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즐긴 것들
그 악명(?) 높은 롤리타를 이제야 읽어봤다. 예전엔 단순히 페도필리아-로리콘 중년 아재가 12세 소녀에게 욕망을 느낀다는 줄거리가 나처럼 보수적인 사람에겐 다이렉트로 거르기 좋았기 때문이었는데 <소돔의 120일>을 읽고 나니 이제 금기에 대한 문학도 더 나이 먹기 전엔 두루두루 읽어보고 싶었다. 스탠리 큐브릭의 62년작이나 에이드리언 라인의 97년작의 영화들은 예전에 다 봤지만 큰 감흥이 없었다. 솔직히 이 영화들보다 아재와 소녀의 감정을 다룬 <레옹>이 더 인상적이었는데 원작 소설은 파격적인 소재와 서사를 더욱 아득히 능가하는 나보코프의 시대를 앞서간 유머와 앞 뒤 안 가리는 무지막지한 문장력 때문에 정신을 못 차렸다. 이런 촌철살인적인 글빨에서 오는 작품 자체의 몰입력은 영화들이 담아내진 못 했는데 그래도 원작을 읽어본 뒤 영화를 보면 훨씬 괜찮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나저나 늦게 배운 도둑질 무섭다고 나보코프 단편집을 장바구니에 넣어버렸는데 읽을 게 너무 산더미다.
예술은 인간의 비참함을 미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비참함 속에 깃든 숭고한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한다.
현실에서의 추함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지만, 예술적으로 완벽하게 재현된 추함은 우리에게 인식의 즐거움을 준다.
(움베르트 에코 / 추의 역사)
뭐 일개 미천한 소시민인 내가 철학자가 저렇다는데 딱히 따지고 싶진 않지만 가끔 이 작품은 절대 쓰레기가 아닌데 (심지어 작품성이 있는데) 누군가에게 좋은 작품이라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모든 예술은 선만을 표현하지 않는다."라는 말에는 물론 동의한다. 조르주 바타유의 저서 <에로티즘>에서 설명하는 금기와 위반은 불편한 본능이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며 테오도르의 "아우슈비츠에서 시를 쓰는 건 야만적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굳이 이런 걸 언급하는 이유는 예술 작품에서 최소한의 선善을 떠나 선 Line을 암묵적으로 넘지 않는 건 꽤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20년 만에 본 가스파 노에의 <돌이킬 수 없는>은 다시 봐도 작품이 과하다고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역시 그 시절 이후 본 영화가 너무 많아서인지 왜 이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는지도 이해가 된다. 다만 영화 극초입부와 엔딩에 나오는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라는 말은 이 영화를 딱히 관통하지도 않을뿐더러 너무 거창하다 느껴진다. 시간이 파괴한 게 아니라 시간은 배신한다에 가깝겠지. 파괴는 몇 명의 똘추들이 똘추짓한 거뿐이었다. 이처럼 잘 만들었는데 과해서 영 이상한 영화는 <위플래쉬>가 있다. 이 영화에 대한 조금 웃긴 썰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최대한 길게 적고 싶지만 좋아하는 거 적기에도 인생은 짧다.
무슨 영화 제목을 이따위로 옮겨놨어라고 생각했다가 감독이 샘 레이미라길래 영화를 보기도 전에 아 뭐 괜찮네 싶었다. 세상엔 다양한 유형의 천재가 있는데 샘 레이미도 그중 하나다. 이 사람은 관객의 머리 위에서 놀 줄을 아는 연출가다. 이 영화를 보고 새삼 궁금한 건 그의 장편 데뷔작이자 최고 명작 <이블 데드>는 그가 꿈꾸던 진정한 영화의 궁극점으로 만든 건지, 그냥 얻어걸린 건데 저렇게 만들다 보니 자신의 영화관이 완성된 건지다. 이 영화는 좋은 의미로 내가 아주 좋아하는 샘 레이미의 요소가 군데군데 드러난다. 심지어 제목이 병맛인 것도 마음에 든다.
그렇다면 이제 서부영화를 좋아하게 된 내가 옛날에 매우 재미없게 봤던 샘 레이미의 <퀵 앤 데드>를 다시 본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싶어 무던히 애써서 다시 보게 되었다. 다시 봐도 내가 서부 영화에 기대하는 것도, 샘 레이미에게 기대하는 것도 없는 영화였다. 그러나 기대할 틈도 없었던 샤론 스톤의 말도 안 되는 섹시미와 지금 보니 너무 개허접 애송이로 보이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모습을 본다는 건 꽤 즐거운 편이었다. 그때는 이런 걸 전혀 못 느끼면서 영화를 봤었다. 아무튼 이 영화는 패션 서부극인데 이런 종류는 역시 로맨스가 메인이어야 재밌다.
