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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쨌거나 글쓴이 Feb 11. 2016

다시 너에게로, <캐롤>

다량의 스포 포함 (거의 전부가 스포)

 싸웠다. 미쳤다고, 남자친구는 화를 내며 나갔다. 맘이 복잡하다. 길을 나서니 주변이 시끄럽다.


 차 안에 오르자 이내 기억은 잊혀진다. 사라진다. 그곳엔 네가 있으므로. 함께 하는 동안 손, 눈빛, 그 하나 하나에, 나는 그 사람에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어떻게 시간이 흘러가는지 알 수 없다. 신경쓸 여력이 없다.



 "집에 놀러 올래요?" 백화점 직원에게 부유층  마나님이 호의를 베풀 이유는 없다. 장갑을 돌려준 데 대한 감사 표시는 한번이면 족하다. 그 반복되는 호의의 뜻을,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거절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의 앞에 카운터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있다가 양 옆으로, 독립된 각자의 공간에서 같은 방으로 간다. 같은 침대로 간다. 그어져 있다고들 하는 개인의 선을 넘는다. 뚜렷한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긴장하다가 서로를 확인하듯 조심스럽게 몇번 웃고 나자,  들뜨는 그 마음을,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그랬다.


사랑에 취해 들뜬 이 상황은 내가 잠시 현실에 발붙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돌아가야 할 시간은 온다. 더더군다나 놓고 온 것이 많은 여행에, 너는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갔다. 네가 갔으니 나도 돌아가야 해서, 돌아갔다. 하지만 원래의 자리로는 돌아가지 않았다. 스쳐간 시간은 흔적을 남겼다. 네가 없는 것은 이전과 다를 바 없지만 나는 달라졌다. 그 찰나동안 너에게서 배운 사진에게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네가 다시 왔다. 홀로 고독한 싸움의 시간을 보내고. 기존의 생활을 접기까지 너는 매일 밤 고민하고 울었을 것이다. 그래서 네가 돌아오길 꼭 바라진 않았다.

헤어짐에 그나마 장점이 있다면, 멀어진 시간과 그 거리만큼 관계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차분해진 말투와 눈빛은, 한번도 거절하지 못했던 네 제안에 단번에 고개를 저을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다. 같이 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9시까지 그곳에 가지도 않을 것이고.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어쩌면 그 편이 낫다.

 

 그럼에도 그었던 선을 다시 넘는다. 뚜렷한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네가 와서. 너에게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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