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weetWillow Feb 23. 2018

우리집 반려견의 가출

홋카이도 쿠리야마에서 생긴일

“곰순이 잘 있겠죠?”


1시간 거리에 있는 삿포로 과학관에 가족모두가 나들이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반나절동안 혼자 집밖에 묶여있을 곰순이가 안그래도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집이 가까와올수록 웬지 더 불안한 마음이다. 엄마의 본능적인 예감인걸까?

우리가 한달간 머문 쿠리야마 마을 언덕위의 체험하우스

쿠리야마 체험하우스


홋카이도를 사랑해 마지않는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홋카이도의 한 작은 마을에서 한달간 이주체험을 하기 시작한지 보름쯤 지난 상황이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곳은 삿포로에서 한시간쯤 떨어진 쿠리야마라는 마을. 이 곳 역장(우리나라로 치면 동사무소 정도) 에서 제공하는 체험하우스는 꽃이 만발한 언덕에 자리잡은, 지은지 몇 년 안되는 꽤나 고급스러운 주택. 앞으로 조성할 분양단지 중 한 채를 쿠리야마 역장에서 구입하여 체험하우스로 활용하고 있는데, 한 번 살아보고 좋으면 앞으로 짓는 집 분양받아서 이 동네로 이사오라는, 일종의 마케팅수단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홋카이도는 넓은 땅에 비해 인구가 워낙 적어서 각 지자체마다 인구를 늘리는 것이 핵심사업일 정도이다.  홋카이도 특유의 아름답고 광활한 자연경관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아름다운 집에서, 말도 안되게 저렴한 비용으로 한달을 살아볼 수 있다니 이게 웬떡이냐, 펄쩍 뛸 정도로 신나는 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집은 애완견이 함께 살 수 없는 집이었다. 다행히 융통성 있는 담당직원에게 온갖 애교와 설득, 별로 내세울 것 없는 협상력까지 동원, 곰순이를 집 안에는 들이지 않는 대신, 현관 앞 발코니에서 지내게 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쿠리야마 마을 직원이 발코니에 곰순이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밤에 혼자 밖에서 자야 할 곰순이가 걱정되긴 했지만, 일본에 오기 전에는 내내 집 앞 마당에서 살았던 곰순이 아닌가. 낮에 우리와 함께 밖에서 지낼테고, 밤에 잘때만 혼자 있는거라면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곰순이가 있을 발코니는 거실 창 바로 앞에 있어 원하면 언제나 곰순이를 볼 수 있다.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곰순이를 지켜볼 수 있으니 완전히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밤에 곰순이를 발코니에 묶어두고 우리만 집안으로 들어가면 물끄러미 쳐다보는 곰순이의 슬픈 표정을 보는 것은 늘 가슴아픈 일이었다.


“잘 있겠지, 뭐. 기다리고 참는거 제일 잘 하는 애잖아.”


남편도 걱정스러운 얼굴이지만 우리가 집에 두고 외출할 때도 언제나 아무런 말썽없니 잘 기다리는 곰순이니까 별 문제 없을거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우리가족은 주말 등 나들이를 나갈 때나 여행을 다닐 때, 애완견이 함께 갈 수 있는 곳으로만 주로 골라다니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여행은 주로 곰순이를 동반한 캠핑여행, 혹은 자동차로 이동할 수 있는 페리여행이 대부분이다. 당일로 외출할 때에도 주로 공원이나 바깥에 조성된 관광지들을 다닌다. 그런데 아이들이 가고싶어하는데 곰순이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있으니, 그건 바로 동물원과 박물관. 이날도 아이들이 과학관에 가고싶다고 하여 쿠리야마에 온지 보름만에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처음으로 곰순이를 두고 외출하게 된 것이었다.


다른건 걱정이 안되는데, 집 맞은편 초원에 올해 만들었다는 도그런이 마음에 걸린다.

쿠리야마 집 맞은편의 도그런에서

우리 곰순이도 개의 본능상 다른 개들이 눈에 띄면 어떻게든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맡거나 경계를 하기 때문이다. 당시 도그런에 매일같이 오는 개들이 몇 마리 있었는데, 그 아이들이 올때마다 곰순이가 흥분해서 짖거나 가까이 가려고 목줄을 세게 잡아당기곤 했다.


곰순이가 사라졌다!


이제 좌회전만 하면 우리가 머무는 집이 위치한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 들어선다.


“잠깐, 곰순이가…. 안보여!!!! “


“뭐, 설마….”


불안한 예감은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다. 우리 차 기척만 들리면 저 언덕 위 집의 발코니에서 길게 목을 빼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반가와하는 곰순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부랴부랴 차가 멈추기도 전에 밖으로 잽싸게 뛰어나가 곰순이가 있어야할 자리를 확인했다. 맙소사, 곰순이가 목줄을 반쯤 이빨로 끊고 탈출한 것이다! 그 굵은 목줄을 도대체 어떻게 끊은건지, 얼마나 오랜시간이 걸려 끊었을까, 그 와중에 곰순이가 입을 다치지는 않았는지 걱정.  


“곰순아, 어디 있니”


“곰순아, 돌아와!”


아이들까지 동원해 집 주변을 샅샅이 흩었지만 그 어디에서도 곰순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도대체 이 아이가 어디로 간걸까. 언덕길을 내려가면 트럭들이 쌩쌩 내달리는 큰 길이 나오는데, 혹시… 하는 생각에 아찔해진다.


곰순아 돌아와줘!


“내가 차를 타고 근처를 돌면서 곰순이를 찾아볼께요, 자기는 애들하고 여기서 기다려요.”


