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가 최근 넷플릭스에 추가되었다.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영화/책인데 한국에서는 주목을 못 받고 잘못된 의미로 해석되고 있는 것 같아서 참고하고 보면 좋을 10가지 관점 정리해 보았다.
영화의 대략적 줄거리는 싱가포르-영국 출신 뉴욕대 교수 Nick Young이 동료 교수이면서 여자친구인 중국계 미국인인 Rachel에게 방학에 친구 결혼식 참석 겸 부모님 소개 겸 싱가포르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면서 생기는 일들을 다룬다.
“우리는 같은 동양인이니까 아무 문제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Rachel의 예상과 달리 문화도 사람들도 너무나 다른 미지의 영역에 혼자 들어간 그녀가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본인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면서 동시에 사랑도 지키려는 여정이 주 내용이다.
할리우드에서 2번째로 유일하게 전체 동양인 캐스트인 영화로 현재 시점에서 Asian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ex. Tough love, generational trauma, diversity of asian culture)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1.Rachel의 직업은 왜 교수일까.
Rachel의 직업을 뉴욕대 경제학 교수로 설정한 것은 정말 똑똑한 선택이었다. 미국에서 지적 능력+명예+부유 이 세 가지를 다 가진 직업을 가진 Rachel조차도 세상에서 보통 잘 안 알려진 지역, 완벽히 새로운 지역인 동남아시아에 가면 얼마나 무지해지고 lost 해지는지 보여주기에 완벽한 설정이었다. 실제로 싱가포르-미국인인 작가 Kevin Kwan이 이 책을 써야겠다 결심하게 된 계기가 본인의 미국인 친구들이 얼마나 동남아시아에 대해서 무지한지를 깨달은 순간에서 비롯되었다.
+Rachel을 연기하는 배우 Constance Wu는 실제로 이 영화를 촬영하기 전까지 아시아를 방문한 적이 없다. 그래서 영화에서 보여주는 리액션들이 다 genuine reaction 들이다.
2.Henry Golding은 남자 주인공으로 적합했는가.
한동안 Henry Golding이 남자 주인공 역을 맡는 것이 맞는 선택이었는지에 대해서 Twitter War가 있었다. Henry Golding은 말레이시아, 영국 혼혈로 원래 직업이 배우가 아니었다. 원래는 BBC 같은 곳에서 TV host, narrator 일을 하던 방송인이었고 오디션도 지원하지 않았는데 캐스팅 팀이 같이 일하자고 먼저 제안한 케이스이다. 그래서 이렇게 짧은 커리어를 가졌음에도 바로 주연 역할로 성공을 거둔 것에 대해서 화가 난 사람들의 의견은 Henry Golding이 백인 버프를 받았다, “고작 50% 동양인”인 사람이 동양 문화를 제대로 알고나 있겠느냐라고 주장했고 다른 대안으로 배우로서의 입지가 더 탄탄한 100% 동양인인 Sim Liu(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남자 주연 배우)가 남주를 맡아야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건 정말 South Asia와 East Asian culture가 달라도 얼마나 다른지 아무것도 몰라서 할 수 있는 말이다. Sim Liu는 중국인 캐나다인으로 동남아시아 문화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배우이다. 반면 Henry Golding은 말레이시아+영국 혼혈로 두 나라에서 자랐고 영화 캐릭터처럼 동남아시아와 영국 문화를 뼛속까지 아는 배우이다. 잘생겨서, white privilege 때문에 캐스팅되는 것이 아니라 캐스팅 팀이 제발 같이 일하자고 말하고 계속 설득할 만한 영화 성공을 위한 조건과 딱 부합된 사람인 것이다.
Kevin Kwan 작가 또한 Henry Golding의 캐스팅이 논란이 되었을 때 이 캐스팅은 틀리지 않았다고 지지를 보여왔는데 그 이유가 Crazy Rich Asian trilogy에서 계속 전달하는 메시지 중 하나가 “동양인 혼혈들을 50% 동양인이라고 해서, 20% 동양인이라고 해서 동양 사회에서 계속 배제하는 것은 인종차별주의적”이다. 작가 본인이 이런 혼혈인 사촌들이 있고 그들이 동양 사회, 심지어 가족 모임에서도 계속 ‘가짜 동양인’ 취급받으며 배척되는 것을 어릴 때부터 자라면서 봐왔기 때문에 계속 목소리를 내는 문제이다.
