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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쨌거나 글쓴이 Jun 16. 2016

스스로의 빛을 찾아서, <반짝 반짝 빛나는>

 

   보는 일은 참 힘들다. 한 자리에서 가만히 앉아, 보는 것을 ‘당해야’하는 건 썩 내키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어두운 새벽, 영화관에서 영화 ‘만추’를 봤던 기억은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기억 중 하나니까. 다만 남과의 약속으로 어찌저찌 구색 맞추어 보는 것이 아닌, 홀로 이것저것 뜯어도 보고 잠시 잊고도 있다가 아무래도 그 영화를 봐야만 하겠어서 보는 게 좋다. 그리고 이런 배배꼬인 방식을 가진 편협한 사람조차 결국은 예상한 감정 이상의 것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를 볼 때만 그런게 아니라 드라마도, 그리고 책도 그렇다. 책을 아무 쪽이나 펼쳐서 스르륵 읽어 내려가다, 문체나 특정 부분이 맘에 들면 앞부터 다시 제대로 읽는다. 이야기를 바로 펼치기 무서워, 한번 맛보고 시작하겠다는 얄팍하고 겁 많은 수작일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책을 이렇게 읽는다. 미리 한번 발을 담갔다 빼고 나서야, 물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 그렇게 간택된(?) 책들은 내가 원할 때 읽기 위해 소파 옆, 화장실 문 앞 등으로 항상 자리를 옮겨야 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반짝반짝 빛나는’은 그런 의미에서  특히 고생한 책이다.  아무렇게나 읽은 탓에 책장 몇몇이 물에 젖어 우글우글해지기까지 했지만 이 책은 한창시절 내 머리맡을 도맡곤 했다. 특별히 일본 소설에 대해 잘 알거나 에쿠니 가오리의 팬인 것이 아님에도 이 책을 꼭 곁에 두었던 건, 겁 많은 나조차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어느 장을 펼쳐도 잔잔한 책이었다. 다음은 그 잔잔한 책의 줄거리다.



무츠키와 쇼코가 결혼했다. 무츠키는 게이고, 쇼코는 신경 불안에 알코올중독자다.  그리고 곤이 있다. 곤은 무츠키의 애인이다.



"아버지, 은사자라고 아세요? 색소가 희미한 사잔데 은색이랍니다. 다른 사자들과 달라 따돌림을 당한대요. 그래서 멀리서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한다는군요. 쇼코가 가르쳐 주었어요. 쇼코는 말이죠, 저나 곤을, 그 은사자 같다고 해요. 그 사자들은 초식성에, 몸이 약해서 빨리 죽는다는군요. 단명한 사자라니, 정말 유니크하죠, 쇼코의 발상은."


(…) "너희들 일은 잘 모르겠다만."
(…) "하지만 나한테는 며늘아기도 은사자처럼 보이는구나."라고 말하고, 또 조용히 웃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p.131-

 

 룸메이트나 다름없는 게이 남편, 무츠키를 두고 쇼코의 시아버지는  묻는다. ‘물을 안는 느낌’이 아니냐고. 하지만 그가 물이라면 욕조를 가득 채운 따뜻한 물일 거다. 친절한 사람. 신경 불안과 알코올 중독을 모자란 점으로 보지 않는 사람. 발작 같은 울음을 참 쉽게 잠재우는 사람. 서로를 갈구하는 열망과 육체적 사랑 없이 부부가 되었지만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균형을 만들어간다. 쇼코의 금붕어 경주얘기를 듣는 것도, 곤과 무츠키, 쇼코, 이 세 사람을 위한 1주년 파티를 하는 것도 그들의 애정과 연대에서 비롯된다. 무츠키가 물이라면, 굳이 억지로 형체를 안아들지 않아도 괜찮다. 나 또한 그 안에 담겨만 있어도 좋다.


  나중에 이들의 상태를 알게 된 부모들은 분노하고, 오로지 서로를 비난하기 위해 모이는 수고를 감수한다. ‘어떻게 호모를 결혼시킬 수 있느냐.’, 혹은 ‘어떻게 정신병이 있는 것을 숨길 수 있느냐.’고, 쇼코와 무츠키의 부모는 무사히 결혼시켰다고 안심하던 얼굴을 벗어던지고 서로를, 그리고 부부를 맹렬히 비난한다. 사회의 범주에서 볼 때 정상적이지 않은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생활은 주변 사람들에게 탐탁지 않은 걸 넘어 질타하고 회개시킬 대상이다. ‘그래도 우린 잘 지내는 걸요.’ 말이 먹히지 않으니 무츠키와 쇼코는 멀뚱히 있는 수밖엔 없다. 그럼에도 정말 잘 지내고 있는 걸, 어쩌겠나.



반짝반짝 빛나는 지갑을 꺼내서 반/
짝반짝 빛나는 물고기를 샀다 반짝/
반짝 빛나는 여자도 샀다 반짝반/
짝 빛나는 물고기를 사서 반짝반짝/
빛나는 냄비에 넣었다 반짝반짝 빛/
나는 여자가 손에 든 반짝반짝 빛나/
는 냄비 속의 물고기 반짝반짝 빛나는/
거스름 동전 반짝반짝 빛나는 여/
자와 둘이서 반짝반짝 빛나는 물고/
기를 가지고 반짝반짝 빛나는 동전/
을 가지고 반짝반짝 빛나는 밤길을/
돌아간다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밤하늘/
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물을 흘리/
며 반짝반짝 빛나는 여자는 울었다

- 이리사와 야스오, '반짝반짝 빛나는'



 애인과 결혼할 수 없다는 한계에 대한 자조부터 아내 쇼코를 ‘사랑’하는 마음, 곤과 무츠키 둘의 아이를 갖겠다는 쇼코의 기묘하고 엉뚱한 생각과 그 안에 담겼을 부담감까지, 이들 사이에는 분명 많은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이상한 이들일까.  비정상적이고 어딘가 불안한 것은 게이인 남자에게만, 그리고 신경 불안과 알코올 중독을 가진 여자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터다. 모두 멀쩡하게 정상성을 유지하며 사는 거라고 한다면, 벌써 나부터 여러모로 예외다. 단단하게만 보였던 세계는 의외로 엉망진창으로 말랑한 것들 투성이고, 객관성은 의외로 쉽게 무너진다.


 쇼코가 술에 취해 하는 주정에도, 무츠키가 아버지 앞에서 멋쩍게 웃는 동안에도 빛이 어려 있다. 물론 인물들에 대한 에쿠니 가오리의 작가로서의 애정과 담담한 문체는 인물들을 더욱 반짝이게 한다.  하지만 빛의 근원은 그들만의 기준과 균형을 찾아냈다는 데 있다. 빛은 밖에서부터 오지 않고 안에서 비롯된다. 이 또한 소설 속 게이와 알코올중독자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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