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연습(01.아들, 꾸씨와의 첫만남)
“꾸씨! 엄마 빨리 다녀올게~.”
남편 이 씨에게 강아지 꾸씨를 맡기고 양수역으로 나섰다. 우리는 3년째 양평에서 주말살이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서울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멀리, 오래 가는 것도 아니건만 잠시라도 곁을 비우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를 애절하게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우리 사이가 좋은 건 아니었다.
2014년 2월 1일. 한 살 남짓 보이는 강아지를 대전에서 데리고 왔다. 집에 와서 이동 가방 문을 열었을 때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두리번거렸다. 그 두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낯선 곳에 대한 불안감일까? 이동 가방에서 좀처럼 나오지를 않았다. 그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하얗게 리모델링한 집이 더러워질까 봐 아이의 보금자리를 베란다 한편에 마련했다. 베란다와 거실 사이는 나무 문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쌓일수록 그 문에 발톱 자국이 늘어났다. 거실로 들어오려는 아이와 그것을 막는 나와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두 주가 흘렀다. 봄 햇살이 고개를 들자 베란다 청소를 시작했다. 그때였다. ‘안돼!’라고 외치기도 전에 아이가 거실로 뛰어 들어가 소파에 철퍼덕 엎드렸다. 마치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세상 편한 얼굴이었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2월, 차디찬 베란다에 아이를 내버려 두고, 거실로 들어오지 못하게 울타리를 이중, 삼중 쳤다. 간혹 값비싼 나무 문을 긁어 놓으면 강아지를 키우겠다는 나의 선택을 못내 후회했다. 이제는 그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눈을 뗄래야 뗄 수 없다.
내 마음에 그가 들어 온 것은 친정어머니를 황천길로 보내고 울적한 마음에 강화도 한달살이할 때였다. 그는 혹시나 외떨어진 이곳에 낯선 이라도 찾아들까 걱정하여 밤마다 보초를 섰다. 그때 나는 해넘이 후의 어두운 길도 그가 있어 무섭지 않았다. 그다음 해 가을, 제주의 숲길, 오름길, 해안길, 모래사장길, 올레길 등을 걸으면서 제주의 파란 하늘을 꾸씨와 함께 만끽했다. 그때마다 냄새 맡으려고 코를 킁킁대는 것 말고는 묵묵히 내 곁을 지켰다. 한 번이라도 앞서거나, 뒤서거나 할 법도 한데 나의 발걸음에 맞춰 종종대며 따라왔다. 올해 겨울, 통영 주변 섬의 둘레길을 오르내리면서 힘들다 한마디 없이 가파른 길을 먼저 올라 기다려 주었다. 그는 여행하는 내내 외롭지 않게 길동무가 돼 주었다.
그런 그를 집에 두고 애써 발걸음을 떼어 서울로 향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고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이상했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가슴 한편이 허전했다. 늘 뷰파인더 안에 있던 아이가 없었다. 뒤풀이를 하는 둥 마는 둥, 양평으로 가는 경의중앙선에 몸을 실었다. 양수역에 도착하니, 나의 꾸씨가 해맑게 웃으며 내 품으로 안겼다. 그제야 내 마음은 평온해졌다. 열두 살 꾸씨는 이제 인생의 소중한 길동무가 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