영화 개봉 당시 유튜브에 Crazy Rich Asians - Do You Speak Singlish?이라는 비디오가 올라왔는데 각 배우들이 싱글리시(Singapore+English) 단어를 받고 무슨 뜻인지 알아맞히는 게임이었다. 그리고 비디오에서는 Michelle Yeoh, Henry Golding과 같은 동남아 출신 캐스트들은 다 대답을 하지만 아시안계 미국인인 Ken Jeong, Constance Wu는 하나도 대답을 못한다. 댓글들을 보면 이 게임은 동양인이면 다 같은 동양인이라고 생각해서 나온 실수라고 지적하는데 굉장히 동의하는 부분. 이런 면에서 Henry Golding 본인 또한 자신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에 Michelle Yeoh와 같이 실제 문화를 아는 배우들이 같이 출연해서 뜻깊다고 말한 바가 있다. Singlish도 모르는 사람이 Singapore 재벌 역할을 맡는 것도 웃기지 않는가.(한국 드라마로 치면 갑자기 일본인 배우가 어차피 같은 동양인이니까~하면서 한국어를 못하는데 연기 경력이 많다고 남주를 맡는 느낌)
3.“You will never be enough”(너는 절대로 충분할 수 없을 거야)
Rachel이 예비 시어머니 Nick의 엄마(Michelle Yeoh)에게 왜 그들의 결혼을 허락할 수 없는지 묻자 딱 이 한 마디를 한다.
한국계-미국인 배우 Ken Jung은 “이 대사는 동양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한 줄인 것 같다”라고 인터뷰에서 말한 바가 있다. 이 영화를 딱 한 줄로 요약하라고 하면 이것이 될 것 같다. 결국 이 책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의 발단을 캐고 캐다 보면 이 한 줄에서 시작된다.
한국에서는 엄친딸, 엄친아라는 말이 생겨난 배경과 비슷한다. 지속적인 비교는 내가 무엇을 해도 충분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불행은 이런 불완전함에서 시작된다. 나도 학교에서 98점을 받으면 “We’re proud of you”라는 말보다도 “100점 있었어?”라는 말이 더 익숙한 환경에서 자라서 공감이 되었던 부분. 작가 Kevin Kwan 또한 이 부분에 대해서 자신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지만 아직도 가족들과 친척들에게는 “어디 구석에서 글 좀 쓰고 최근에는 영화 만들어져서 좀 유명해졌다는, 별난 길을 택한 아이” 정도로 기억되고 있다고 인터뷰에서 말을 한 바가 있다. Tough love.
4.“우선 대학 가고 나서 너 하고 싶은 거 해”
이 영화에서 가장 웃긴 팩트는 배우들이 다 대학교를 졸업했다는 부분이다. 심지어 의대(Ken Jeong), 로스쿨(Gemma Chan)을 졸업한 사람들이 결국에 지금은 다시 돌고 돌아서 배우를 하고 있다는 점이 얼마나 동양 사회가 교육, 직업 안정성을 중요시 여기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인생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
5.Perfect English에 숨겨진 세대 차이
영화에 Nick과 가족들이 Rachel과 함께 만두를 같이 만드는 씬이 있다.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책에서는 이때 Nick의 할머니가 손자에게 완벽한 영국 영어로 “빨리 교수 일을 접고 다시 여기로 돌아와라. 너무 고향에서 멀리 오래 살다 보면 너의 뿌리를 까먹게 돼. 너를 봐, 벌써 외국인처럼 행동하잖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Rachel은 1) 어떻게 저렇게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가 완벽한 posh 영국 악센트를 구사하지? 2) 어떻게 저렇게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할머니가 저렇게 전통적인 말을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하며 혼란스러워한다. 나도 이것과 딱 비슷한 경험이 있다. 케임브리지 유니언에 “This House Believes China is the New Imperial Power in Hong Kong”이라는 토론이 있었을 때 기자 자격으로 중국 측 대표를 인터뷰하면서 “어떻게 저렇게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데 하는 말들은 다 전통적인 말들이지?”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같은 언어를 구사하면 우리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언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대가 너무 다르면 가끔은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예시.
