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bu에서 든 생각들
바다에 들어가면 우리 몸은 흡사 신생아가 엄마에게 안길 때와 비슷한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바다는 내 한을 녹인다. 바다에 들어가면 이 세상 살며 생긴 서러움을 다 이해한다며 안겨주는 부모를 다시 만난 기분이다. 그 어떠한 위로로도, 그 어떤 언어로도 녹아내리지 않던 지상에서 쌓인 흉터들이 바다 밑에서만큼은 설탕마냥 우수수 녹아내려져 갔다. 지상의 악몽은 바다 밑까지 나를 쫓아올 수 없었다.
바다처럼 광활한 곳에 있다 보면 문득 서울의 내 원룸이 얼마나 작은지 떠올리게 된다. 바다 안에 들어가 있는 내 작은 방을 상상해 보았다. 핀을 신고 한 번의 발차기로 이미 내 아담한 원룸의 시작과 끝을 오갔을 것이었다. 바다는 이렇게 큰데, 세상은 이렇게나 넓은데 내 집은 정말 작아도 너무 작다는 생각을 했다.
한 여성에게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여진 족쇄는 모든 여성에게 차여진 족쇄라고 하였던가. 대학교 2학년일 때 매일 최소 100명의 여성들이 가정폭력으로 사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나는 매일 슬픈 사람이 되었다. 이런 세상에서 이런 약한 몸으로 태어난 게 싫었고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거의 매일 생각했다. 나는 쉽게 잊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슬퍼하지 말고 네 인생을 살라는 말을 들어도 그럴 방법을 몰랐다.
하지만 작은 생선들이 모이고 모여 생긴 거대한 정어리 떼가 주는 위압감을 느끼면서, 거북이 위에 붙어 다니며 살아가는 빨판상어를 보면서 약하고 작게 태어나도 각자 이 세상에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생명체는 존재하는 것으로 만으로도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냥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저항하는 것이었다. To exist is to resist. 비주류라는 비주류는 다 섞인 내가 행복하게 사는 매일이 저항이었다.
이렇게 현실에서 머리가 복잡해질 때마다 들어가는 바다는 그 어떤 치료제보다도 내 마음을 빠르게 치유해 줬다. 물속에 오래 있다가 이렇게 갑자기 드는 생각들은 바다가 나에게 말을 건네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는 몇 년을 생각해도 나오지 않던 해답들을 바다에서는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에 어느 정도 있다 보면 나는 원래 여기 사람이 아니고 언젠가는 지상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갑자기 와닿는 순간이 온다.
'아, 나는 여기를 잠시 방문하고 떠날 사람이지, 여기는 내가 원래 있을 곳이 아니지'
뭐가 더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바다 저 밑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고 나는 절대 이 세상을 전부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받아들인다.
여행 마지막 날 즈음에는 그냥 아무 일이 없어도 웃음이 나왔다. 이곳이 일상인 사람들의 웃음을 계속 보다 보니 웃음이 전염된 것 같았다. 티끌 하나 없이 활짝 웃기. 성인이 되고 나서는 왜 이런 웃음이 어려워졌을까. 그것은 이유 없는 웃음을 이유 없는 웃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에서 너무 오래 있었기 때문이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언젠가는 다 망각하게 되겠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이 웃음이 조금 남아있기를 간절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