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줄로만 알았지

by 여더리

자살을 위해 줄을 준비했다.

혹시 끊어져 목에 뻘건 상흔을 갖고 다시 줄을 사러 나올 불상사를 막기 위해 여러 줄을 준비했다.

신발끈부터 바지 허리줄까지.

내 손에 들린 형형색 색의 줄을 보고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꽉 쥐어보니 내 팔뚝만큼은 모인 듯하다.

옷을 갈아입는다.

어느새 여름이 됐는지 더운 날씨에 반바지를 찾는다. 분명 당시엔 프리사이즈였던 반바지가 흘러 골반에 자리한다. 이대로 걷다간 팬티 자랑하게 생겼으니, 손에 쥔 줄 중 바지 허리 줄을 찾아 끼워 넣는다. 어디선가 본 방법으로 펜뚜껑에 줄을 연결해 바지 줄을 연결했다. 이것도 20분은 걸린 듯한데, 그냥 줄로만 씨름했으면 지쳐서 못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들고는 생각해둔 야산까지 못간다.

줄을 바리바리 싸들고 산에 들어가는 수척한 여자?누구나 훌쩍 다가와 경찰에게 인도할거다.

쇼핑백을 찾는다.

과연 쇼핑백에도 줄이 없다.

이만큼 내가 준비성이 철저하다.

손에 들린 검정색 쇼핑백 줄을 꺼내 제자리에 끼워 넣는다.

슬리퍼를 신는다.

밖에 나가지를 않아 슬리퍼 끈이 부식됐는지, 발등에 가루만 남기곤 떨어진다. 우습게 헛발질로 넘어져도 무딘 입꼬리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바로 옆 운동화를 신는다. 역시 운동화끈도 없다.

다시 운동화끈을 찾아 끼워넣곤, 출발이다.


몇 달만에 보는 해가 뜨겁다. 바로 내 앞에 서서 어디가느냐 묻는 것 같다. 그 덕에 오랜만에 보는 그림자가 이렇게 짙었는지 쳐다보며 걷는다.

원래 택시를 타려했지만 돈이 없어 걷는다. 다행히 계획한 야산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다.

겨우 네 개 빠진 줄 뭉텅이는, 네 줄의 무게만큼 가벼워졌다. 가끔 부는 입김같은 바람이 나를 스치는데, 피부가 그새 철갑이 되었는지 아무런 느낌이 없다.

걸음은 차지도 지치지도 않다. 가끔 감지 않은 머리 구린내가 바람을 탈 때 뒷사람한테 미안한 정도만을 느끼며 걷는다. 커튼 뒤에서 들리던 차 소리가 바로 귓가에 꽃히니 생경하다. 그것도 잠시뿐, 다시 머릿속은 무언가에 잠식당해 제 기능을 못한다.


곧 나를 죽일 물건이 너무 시답지 않아 조소가 어린다. 손에 들린 구깃한 쇼핑백에 반도 차지 않는 줄 뭉텅이.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도 모를 줄들이 나를 죽인다.

내 기도를 막고도 더 조여 결국 숨통을 끊어버리겠지.

부러 얇은 줄을 모았다.

감히 손가락으로 틈을 비집지 못 하게.

괴로워 몸부림칠수록 더 깊이 파고들겠지. 끊어질 걱정은 하지 않는다.

이 날을 위해 손톱도 짧게 깎아 왔다


야산에 도착했다.

목걸이는 빼지 않았다. 생일선물로 받은 목걸이.

지금와서 하나 바라는 점 이 있다면, 괴로움에 줄을 뜯으려 할 때, 목걸이만은 건드리지 않길.

쇼핑백에서 줄을 꺼내 엮는다. 한 줄로는 끊어질 위험이 있으니 두 줄씩 엮어 길게 늘인다.

마무리는 어디선가 배운 매듭짓기.

이제 이 구멍에 머리를 넣고 발을 떼면 저절로 죽게 된다.


이제 연결할 줄을 묶을 적당한 나뭇가지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내 무게를 견딜 수 있을 가지를 찾아야 하며, 높이가 적당해서 발이 당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여기에 있다.

하늘도 돕나 싶다. 더구나 큰 뿌리가 땅 위로 불룩 솟아있어 발판 대용으로 적합하다.


이제 줄을 묶어 죽기만 하면 된다.

뿌리에 까치발을 딛고, 뿌리와 최대한 멀리에 줄을 매단다. 이러면 혹시나 발이 닿아 목숨을 부지하는 일은 없겠지.

나무 몸통에 왼손을 감고 오른손으로 줄을 잡아 획 돌린다. 나뭇가지에 무사히 안착한 줄을 이제 묶어야 한다. 반대쪽으로 내려온 저 끝을 다시 잡아 내가 잡은 줄과 엮어야 한다.

뿌리에서 몇 번을 미끄러져가며 간신히 줄을 잡았다. 엮기는 쉬웠다. 땀이 많이 나서 여러번 놓치긴했지만.


이제 목을 매달을 차례다.

잠시 휴식이라도 취할겸 뿌리에서 내려와 줄을 바라봤다.

아뿔싸, 나뭇가지 두께를 예상하지 못했다.

단단히 조이고 내려오니 내 이마 앞에서 달랑이는 줄.


아무리 기를 써봐도 이마 밑으로 내려올 생각을 않는다.

내 무게를 너무 잘 지탱해서 절대 꺾이지 않는 나뭇가지와 애석하게도 살고자하는 발버둥을 막기위해 애써 멀리 달아버린 줄까지.

멍청한 나까지 삼박자가 어우러져 거인을 위한 교수대를 만들었다. 몸은 짠 땀내 범벅에 온 팔뚝이 흙 투성이인데, 마음이 너무 허무해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계속 여기 서있을 수는 없다.

다시 집에 돌아가야 한다.


빈 쇼핑백만 들고 집에 돌아간다.

퇴근시간인지, 사람들 시선이 내 몸 여러군데에 박힌다. 점점 총기가 돌아오는 듯하다. 흐려져있던 눈동자에 수치심이 들고, 더러운 차림새에 땀내까지 맡아진다.


집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 모르게 도착했다. 거의 뛰어 들어왔지 싶다. 근 1년 사이에 이렇게 땀을 흘린 기억이 없다. 모래와 땀이 굳은 소금 알갱이가 온 몸에서 구른다. 샤워를 해야겠다.


샤워 후 습관처럼 로션을 펴바르다 에코백이 눈에 들어온다. 비어있던 머릿속에 공명이 울리는듯하다.

혹시나 신발장으로 가봤다.

역시 흙투성이 운동화 옆에 핑크색 슬리퍼가 있다.

줄곧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무언가는 살고싶다는 열망이었다.


사실 운동화나 쇼핑백에 줄을 낭비하지 않았다면, 지금 그 나무에 매달려있겠지.

벗어놓은 운동화와 바지가 눈에 들어온다.

덕분에 나는 자살하러 갔다가 운동이나 하고왔다. 오랜만에 샤워까지 한 지금 상태는 어이없게도 '매우 좋음'이다.

목을 매달려고 모아둔 줄로 결국 운동이나 하고 온 사실이 웃기다. 굳은줄 알았던 입꼬리가 올라간다. 어이가 없으니 웃음이 난다. 소리내어 웃기 시작한다.

나는 그런 줄로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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