밀리의 서재에 전부터 읽고 싶었던 미시마 유키오의 <사랑의 갈증>이 있길래 왜 이걸 이제 알았나 싶어서 바로 열심히 읽었다. 하루 만에 다 읽은 소설은 클레이 키건 작품들 말고는 마지막이 언젠지 기억이 안 난다. 그만큼 어렵지 않고 흡입력 있다. 찾아보니 영화도 있길래 구해봤는데 자막이 영어뿐이라 무려 AI로 번역한 뒤 내가 직접 모두 검수해서 자막까지 만들어버렸다. 영화라는 매체는 훌륭한 문학을 제대로 담기가 어려운 거라 느꼈다. 좀 더 각색을 했었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그냥 소설 속 인물은 이렇게 생겼더랍니다~ 정도로 길잡이, 안내용 서비스 영상물 정도로 생각하고 보면 나쁘진 않다. 소설의 긴 묘사인 축제 파트를 영화에선 플래쉬백을 적절히 섞은 연출을 한 건 원작에서 느껴지는 광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잘 해석했다.
<사랑의 갈증>이란 단어를 처음 접한 건 내 청춘의 밴드 카리가리의 곡 제목으로부터였다. 이 밴드는 메인 송라이터 둘 다 쇼와 문화에 대한 리스펙과 향수를 갖고 있고 해외 작품을 포함해 그 당시 일본에서 쏟아지던 다양한 문학이나 음악 스타일들에 대한 오마주를 많이 하며 차용도 많이 한다. 가장 마지막에 발표한 정규앨범 <18>은 1977년 방영된 <대철인 17>의 등장 메카인 원-에잇의 모습을 도심 배경으로 보여주는 표지를 사용했다. 앨범의 수록곡들 곳곳에 70년대에 처음 등장한 메카라는 개념과 당시의 전자 프로그래밍- Ai라는 개념에 대한 추억에 관한 걸 오마주 한다. 곡을 만드는 메인 인물들이 현재 시점에 생각하는 시대의 기계화-Ai문명화라는 걸 비틀어 쇼와시대를 끌고 와 자신들의 음악에 풀어놓는데 상당히 괜찮게 들었다. 처음 타이틀곡 東京亞詩吐暴威을 뮤비 영상으로 봤을 때 왜 이렇게 해산을 앞둔 밴드 같을까 생각했는데 실제로 이들은 앨범 활동 후 해체를 발표했다. 아 접때 공연 보길 잘했다.. 최근엔 5670000000을 들으면 이상하게 뭉클해진다. 56억 7천만 년은 미륵보살이 지상(염부제)으로 강림하여 용화수 아래에서 3번의 설법(용화삼회)으로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신앙의 핵심 예언이다. 이건 곧 철골이 돼버린 원-에잇이 구원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의미한다. 앨범 서사의 실질적 엔딩 곡이자 카리가리- 특히 이시이 슈지가 전과는 꽤나 다른 방식으로 의미심장하게 마지막을 장식하려 의도한 곡 같다.
이러다가 정말 극장 가서 영화를 더 안 볼 거 같아서 팝콘무비로 적당한 게 나오길 기다렸는데 이런 게 나와서 평일 퇴근 후에 아이맥스로 봤다 이겁니다. 오랜만에 보는 아이맥스의 커다란 스크린이 좋았고 사운드도 역시 좋았다. 상영관의 기본이 이 정돈되어야 사람들이(내가) 1.5만 원이든 2만 원이든 내고 보러 올 거 같다. 그만큼 일반 상영관의 퀄리티는 우리나라의 높아진 주거의식과 훌륭한 화면을 만드는 전자제품이 평범한 집에도 많아진 현재 시점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후지다. 멀티 플렉스가 대범람하기 시작한 20년 전의 시설을 그대로 유지하면 당연히 망하지. 아니 오히려 퇴보했다고 느낀다. 홍대 메가박스에서 영화 보면 집에서 구글무비로 본 붕신 같은 화질의 HD화면보다 더 심각하게 후지다는 걸 느낄 것이다. 알리 익스프레스에서 10만 원 주고 빔 프로젝터 대충 사서 집에서 120인치 크기로 영화를 ott로 마음껏 재생할 수 있는 시대에 이런 시설로 장사하려고 하면 그게 되겠냐고. 아이맥스랑 몇몇 독립 영화관 말고 대기업 멀티 플랙스는 존나 망해도 망할만하고 영화덕후로서 그게 그렇게 안타깝게 느껴지진 않는다.
