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관련된 것이라면 티끌 만 한 흠도 허용되지 않던 때가 있었다. 나에게 존재하는 크고 작은, 수많은 흠집들은 알지도 못한 채 나를 대하는 사람들과 나의 친구들, 내가 좋아하고 또 나를 좋아하는 모든 이성들이 완벽하길 바라온 어린 날들이 있었다. 나는 모순 투성이의 인간이며 때때로 날카로운 가시 옷을 입기도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잘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향하는 나의 이기적인 잣대를 거두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완벽하지 않기에 남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세상 모든 진리가 그렇듯, 머리로 알고 있는 것을 가슴 속에 체화하긴 어려운 법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지난 날의 나를 만나 이리 깨지고 저리 깨지며 상처를 받았을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고슴도치 같던 나와 달리 지나치게 보드라웠던 나의 지나간 가족 그리고 친구들. 몇 년 혹은 십년이 넘게 흘렀음에도 그 날의 기억이 영상으로 찍은 듯 또렷하게 머릿속에 재생되는 밤이 있다. '그 때 그 말을 다른 친구에게 전하지 말 걸, 엄마랑 싸운 그 날 길에서 혼자 택시타고 집에 와버리지 말 걸, 그 친구를 그렇게 자책하지는 말 걸.' 부쩍 속죄의 시간을 자주 가진다. 지난 날의 서툰 나의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나를 만들었고, 또 나였다.
생각보다 일찍, 20대의 말미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2025년 1월에 결혼 예정.) 나도 내가 이때 결혼할 줄 몰랐다. (사실 지금도 완벽하게 실감이 나는 것은 아니다.) 불과 1년, 2년 전만 해도 이 남자와, 이 나이에 결혼할 줄은 전혀 몰랐다. 20대 중반을 거쳐 작년까지도 가끔은 막연하게 궁금했다. 나라는 사람은 언제 결혼을 할까? 어떻게 결혼을 결심하게 될까?
사람마다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 계기는 다르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나의 결혼에 대한 결심은 완벽한 남자를 만났을 때 오는 것이 아니었다. 남의 눈의 티끌을 보기 전에 내 눈의 들보를 알아챌 수 있을 때, 타인의 단점에 너그러울 수 있겠다 싶을 때, 그럴 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결혼할 사람이 단점뿐인 사람인 것 같아 보여 덧붙여보자면, 나는 ‘나’라는 사람의 단점까지 너그럽게 포용하고 사랑할 줄 아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고 사랑의 다음 단계를 배웠다. 질책보다는 인내와 포용으로 상대방을 감싸주고, 그런 모습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그 사람을 보며 이렇게 살면 평생도 살아지겠다 싶었다.
가끔은 고난 투성이인 나의 삶 속에 제 발로 들어온 그 사람이 안쓰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나라는 사람은 분명 매력적이고 대다수의 흥미를 끌어당기는 사람임은 확실하나, 보드랍고 편안한 사람은 아님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셀프로 예술가라 칭하긴 우습지만, (음악을 전공하긴 했으니 예술가 호소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예술가들은 본디 예민하고 날카로운 법이니 말이다. 몰아치는 감정의 파도와 널뛰는 기분, 스스로의 심신을 안정시키느라 하루가 다 가는 나의 일상에 타인이 들어오는 것이 성가시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서 흘러 나오는 안정감과 따뜻함 한 모금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인생은 역시 혼자보단 둘이 낫다고 냅다 외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