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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트 Aug 26. 2020

선물처럼 다가온 음악의 순간들 (2)



3. 김진호 - 사람들


2015년, 이 노래는 다소 미스터리하게 내게 찾아왔다. 유럽여행 중 배낭을 도난당하고, 며칠 뒤 그 배낭에 몇 년 치 사진이 담긴 외장하드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꽤나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그 이후 여행 중 어디선가 이 노래를 듣게 되었고, 네이버에 가사를 기억나는 대로 검색해 찾아보니 바로 김진호의 사람들이었다. 도대체 유럽여행 중에 어디서 이 유명하지도 않은 한국 노래를 듣게 되었는지, 왜 많고 많은 노래 중 이 노래였는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한국인이 유독 많았던 인터라켄 숙소 또는 동행했던 사람들과 들었던 노래? 정도로 추측해본다) 하지만 너무 서럽고 억울해 울기도 많이 울었던 내 곁에 있어준 많은 사람들 덕분에 남은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있었기에, 참 깊이 와 닿고 시기적절한 노래이기도 했다.  


타지에서 속상해하는 날 매일 전화로 위로해준 가족들, 날 위해 독일 경찰서에 전화도 해주고 배낭까지 빌려준 스위스 친구 Jackie, 집에 초대해 퐁듀와 감자요리를 대접해준 Swenja, 우연히 겹친 일정으로 피렌체에서 만나 날 많이 웃게 한 은영이, 단지 같은 곳을 여행하는 여행자라는 이유로 함께 식사하고 거리를 걷고 사연을 나누었던 수많은 유럽 동행들까지. 결국엔 '사람들'이 있었기에 안 좋은 기억만 남을 뻔했던 나의 첫 유럽여행을 따뜻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어이없는 도난사건이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는 '사라질 수 있는 것'에 대한 미련을 조금 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 대신 어느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나의 경험, 추억, 배움, 친구들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었으니 장기적으로는 뭐 그리 나쁘기만 한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4. Foo Fighters - The Sky Is A Neighborhood

2017년 여름, 이 시기를 생각하면 그때의 내가 참 안타깝다. 인턴이 끝나고 지금의 회사에 오기 전까지 약 3개월 동안 나는 백수였다. 동탄에서 인턴을 했었는데 인턴 생활이 끝나고도 한동안 동탄 오피스텔에 있었다. 처음에는 느지막이 일어나 씻고, 자소서를 쓰고, 낮잠도 자고, 이따금 서울에 가 친구들도 만나고, 집 앞 공원 산책도 하는 여유를 만끽했다. 하지만 점점 취업에 대한 중압감이 심해지고, 번번이 날 떨어트리는 회사들 때문에 '난 과연 쓰임이 있는 사람일까' 하는 회의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정남향인 오피스텔에 아침 일찍 내리쬐는 햇빛이 너무 싫다고 느껴진 날, 다시 서울 집에 갈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탄 집을 정리하고 새 일기장을 사 와 26살 다운 활기를 되찾았으면 하는 나의 염원을 담아 'Rejuvenate your soul!'이라는 문구를 첫 페이지에 크게 써놓도 했다. 취업 스터디도 열심히 하고 토익 공부도 하고 미루기만 했던 운전면허학원도 등록해 다녔다. 바쁘게 일상을 채웠지만 하늘은 파랗고 잎은 푸른 계절에 나만 어둡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이때 매일같이 들은 노래가 The Sky Is A Neighborhood. 러닝타임 내내 묵직하게 울리는 드럼 사운드는 마치 누군가가 '다 필요 없고 니가 최고야!!!!!!'라고 속이 뻥 뚫리게 소리쳐주는 듯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 그깟 3개월 백수가 무슨 대수인지, 그때의 나는 왜 더 푸르른 여름을 즐기지 못했는지 조금 후회가 된다. 그리고 역사적인 9월 12일, 나는 운전면허에도 한 번에 합격을 하고 만점에 가까운 토익점수를 받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최종 합격 소식을 하루에 모두 들었다! 이날 참 행복했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이번 글을 쓰며 예전의 나와 함께해주었던 노래들을 다시 들어볼 수 있어 참 좋았다. 어떤 노래를 골라야 할지도 혼자 고민이 많았다. 글에 쓰지는 않았지만 한 때 내 밤 산책의 동반자였던 Honne - Warm on a cold night, 내 인생의 고민과 우울과 행복과 목표를 놀랍도록 정확하게 담은 노래 곽진언 - 자랑, 설레는 사랑이 찾아오는 신호였던 FKJ - Ylang Ylang 등 선물처럼 내게 찾아와 준 노래는 너무도 많다. 지금은 하지 않지만 한 때 'Song of the month'라고 해서 이달의 나에게 가장 울림을 준 노래를 써놓기도 했다. 앞으로도 멋진 순간이 내 인생에 수없이 찾아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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