남편이 급하게 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청해야할 것 같아 일단 역장의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커다란 진도개가 혼자서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워할 것인가. 아무리 우리 곰순이가 태어나서 지금껏 누굴 공격해본 적도 물어본 적도 없는, 순하디 순한 토끼같은 개라지만, 생긴건 딱 곰하고 싸워서 지지 않는다는 아이누견하고 똑같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러니 동네주민들이 끊은 줄 반 대롱대롱 매달고 거리를 휘젓고 있는 곰순이를 보면 아이누견이 탈출한 줄 알고 신변에 위협을 느낄 것임은 물어보나마나. 곰순이가 위험한 개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담당자를 통해 동네사람들을 안심시켜야 한다. 혹시라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포획을 위해 이 아이에게 해를 가할 행위라도 한다면…. 하는 생각에 이르니 덜컥 겁이 났다.  


“저희 개가 어찌된 일인지 목줄을 끊고 집을 나갔어요. 사납거나 사람을 무는 아이가 아니긴 한데, 혹시라도 저희 개를 봤다는 분이 계신다면 꼭 연락해주세요.”

도그런 안에서 잠시 쉬는 곰순이의 모습

담당자와 전화를 끊고나서 또 집 주변을 돌아다니며 목청을 높여 곰순이를 불러본다.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곰순이가 큰길을 건너다 트럭이 달려드는 끔찍한 장면만 자꾸 연상됐다.


‘곰순이는 똑똑하고 재빠른 아이니 그런 일은 없을거야.”


고개를 저으며 남편에게 다시 전화.


“아직 못 찾았어요? 어디까지 간거에요?”


“여기 한 3킬로정도까지 큰 길을 가면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안보이네요. 반대쪽으로도 가볼께요.”


성과가 없다는 남편의 전화를 끊은지 얼마나 됐을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역장 담당자다.


“동네 주민 몇 분한테 전화를 했는데요, 그 중에 어떤 분이 곰순이 같은 개를 봤다고 하네요. 1시간쯤 전에 근처 동네 야구시합이 열리는 곳에서요.”


얘기를 들어보니 곰순이를 봤다는 그 장소는 우리 집에서 한 4킬로미터쯤 떨어진 곳. 그렇게나 멀리까지 갔단 말이냐!


어쨌든 적어도 곰순이가 아주 멀리까지 간 건 아닌 것 같고, 차에 치이거나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닌 듯 해 일단은 약간 안심이 됐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곰순이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기를, 혹은 남편이 곰순이를 발견했다는 전화를 주기를 기도하는 것 밖에 없다. 쉴새없이 쿵쾅거리는 마음으로 초조하게 기다림이 이어지던 순간, 울리는 전화벨.


“곰순이 발견했어요! 집 쪽으로 향하는 길로 걸어가는게 보여요. 지금 차로 따라가고 있어요.”


부리나케 바깥으로 나가 언덕 밑으로 뛰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가슴이 쿵쾅쿵쾅 미친 듯 뛰었다.


아이들도 덩달아 뒤따라 뛰었다.

밖에서 지내는 곰순이가 안쓰러워 자주 살피는 아이들

드디어 돌아온 곰순


아니나다를까, 저 멀리 언덕 밑에서 솜털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발걸음도 가벼웁게 통통통통 걸어오고 있는 저 잘생긴 진도개! 한 50센치미터 남은 줄을 대롱대롱 목에 달고 있다.


나를 발견하고는 폴짝폴짝 한달음에 달려오더니 꼬리를 마구 흔들며 좋아 죽겠단다.


“곰순아!!!! 얼마나 걱정했는줄 알아? 이녀석아~~!”


뒤따라 도착한 남편이 차에서 내리고 아이들도 합류해서 눈물과 감격의 이산가족 상봉.


자식 잃어버렸다 찾은 부모의 마음이 이런거겠구나, 실감한 날이었다.  역장담당자에게 전화해서 소식을 알리고, 우리는 바로 다같이 근처 홈센터(일본에서 각종 생활용품을 파는 대형 샵)로 가서 새 목줄을 샀다. 물론 원래 있던 것보다 2배는 두꺼운 것으로.


그 날, 곰순이가 왜 탈출했는지, 도대체 얼마나 멀리까지 갔던건지, 차가 쌩쌩 달리는 길은 과연 몇 번을 건넜을지, 어떤 위험과 모험을 경험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도그런에 온 개들을 보고 흥분하여 탈출하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이왕 자유의 몸이 되자 동네 산책이라도 가야겠다 싶었을지 모른다.  동물 커뮤니케이터 하이디가 알려주지 않는 한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곰순이가 그 멀리까지 갔다가 어디 다치지 않고, 사고도 치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멀리까지 가도 집을 찾아오는 곰순이의 영민함에 감탄한다. (래쉬는 몇만마일, 우리 나라 진도개 백구와 보리는 몇백킬로를 걸어 다시 찾아왔다고 하지 아마)


그 이후로, 우리가족이 어딘가  장기여행을 하는 경우, 개가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면 아무리 근사한 숙소라도 쳐다도 보지 않게 되었다. 두 번 다시 그런 악몽을 경험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리고 곰순이는 애완견이 아니라 우리 가족인 반려견이니까 말이다.  개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숙소라는 것이 죄다 오래되고 낡은 곳들(즉 개가 긁고 부숴도 별로 티도 잘 안 나는) 뿐이지만, 그래도 가족이 모두 함께여서 행복하다!

쿠리야마 체험하우스를 떠나기 전 집 앞에서 가족사진


“너도 여기가 좋지, 곰순아?”


히다카 낡은 체험하우스 등유난로 앞에서 앞발 베고 낮잠 자고 있던 곰순이. 내 말에 힐끔 눈을 뜨더니 이내 귀찮다는 듯 다시 감아버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홋카이도 시골의 겨울 아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