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정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미 끝난 판단이 왜 실행되지 않는지

by 긍정


나는 결정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까웠다.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고,
어느 쪽이 더 합리적 인지도 비교적 빨리 정리하는 편이었다.
문제는 늘 다른 데서 생겼다.
결정을 하고 나면,
이상하게도 그다음이 이어지지 않았다.


강남으로 이사를 가야겠다고 결정했던 적이 있다.
집 문제, 동선, 비용, 앞으로의 일정까지 다 따져봤고
결론도 분명했다.


옮기는 게 맞다.

가고 싶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몇 달이 흘렀다.
집을 보러 가지도 않았고,
부동산에 전화를 하지도 않았다.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스스로를 이렇게 설명했다.
요즘 너무 피곤해서
일단 조금만 더 상황을 보자고
아직 급한 건 아니니까
이 말들은 전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이 설명들로는 한 가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왜 결정은 이미 끝났는데
아무 일도 시작되지 않았는가.
비슷한 장면은 계속 반복됐다.
이미 답을 알고 있는데도
사람들에게 다시 묻는 순간들.
결정을 내려놓고도
확인을 구하는 행동들.
겉으로 보면 신중해 보였지만,
사실은 같은 자리를 맴도는 느낌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결정을 잘 못하나?”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하지만 이상했다.
결정을 못 내리는 사람의 모습과는
어딘가 맞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조금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혹시 문제는 결정의 질이 아니라
결정 이후에 무언가가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닐까.


결정은 끝났는데,
그 결정을 현실로 밀어붙이는 힘이
어느 순간부터 작동하지 않는 상태.
생각해 보면
나는 결정을 바꾸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결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에 가까웠다.


이 글은
결정을 잘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끝난 판단이
왜 실행되지 않는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무엇이 조금씩 개입하고 있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기록이다.
아마 이 글을 읽으면서

나도 비슷한 적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건 성격의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다음 글에서는
결정이 끝났다는 게 정확히 언제인지,
그리고 우리가 그 지점을
얼마나 자주 놓치고 있는지에 대해
조금 더 가까이서 들여다보려 한다.








이 글은 결정을 잘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끝난 판단이 왜 실행되지 않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작가의 이전글빨간 세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