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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Willow Mar 12. 2018

꼬마들의 우정

순수하고 애틋한 아이들의 마음


"엄마, 내일 아침 9시까지 가기로 했어요.

혹시 잊어버릴지 모르니까 엄마가 꼭 나한테 다시 얘기해줘야해요. 아셨죠?"


“알았어, 알았어, 아라~~~쓰!”

어젯밤 우리집 둘째 민재의 신신당부. 그것도 벌써 세번째였다. 녀석, 해야할 일 잘 까먹는 스스로를 너무 잘 파악하고 있구나.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캠핑장에서 어제 처음 만난 친구들과 오늘 아침에도 같이 놀기로 한 모양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 아이들은 여기서 한 시간쯤 걸리는 토마코마이苫小牧에 사는데 주말을 맞아 부모들과 함께 우리 동네로 캠핑 여행을 왔단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히다카日高 마을은 높고 낮은 산들에 둘러싸여 있고, 그 한가운데를 사루강沙流川이라는 꽤나 큰 강줄기가 가로질러 흐르는 아름다운 시골마을. 강 바로 옆에 넓직하고 깨끗하고 시설도 훌륭한 캠핑장이 있는데, 홋카이도에서 삿포로나 토마코마이 등 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주말을 보내기 위해 자주 찾는 곳이다. 지금과 같은 여름 성수기에는 주말에 예약이 꽉 찰 정도로 인기가 많다. 우리가 이번 여름동안 머무는 집은 캠핑장 바로 위편에 위치하고 있어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창 밖으로 보일 정도이다. 그렇다고 뭐 캠핑장에 놀러온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노는 것은 아니다.


민재가 캠핑장에서 친구를 만든 사연은 이렇다.


히다카 사루가와 캠핑장

어제 히다카 소학교 3학년 학급의 레크레이션 행사에 민재와 함께 참가했다. 홈스쿨링을 하는 우리집 아이들은 1년에 한, 두달 정도 일본문화체험 및 일본어 강화를 목적으로 일본소학교를 다닌다. 우리가족이 살고 있는 고베처럼 규모가 있는 도시의 소학교는 한 반에 학급 인원이 30여명은 되는데다 공부도 꽤 많이 시키고 경쟁도 심한 편이라 일본어가 서툰 아이들을 보내기엔 좀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런데 우리가 여름과 겨울을 지내는 홋카이도 히다카 마을은 전교생이 50명, 한 학급이 많아야 열명 남짓인 소수인원인데다 시골학교의 온화함과 느긋함이 있어 일본어 좀 부족해도 맘 편하게 큰 부담없이 다닐 수 있는 것이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놀고, 물 좋고 공기좋은 때문일까 학교 급식은 또 얼마나 맛있는지. 여러모로 우리 가족에게는 안성마춤인 체험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여름에는 진도가 좀 더딘 홈스쿨링 과정을 따라잡기 위해 소학교 체험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학교에서 우리가 온걸 어찌 알았는지, 방학 전에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어울리는 레크레이션 행사에 민재를 초대한 것이다.  1년에 한달을 다녀도 민재는 히다카 소학교 학생이라는걸까, 학교 측의 세심한 배려에 새삼 고마운 마음이다.


레크레이션 장소는 캠핑장 바로 맞은편에 있는 공원. 집에서 걸어서 5분 걸리는 곳이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 민재는 금새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털어내고 함박웃음을 보이며 아이들과 어울려 뛰고 구르고 신나게 어울린다. 나 역시 민재 친구들의 부모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그간 지낸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수다의 시간을 보냈다. 화창한 날씨를 즐기며 아이들과 더불어 수건쟁탈전, 부모와 함께 달리기 등 재미있는 게임을 함께 하고 기념촬영도 하다보니 어느덧 헤어질 시간.