6.Mahjong.(마작) 이미 일어나는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어떤 길을 갈지 선택할 수 있는 파워는 우리에게 있다.
영화 뒷부분에서 결국 Rachel은 가족을 떠나고 자신과 함께 살고 싶다는 Nick의 프러포즈를 받지만 거절한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Nick의 엄마 Eleanor와 Mahjong을 하는 씬이 있는데 여기서 Rachel은 Eleanor를 이길 수 있었지만 결국에는 져줌으로써 Rachel을 단순히 아들과 예비 시어머니와의 기싸움에 져서 미국으로 떠나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선택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점을 영화는 강조한다.
7. “If we’re going to be called yellow, we’re going to make it beautiful.” “우리가 옐로우라고 불릴 거면 우리는 그것을 아름답게 만들 것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콜드플레이의 노래 “Yellow” 또한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콜드플레이는 사실 이전에 Princess of China, Hymn for the Weekend 등의 뮤직비디오에서 동양 문화를 그냥 마구잡이로 다 섞어 넣어버린 탓에 동양 문화를 모욕했다는 누명을 가지고 있는 상태여서 처음에 영화감독이 Yellow를 영화에 넣고 싶다고 부탁했을 때 강력하게 거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감독은 콜드플레이 측한테 평생 동양인을 일컫는 Yellow라는 말이 나쁜 뜻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대학생 때 처음으로 Yellow라는 노래를 듣고 내 피부색이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제는 다른 사람들도 이 노래를 통해 꼭 그 메시지를 전달받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결국 콜드플레이가 승낙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We’re going to own that term,” “If we’re going to be called yellow, we’re going to make it beautiful.”
혐오를 멈추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계속 그렇게 부를 거면 차라리 그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어버리겠다는 자세가 굉장히 아티스트적이고 주체적이어서 멋지다고 생각했다.
8.John M.Chu
이 영화의 감독 John M.Chu는 사실 책에 나오는 영화감독 캐릭터의 영감을 준 인물이다. 책에서 Nick에게는 영화감독인 사촌이 있는데 이것은 작가가 John M.Chu을 생각하면서 쓴 캐릭터라고 밝혔다. 나중에 John M.Chu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트루먼 쇼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9. Why representation matters.
이 영화 Preimiere에서 배우들이 다 같이 울었다. 처음에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가 영화관에서 친구들이랑 이 영화를 같이 보다가 갑자기 단체로 눈물이 나왔다.
나는 내 이야기가 세상과 공유될 날이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단정 짓고 살았다. Majority white인 학교에 다니고 스크린에서도 대부분이 백인인 배우들을 보고 자라다 보니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의 영화가 빅스크린에 나올 날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누구든지 기억되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그것을 상상할 자격조차 박탈되었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온 눈물이었다.
원래 이 영화는 Netflix에서 거액의 투자금을 제시하고 이걸 그냥 시즌제로 만들자는 제의가 들어왔는데 감독이 동양인 아이들에게 큰 영화에서도 자신과 같이 생긴 사람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는 신념을 지키고 싶어서 거절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는데 스크린을 통해서만 오는 “너라는 사람은 존재하고 세상은 너 같은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는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원래 처음이 제일 힘들고 그 이후부터는 쉬운 것이 맞다. 이 영화가 나오고 점점 동양인을 주제로 한 시리즈들이 여러 방송사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내가 중, 고등학생 때 저런 시리즈들이 이미 존재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10. 영화가 간과한 부분.
사실 Kevin Kwan이 이 책을 통해 가장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은 Asians in western settings, 즉 본인 인생 이야기이다. 그래서 책에서 Rachel은 자신의 세상을 탐험하는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진 소설의 매개체일 뿐 그렇게 어마 무시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는 모든 것을 미국 중심으로 말해야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결국 영화는 Rachel과 Nick의 러브 스토리를 중심으로 asian-american woman이 스스로를 찾아가는 여정, 재벌 남자와 신데렐라식 스토리로 편집된 것이 많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