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노랑
Hello,yellow
나랑노랑
언어는 번역을 함으로써 본래 의미를 조금씩 잃어간다. 언어는 단순히 소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문화권이 지나온 모든 역사와 사건사고들까지 담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변하고 살아있는, 미래에는 죽을 수도 있는 코드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를 볼 때도(이날은 미션임파서블을 봤다) 한국어 자막을 보며 잃어지는 의미들을 보며 안타까워하느라 정작 영화에는 집중하면서 못 볼 때가 많다. 그러면서 문득 나는 내 인생을 잘 번역하며 살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을 하게 되었다.
기생충 봉준호 감동의 통역사로 유명해진 샤론 최(Sharon Choi)가 본인의 회고록에서 ”통역은 사실 내 직업이 아니다. 나는 평생 나 자신의 통역사였다 “라는 글을 남긴 적이 있다. 그 몇 마디가 크게 와닿았다.
많은 TCK(제 3문화권의 아이들)이 공감할 에피소드가 유아기 시절 갑자기 부모님이 영어로 된 서류를 가져와서 이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는 경험일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 부모님이 어느 날 나한테 영어로 된 서류를 가져와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 당시만 해도(and i feel so old for saying this) 파파고나 구글 번역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듯 유아기부터 시작해 평생 통역을 하며 살아야 하는 삶. 그래서 모든 인사마다, 모든 저녁식사마다, 모든 대화마다 조금씩 본래의 의미를 잃어가야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너의 숙명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이폰 14 광고에 뜬 “나랑노랑” 번역을 보게 되었다. “Hello, yellow”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인데 광고판을 본 순간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오는, 그런 번역이었다. 본래 영어로 쓴 광고 문구보다도 더 재치 있고 더 귀여운 ‘초월 번역’이었다.
일상에서 의미를 과자 부스러기 잃어버리듯 잃어버리는 것이 어쩔 수 없다면 나도 가끔은 인생을 저렇게 초월번역 하게 되는 순간이 오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