히다카 소학교 즐거운 레크리에이션 시간

“시간 괜찮으시면 캠핑장에서 같이 저녁드시는거 어때요? 식사거리는 다 준비해놨어요”


집에갈 채비를 하는데 한 엄마가 다가와서 말을 건다. 집 근처에 사는 테루키 엄마다. 물어보나마나 마땅히 끝나고 다른 일정은 없다. 우리가족이 홋카이도에서 여름에 하는 일이란 대충 책읽기, 곤충채집, 근처 파크골프장에서 골프치기, 곰순이와 자연산책, 강가에서 놀기, 미술활동, 피아노 연습 정도. 특별한 일정이라는게 있을리 만무하다. 있다 해도 대부분 죄다 변경 가능하고.


흔쾌히 좋다고 대답하고서는 집으로 일단 돌아와 바베큐파티에 합류할 준비를 했다. 초대를 받은거지만 그래도 뭐라도 가져가는 것이 예의일테니 얼마전 삿포로의 코스트코에서 산 쏘세지와 간식거리, 맥주를 챙겨넣었다. 집에서 일해야 한다는 남편과 책을 읽겠다는 연수(우리집의 내향적 성향 인간 둘)를 두고 몇걸음만에 캠핑장 도착.  민재는 이미 캠핑장으로 바로 이동해 친구들하고 뛰어놀고 있다.


모이기로 한 바베큐장에 도착해보니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다. 아하, 모든 인원을 초대한게 아니었군. 원래 친하게 지내는 가족들 중심으로 이왕 모였으니 캠핑장에서 더 놀자, 이렇게 된 상황이었다. 의외로 소심하고 위의 둘보다는 분명 낫지만 보기보다 사교술 떨어지는 나, 약간 뻘쭘해져서는 수줍게 인사하고 벤치 끄트머리에 앉았다. 이 곳 캠핑장은 캠핑을 하는 손님들도 있지만, 점심이나 저녁에 바베큐를 하며 모임을 하려는 동네 사람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천혜의 자연을 가진 홋카이도의 푸르른 대자연 속, 습기 없고 모기없는 환상적인 날씨에 모든 필요설비가 갖춰진 캠핑장에 한사람당 단돈 100엔(우리 돈 1000원)으로 이용할 수 있으니, 이곳 사람들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근사한 여름철 사교모임 장소인 것이다.


캠핑장에서 점프하는 민재군


이제껏 왕래를 하면서 얼굴은 대충 익혔지만 아직 이름은 잘 모르는 민재 반친구 부모들과 통성명하고 이런저런 얘기꽃을 피웠다. 대부분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로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소학교 출신이란다! 내가 나고 자란 곳에서 내 아이들도 자라고, 내가 나온 학교를 내 아이가 다니는것이 이들에게는 참 자연스러운 일인데, 서울에서 나고 자라면서 몇 번씩이나 이사를 다닌 나에게는 참 생소하기만 하다. 일본에서는 나이를 묻는게 실례로 간주되거나 별 관심이 없는데 어쩐 일인지 이 엄마들 내 나이를 궁금해한다. 홋카이도 사람들은 확실히 직설적이라니까, 속으로 생각하며 나이를 서로 밝히고 보니 내가 가장 연장자라는 썩 유쾌하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ㅠ ㅠ  시골이라 그런지 결혼들도 일찌감치 하고 아이들도 빨리 낳는 것이다. 이들은 고베에 사는 한국인 가족이 왜 매년 여름과 겨울이면 자기네 시골마을에 오는지, 그 정체와 배경이 궁금했었는지 질문이 쏟아진다. 늘 받는 질문이니 조근조근 우리 가족에 대해 얘기해주고, 히다카 칭찬과 더불어 우리 가족이 이 마을을 얼마나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말해주었다. 그들에게는 날때부터 보고 자란 환경이니 마시는 물과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이 작은 마을이, 어떤 이방인에게는 더없이 멋지고 아름다워 그 먼 길을 매번 오게 만드는 곳이라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한편 고마운 모양이다.


바베큐 모임에서 학부형들과


엄마는 여전히 어색한 표정과 자세로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는 반면, 민재는 캠핑장을 쏘다니며 아이들과 아주 신이 나게 노는 모양인지 올 생각도 안한다. 뭐하고 노나 싶어 찾아보니까 반 친구들 몇명과 놀다가 나중에는 부모들과  캠핑 여행온 듯한 아이들하고 친구를 먹고 정글짐에서 놀고 있다. 맨날 누나랑만 놀다가 또래 아이들하고 노니 정말 재미있나보다. 그 짧은 시간에 새로 만난 아이들하고 얼마나 친해졌는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뛰어 다니면서 까르르 웃고 아주 신이 났다.


