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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하 Aug 09. 2020

영어 포기자가 영어로 취업하기까지 : 연재 예고

영어로 수업하는 학과 입학, 퇴학, 재입학, 졸업에서 취업까지


이십 대 때 영어 때문에 겪은 고생들은 내 인생의 근원적 경험을 형성했고,

이후 내 삶의 경로를 바꿨다.

나는 이십 대 초반에 영포자로 퇴학까지 당했었다. 지금은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로 매일 말하고 쓰고 가끔 전문분야 강연도 해야 하는 곳에서 근무한다. 이번 연재는 한국에서 초중고를 나왔고, 스무 살까지 수능 영어 말고는 공부해 본 적이 없고, 어학연수 한번 못 다녀온, 심지어 취업 전까지 해외여행도 못해본 가 운명의 장난이 아닌 본인의 선택으로 전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학과에 진학해서 겪는 좌충우돌 글로벌 로맨스 코미디물도 아니고, 절실함과 절박함으로 끝끝내 영어를 정복해낸 성공 물도 아니다.


그저 영어를 못해서(그리고 공부를 제대로 안 해서) 퇴학당했다가, 천우신조로 재입학 후 영어 수업에 그럭저럭 적응해서 결국엔 영어로 밥벌이를 하게 되기까지 겪은 실패와 그 실패를 극복한 방법들에 대한 평범한 이야기이다. 내가 겪은 실패담에서는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겠다 ‘ 정도의 교훈을 얻어줬으면 하고, 내가 그 실패를 극복한 방법에 대해서는 '음 저런 방법도 있었군'정도로 참고해 줬으면 다. 산을 오르는 데에는 여러 가지 경로와 방식이 있는 법이고 , 공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 경험이 정답이라는 확신은 없다.


다만, 내 경험이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도, 어학연수를 갈 여유도 없는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학업이든 취업이든 어떤 이유로든 영어 실력이나 점수가 필요한데 원하는 지점에 다다르지 못해 불안하고 위축되어 있는 친구들에게 약간이나마 희망을 줄 수 있길 바란다.




스무 살 때는 I'm sorry만 반복하는 앵무새형 영어 구사자였다. 

전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는 학과에 들어갔는데, 대부분이 외국에서 초중고를 나왔거나 외고나 국제고 등 외국어에 특화된 고교 출신이었다. 나처럼 지방 일반고 출신에 외국 거주 경험도 없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수업 때  교수님이 질문할 때마다 내가 안 걸리기만을 간절히 소망했었고, 어쩌다 지목되면 I'm sorry 만 반복하는 나날이 계속됐다.  동기들이 뒤에서 서로 장난치며 웃는 소리가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았고, 대체 뭐가 미안하냐고 되묻는 교수의 표정은 대체 너처럼 영어를 아예 못하는 학생이 무슨 배짱으로 이 교실에 앉아 있는 거냐고 책망하는 것 같았다. 도저히 일이 년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첫 학기에는 어떻게든 영어를 잘해보려고 했다.

백일 안에 영어회화 고수되기, 한 달 안에 영단어 정복 같은 유혹적이지만 현실성 없는 목표를 쫓으며 이리저리 발버둥 치다 결국은 학업을 포기했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몇 년 후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집에는 휴학했다고 둘러대고 고향에도 내려가지 않고 공사장, 택배, 급식소, 술집 등 갖가지 알바를 전전하며 정신이 좀 돌아오면 조금씩 공부를 하고, 돈이 좀 생기면 술을 마셨다.


학벌사회의 위력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한 번은 급식소에서 일하는데 나보다 늦게 출근해서 일찍 퇴근하는 대졸 영양사의 월급이 내가 받는 월급의 세배에 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문성과 기여도를 고려했을 때 수긍할 수 있는 월급 차이지만 그때는 그게 불공정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고졸이라서 그런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조금씩 적응해 갔다.

기술 하나 배워둔 것 없는 인문계 고졸자도 성실하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분야를 찾기 시작했다. 스무 살 때는 영어를 잘하는 게 목표였는데, 현실을 경험하고 나니 대졸자 신분만을 바라보게 되었다. 대학 졸업장만 있다면 내가 이런 고초를 안 겪을 텐데, 대학 졸업장만 있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대졸자로 기업에 취직도 하고 이런 알바 자리만 전전할 필요도 없을 덴데 라고 수백 수천번의 후회를 반복했지만, 이미 학교에서 재입학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은 뒤였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이십 대 중반의 어느 여름, 대학이미 포기했던 그때 행운이 찾아왔다.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나와 같은 전형으로 입학했던 누군가가 학교를 관둬서 자리가 생겼다면서 희망한다면 다다음달 언제까지 면접을 보러 오라는 이야기였다. 교수 세분과 각자 개별 면접을 보고 세분 모두 찬성한다면 재입학을 허가해 주겠다고 했다.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다. 전화를 마치고, 근처에 있던 공원 구석에 숨어서 꺼억꺼억 소리를 내며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그렇게 면접을 준비해서 통과하고 학교에 돌아갔다.


