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황없는 와중 돌이켜보니 결혼식은 끝나 있었다. 유난 떨지는 않지만 노력한 흔적이 보인 결혼식이었으면 싶었다. 나와 나의 이십 년 지기는 한 줌도 안 되는 적성을 바닥에서부터 끌어올려 축가를 준비했다. 식장 설비의 한계로 무산됐지만, 와이프 몰래 와이프의 절친들과 함께 깜짝 영상도 만들어보려고 했다. 정작 레드카펫 위에 서서부턴 결혼식이 당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감도 안 왔다.
어쨌든 식을 치르고 우리는 곧장 하와이 호놀룰루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 인생 처음 장거리 비행이고, 내 인생 처음의 (하와이긴 하지만) 서구권 여행이었다. 사회학도 시기, 한국의 근대성에 천착했던 나로선 그저 (역시 하와이긴 하지만) 미국에 가게 된다는 사실이 내심 감격스러울 따름이었다.
호놀룰루 공항 도착 한 시간 전, 국내교통면허증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빅아일랜드를 렌터카 없이 여행하겠다고? 미국은 분명 보행자 친화적이기보다는 자동차중심의 교통체계를 가지고 있을 터라 어떻게 해봐도 성립될 것 같지 않았다. 와이프는 벌써부터 걱정근심이 한가득이었지만 사실 나는 대수롭지 않았다. 깡시골인 고흥에서도 대중교통으로 다니는데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여행지 빅아일랜드에서 어려움이 있어봤자 얼마나 되겠냐 싶었던 것이다. 아니, 와이프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내심 여행이 더욱 기대되고 있었다.
근대의 수많은 사상가들, 특히 미국의 이들은 자동차가 제공하는 경험들을 찬양했다. 자동차는 진보의 엔진이었고, 진보의 근간이 된다고 믿었던 자유를 체화하게 해 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대량생산경제의 현현이었으며 비위생적인 전근대 도시를 모던하게 만드는 혁신이었다. 나도 미국에서 느껴보고 싶었던 감각이었다. 하지만 벤야민은 유럽 도시를 걸어 다니면서 진보가 드리우고 있는 음울한 그림자들을 심연처럼 발견했다. 걸어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니 렌터카가 없어진 건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