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이 되자마자 자취를 시작했지만 엄마는 나에게 한 번도 반찬같은 것을 만들어준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엄마와 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집 식사는 딱히 밑반찬을 만들어 놓고 끼니마다 꺼내 먹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엄마는 찌개니 찜이니 다양한 요리를 자주 시도하지도 않았다. 감자나 양파만 넣고 소박하게 끓인 된장찌개 혹은 김치찌개 하나, 두개만 놓고 밥을 먹었다. 당시에는 상당히 불만이 컸지만 이제는 충분히 이해한다. 저녁 5시, 퇴근하고 집에 오면 힘이 없어서 두부나 단호박 같은 것으로 저녁을 때우는 나를 보며 그 시절의 엄마가 된장찌개 혹은 김치찌개 하나만 끓인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보통의 직장인들이라면 다 그렇다. 나 하나 먹여 살리기도 힘든 일상이다.
엄마가 요리를 별로 하지 않은 탓에 나는 ‘집밥’에 대한 그리움이 딱히 없다. 어디 유튜브 댓글 같은 데 보면 돌아가신 엄마가 해 준 갈비찜, 더덕구이 같은 게 그립다는 내용이 있던데 나는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다. 한 음식에 꽂히면 기필코 그 음식을 먹어야 하는 나인데, ‘엄마표 집밥’에 대한 결핍은 오늘 날의 내가 감당해야할 수도 있었던 그리움 한 스푼을 덜어 주었다. 모르고 컸으니 엄마가 없은 뒤에도 그 부분에서 만큼은 전혀 그립지 않다. 어떻게 보면 장점이다 생각하고 산다.
스물 세 살, 대학교 4학년때 일이다. 당시에 나는 대학 동기와 위, 아래 한 건물에 살고 있었고, 아랫집에 사는 동기는 한 달에 한 두번씩 꼭 반찬을 보내주시는 엄마가 계셨다. 나는 부모님이 집에서 그렇게 손수 만든 반찬을 포장하고 꽁꽁 싸매서 스티로폼 박스에 담아 택배로 보내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친구네 집 김치는 쉬어도 어찌나 맛있고 고기는 날 것으로 먹어도 어찌나 맛있던지 틈만 나면 그 집에 가서 반찬을 뺏아먹었다.
문득 우리 엄마는 이런 거 안보내주나? 싶어서 엄마에게 나도 반찬을 보내 달라고 말했다. 엄마는 식당에서 대용량으로 사놓고 기본 반찬으로 나갈 것 같은 피클과 깻잎 장아찌를 보내주었다. 둘 다 진공 포장된 비닐에 들어 있었는데, 어찌나 큰지 원룸 냉장고 한 칸이 꽉 찼다. 아니 자취생이 집에서 피클과 깻잎 장아찌를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그걸 두 봉지나 그렇게 큰 용량으로 사준건지 아직도 의문이다. 한 번 뜯으면 냉장고에 냄새도 베고 금방 안먹으면 상할 것 같기도 하고, 또 무엇보다 딱히 맛이 있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 그렇게 몇 달을 새 것 그대로 냉장고 안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계절, 두 계절을 보내고 12월. 종강을 하고 노량진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삿짐을 싸며 냉장고를 비울 때 까지도 피클과 깻잎 장아찌는 새 것 그대로였다. 성에 낀 냉장고에 오래 묵어 뒷부분이 딱딱하게 얼어 있었다. 아까운 마음에 몇 조각이라도 먹을까 싶었지만 이미 한참 지나버린 유통기한에 결국 통째로 버릴 수밖에 없었다. 봉지째로 쓰레기 봉투에 넣었더니 10리터짜리 음식물 쓰레기 봉투가 꽉 차던 순간이 아직 기억 난다. 마음은 조금 복잡했다. ‘그래도 엄마가 사준건데.’ 하는 미안한 마음을 ‘이렇게 많은 걸 혼자 어떻게 다 먹으라고.’ 하는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누르며 쓰레기 봉투를 내다 버렸다.
며칠 전 마트에서 장을 보다 대용량 코너에서 피클 봉지를 마주쳤다. 엄마가 사 준 피클과 깻잎 장아찌를 뜯지도 않고 내다 버렸던 그 날의 내가 떠올랐다. 양념을 해서도 먹고, 일부러 고기를 구워서라도 먹어 볼 걸. 엄마가 돌아가시고 몇 년이 지나 그 때의 그 일이 내 마음에 숙제처럼 남게 되었다. 단 한 조각이라도 먹었다면, 6년 뒤 마트 코너에서 그 생각이 나지 않았을까?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은 마음 속 숙제가 늘어가는 일이다. 다행히도 엄마가 요리를 자주 하지 않았기에 나는 집밥을 그리워 하는 숙제를 덜 수 있었고, 피클과 깻잎 장아찌를 내다 버린 숙제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