일단 공부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부족했다.

수능 공부야 나름 열심히 해서 SKY 상위권 학과에 입학할 점수를 받았었지만, 그건 남들 다 달려가니까 나도 달려갔던 거였다. 알바를 전전하며 몇 년을 보낸 나에게는 너무 먼 과거의 이야기였다. 이제는 나 혼자 달려야 하는데 그래 본 경험도 없고, 옆에서 같이 공부하는 같은 목표를 가진 친구들도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열심히 공부했다가 어느 날은 아예 안 하는 날들 반복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배운 '점진적 과부하'를 공부에 적용하면서 점점 공부 근육을 붙이고, 점차 더 어려운 분야를 더 많이 공부하는 공부습관을 만들기까지 2년은 걸린 것 같다.


이제는 영어 유창하고 세련되게 

구사하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불과 몇 년 만에 이룰 수 없는 허황된 목표라는  이미 뼈저리게 깨달은 후였다. 졸업장을 따기 위해 필요한 것들로만 목표를 세분화해서 발표, 토론, 에세이를 선정하고, 영어토론과 영어발표를 하는 스터디그룹을 일주일에 5개씩 했다. 누가 준비를 못해서 발표를 못하게 되는 날이면 내가 어떻게든 대신 준비해서 발표를 했고, 그렇게 경험치를 쌓아갔다. 에세이는 첨삭을 받아야 하니 따로 수업을 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강의였는데 수업마다 제출하는 에세이를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또 고쳐서 어떻게든 내 수준에서 뽑아낼 수 있는 최고의 글을 써내려고 애썼다.


그렇게 학교 수업에 적응해 갔다.

2년 후쯤에는 전공 분야 영어 발표, 영어 에세이 쓰기, 토론 등을 따라갈 만한 수준이 되었고, 다시 5년 후쯤에는 영미권에서도 먹물 좀 먹었다는 외국인들하고 전공분야 이외의 경제, 역사, 문화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수준이 되었다.


영어로 발표하고 시험 보는 건 되는데, 일상회화는 안 됐다.

영어라는 대상을 수업 이수에 필요한 발표, 토론, 작문능력으로 세분화하고 그 분야도 수업에 필요한 아카데믹한 분야에만 한정된 역량을 집중적으로 투입했다. 단기간에 필요한 것들만 챙겨서 어찌어찌 졸업은 했지만, 우정의 교환이나 사랑의 속삭임 같은  거의 못하는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작은 성공 이후 자기 위치 선정에 다시 한번 실패했다.

역시 검은 머리 짐승은 믿을게 못됐다. 실수는 반복된다. 최초의 목표 달성 후 영어로 수업하는 학과에 끝끝내 적응했다는 작은 성공이 주는 달콤함에 취해 위치 파악에 실패했다. 스스로 이제는 꽤나 영어를 잘한다고 착각했고, 그 결과 당시 새로운 대목표로 잡았던 시험을 3 연속 낙방했다. 그제야 내 영어가 기초가 부실한 대학 수업용 생존 영어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의 위치를 아주 아래로 끌어내렸다. 기초문법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물론, 결국 합격하지 못했다면 이런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을 거다.


나는 온갖 시행착오를 하나하나 빠뜨리지 않고 알뜰살뜰하게 다 겪으며 영어를 공부했지만, 독자 분들은 내가 했던 시행착오를 피해 가길 바란다.

 


다음 편 예고     


대학 신입생, 그 여유롭고 화창한 스무 살 인생의 봄날,

대가를 치를 시간은 그렇게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불현듯 찾아왔다.  

 

있지도 않은 과녁을 겨냥하고 활은 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과녁을 세웠으면 거리를 재야 할 것 아닌가!! 그나저나 이 활, 화살을 쏠 수는 있는 겐가!!

어디를 겨냥하는 겐가!! 정중앙을 노리고 쏴야 그 근처라도 맞출 것 아닌가!!

어디에 한눈을 파는 겐가!! 지나가는 새, 고양이 말고!! 과녁에 집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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