이 아이들이 바로 민재가 다음날 아침 캠핑장에서 놀기로 약속한 아이들이었다. 저녁 8시가 넘어 저녁모임을 정리하고 민재보고 이제 집에 가자고 하니, 그 두 아이하고 서로 헤어지기 싫은지 좀만 더 놀면 안되냐는 것이다. 그럼 캠핑장 소등시간인 9시까지만 놀고 집으로 돌아오라고 당부를 하고, 모인 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나는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9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민재는 내일 그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니, 가기 전까지 캠핑장에 가서 그 아이들하고 함께 놀기로 했다며 나에게 아침에 잊어버리지 않게 꼭 얘기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한 것이다.



다음날 아침, 내가 얘기할 필요도 없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갈 채비를 마친 민재는 9시도 되기 전에 캠핑장으로 출근하였다. 12시가 다 되어가 이제 올 때 되었나 할 때쯤, 밖에서 두런두런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창밖을 내다보니 민재를 포함한 아이들 3명이 어깨동무를 하고는 신나게 발맞춰 집을 향해 뛰어오고 있다. 현관문을 여니 두 친구녀석들이 안녕하세요, 인사한다. 민재는 제 친구들이라며 아이들을 한명씩 나에게 소개시켜준다.

“얘네가 이제 집으로 곧 출발해야 하는데 우리 집에 와 보고싶다고 해서 잠깐 데리고 왔어요.”

집으로 들어온 아이들은 민재가 그린 그림도 구경하고 피아노도 함께 치고 보드게임도 하며 즐겁게 논다. 어제 친구먹은거 맞나, 아이들이란 참… 어른인 내 눈엔 저렇게 빨리 마음을 열고 친해질 수 있다는게 신기하기만 하다.


밴 두대가 천천히 우리집 방향으로 들어선다. 보나마나 아이들 부모인 듯 하다. 캠핑장 체크아웃을 하고 아이들이 오지않으니까 직접 데리러 온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니 다들 차에서 내린다.

좀 어색하긴 했지만 서로 인사를 하고 통성명도 한다. 아들 덕분에 이렇게도 사람들하고 만나게 되는구나, 속으로 생각하면서.

 

아이들은 헤어지는게 너무나 아쉬운 모양이다. 서로 끌어안고서는 떨어질 생각을 안한다. 인사를 하고 차에 타려다가 다시 뒤돌아서서 와락 민재를 껴안고, 또 타려다가 돌아서고… 그 모습을 보자니 왠지 내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러기를 몇분일까, 겨우 겨우 아이들이 마지못해 차에 타고 차가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민재는 멀어져가는 차를 따라가며 뛰기 시작했다.  두 아이가 차 천장 위로 몸을 내밀고는 큰 소리로 ‘안녕, 안녕, 꼭 또 만나' 하며 인사를 한다. 멀어지는 차와 아이들, 손을 흔들며 차 뒤를 따라 뛰어가는 민재의 모습이 히다카 산맥을 배경으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차가 점점 보이지 않게되자 민재,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차가 사라진 쪽을 바라본다. 터덜터덜 걸어 돌아오는 민재를 꼭 안아주었다.


떠나가는 친구들. 차를 따라 뛰어가는 민재


“좋은 친구 사귀었구나. 다음에 토마코마이에 그 아이들 만나러 꼭 한 번 놀러가자.”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민재와 집안으로 들어가는데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 아까 통성명 하면서 전화번호를  교환했던 아이 중 한명의 엄마이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 차 안에서 결국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저도 눈물이 나네요. 다음번에 꼭 아이들 만나게 해줘야겠습니다.’  


2017년 여름 히다카에서의 짧지만 눈물겨웠던 꼬마들의 우정 이야기. 민재의 유년 시절의 추억의 한 페이지로 오래토록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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