 작업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협업은 그렇게 시작된다. 거창한 기획이 아니라, 내가 어디 있는지를 말하는 것에서. 그리고 그 말을 함께 듣는 사람이 생기는 것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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