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골에 사는 이유
일하는 학교가 바닷가 시골에 있어서 시골 생활 한지가 오래됐다. 십구 년 전 처음 이사 왔을 때 대도시에서만 살다가 갑자기 시골에 살게 되니 몇 달 만에 사는 게 따분해졌다. 다행이랄지, 수업도 많고 논문도 써야 해서 경치를 만끽할 여유도 없이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팔 년이 지나고 운 좋게 재택근무 기회가 생겨 친구들이 있는 텍사스로 이사를 가서 육 년 가까이 살았다.
텍사스에서는 대도시에서 살았는데 한국처럼 대중교통이 잘 돼있진 않아도 미국의 다른 도시와 달리 모든 필수 시설이 집 가까이 있고 친구들도 있어서 심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살인적인 더위인데, 팬데믹 때 에어컨이 고장 나서 사십도 넘는 날씨에 삼일 밤낮을 보내고 나니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았다. 이미 쾌적한 날씨에 익숙해져 있어서 극심한 날씨를 더는 견디기 힘들었던 거다. 텍사스에 정이 뚝 떨어져서 시골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다시 사 년을 넘게 살고 또다시 참을 수 없이 지겨워져서 재택근무 허가를 얻어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일 년을 살았다. 평생 대도시에서 주로 살았으니 샌프란시스코에 잘 맞을 거라 생각했으나 의외로 나랑은 너무나 안 맞는 도시라는 걸 알게 됐고 결국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나는 똑같은 나다. 어차피 집순이고 사람 안 만나고 친구 사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다. 그리고 1년에 반 이상 집에 없고 대부분의 일은 온라인으로 한다. 쇼핑도 안 좋아해서 온라인으로 필요한 것만 주문한다. 즉, 어디에 살든 별로 큰 상관이 없다는 거다. 그러나 분명 작지만 나를 편하게 또는 불편하게 하는 것들이 있고 살면서 경험하면서 조금씩 알게 된다. 자신의 성향을 잘 알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이 필요한데, 극심한 날씨를 견디기 힘들어한다는 걸 텍사스 생활에서 깨달았듯이 이번에 샌프란시스코 생활이 나의 성향을 확실히 더 깨닫게 해 줬다.
샌프란시스코를 주거지로 선택했던 이유는 서울에서처럼 어디든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고 집 근처에 병원이 있고 걸어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그런 삶을 원해서였으나, 실제로 살아보니 그런 편리함을 즐기는 동시에 소음과 불결함과 불쾌한 냄새와 무엇보다 일상에서 만나야 하는 무관심하거나 무례한 사람들을 견뎌야 했다. 자주 겪는 작지만 불쾌한 경험들이 나를 지쳐가게 했다.
돌아온 시골집은 여전하다. 똑같이 심심하고 주변에는 7-80대 할머니 할아버지들 밖에 없고 출근을 해야 되니 아침부터 서둘러야 해서 아침의 느긋한 일상이 깨졌다. 그러나 분명히 따분함을 죽도록 힘들어했던 이전의 나와는 많이 달라진 나를 본다. 심심하지만 지겹진 않다. 오히려 깨끗하고 조용하고 안전하고 아름다운 환경이 늘 느긋한 미소를 지게 한다. 나를 더 편하게 하고 덜 불편하게 하는 곳으로 돌아와서 삶이 밝아진 느낌이다.
예전에 시골집을 떠날 때의 핑계가 너무나 지겹고 따분해서였다면 텍사스를 떠난 이유는 날씨 때문이고 이번에 돌아온 이유가 샌프란시스코가 더럽고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사실 다 핑계고, 그냥 나라는 사람에게 더 잘 맞는 곳을 알게 되었고 현재 살고 있는 곳의 단점들이 내가 견딜 수 있는 수준이고 장점들에 대해 감사하게 된 것이 시골생활에 만족하게 된 이유이다. 샌프란시스코 경험을 통해서 비록 대중교통의 혜택이 적고 따분하지만 공기 좋고 사람들 친절하고 깨끗하고 범죄 걱정 없이 안전하고 조용한 곳이 나에게 잘 맞는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또 시골집을 떠나게 된다면 또다시 핑계를 대겠지. 주변에 내 또래도 없고 지겹고 편의시설이 멀고 어쩌고 저쩌고... 세상에 100% 자기랑 잘 맞는 사람도 없고 잘 맞는 장소도 없고 잘 맞는 나라도 없다. 그냥 이것저것 바꿔가며 경험해 보고 그중에 이런저런 단점을 견딜 수 있는 정도로 나랑 맞는 그런 곳에서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거다.
그래도 늘 핑계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뭐든 핑계가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