사실 영화 얘기가 할 게 별로 없어서 요즘 극장 까는 글을 쓴 것인데 영화는 뭐 그럭저럭 재밌었다. 라이언 고슬링이 주연이니깐 이 정도의 분위기가 납득이 되는 거 같다. 좋은 캐스팅이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돌덩이 록키도 아니고 라이언 고슬링도 아니고 산드라 휠러였다. <추락의 해부> 때도 그렇고 <존 오브 인터레스트> 때도 감탄했지만 이 영화에서의 인물 묘사는 정말 좋다. 완전 반해버림.
한 3-4개월 전에 핫했던 콘텐츠 같은데 나는 지난달에서야 봤다. 일단 소신발언으로 머니그라피에 전문가들 불러놓고 이런저런 썰 푸는 영상들 그간 재밌는 게 없었다. 그런데 민음사 tv의 영상들은 거의 다 재밌게 봤고 그 핵심은 과거에 흥했던 '세계문학전집 월드컵'이 컸다. 김민경 편집자가 일단 말을 엄청 찰지게 해서 좋아했는데 이 분이 요즘 민음사가 아닌 다른 채널에도 종종 나오길래 보다 보니 결국 머니그라피까지 봤는데 웬걸. 이게 재미의 핵폭탄이 터지는 영상이었다. 음덕이라면 대충 다 알만한 김간지-허키 시바세키와의 조합은 그저 썸네일만 봐도 이거 큰일 나는 거 아니냐.. 하고 보게 되는데, 내 개인적인 입장에선 이게 그야말로 자극이고 도파민이었다. 같은 영상을 두세 번 반복해서 본 유일한 콘텐츠였다. (심지어 영상의 길이는 1시간 분량에 가깝다.) 역시 부조화 속의 조화, 간당간당한 선 타기, 실시간으로 보이는 관계의 변속성 <- 이런 것들은 구경꾼으로서 재미없기 힘든 듯. 이제 통영 레지나 조지라는 밈까지 생겨버려서 콘텐츠의 소재와 상관없이 이 셋이 나오면 일단은 재밌어지는 궤도에 올라버렸다.
일력 2025. 지금은 2026년이다.
단지 타나카 미사키의 일러스트를 위해 산 건데, 사실상 작품집이다. 총 358페이지에 2025년 각각 하루에 해당되는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시간 흐름이 잘 보이는 일러스트 북을 보니까 일상은 절대 평온하게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되는데 이걸 작품으로 묶어놓으니깐 아름답다고 느낀다.
18년에 나온 에구치 히사시 화집 step과 23년에 나온 step이후의 일러스트 총집편 step 2의 합본반을 샀다. 기회가 되면 좀 80년대 작품이 많이 수록된 모음집을 사고 싶은데 늘 이런 건 찾을 땐 없으니 있을 때 잘해야 한다. 작품 목록들을 보면 역시 도시 미소녀의 거장답다. 우리나라에 시티팝 열풍이 불게 되었을 때 여기저기서 많이들 퍼갔던 에구치 히사시의 그림들이 나름의 큰 역할을 했다고도 본다. 여타 트레이싱 때문에 논란이 있긴 했지만 사람의 구도나 포즈, 패션보다는 미형을 그리는 방식과 스킬, 채색에서 개성을 불어넣는 특징들이 더 중요한 편이라 논란에도 나락행은 면한 거 같은데 일단 옛날 아티스트가 현기준에서도 유효한 위치에 있으면 매번 이런 잡음이 있고 정신 못 차리는 아재들이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단순히 집을 예쁘게 꾸미고 좋은 가구를 채워 넣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천편일률적인 우리나라 아파트의 구조상 효율적인 인테리어는 결국 정해진 레이아웃의 베스트 배치는 정해져 있고 그 외의 소품들로 각자의 개성을 부여하는 방법뿐이니깐. 그래서 나 또한 뻔한 구조와 배치에서 사는 이상 이 책의 실효성이 없는데 좋은 구절들이 많아서 중고서점에서 구경하다 결국 구입했다. 공간이라는 건 단순히 레이아웃과 물건들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안과 밖, 실내의 볕과 바깥의 풍경, 그것들의 잔상, 실내 공간까지 영향을 받는 그날의 온습도, 그에 따른 음영과 조도까지 전부 각기 사연과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집이란 것은 결국 '돌아와야 하는 곳'의 의미다. 그에 따른 무게감과 존재감들이 있는데 이 책에서는 뻔한 아파트는 제법 영혼이 없는 집에 비유하는 편이지만, 아파트에 사는 나는 꽤 좋은 깨달음을 얻어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집의 기준은 살고 있는 사람의 역사, 생활감과 취향이 자연스럽게 묻어있는 공간이다. 그것보다 한 단계 더 깊게 들어갈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사람의 한 인생이 있으면 집 밖에서의 삶이 있고 안에서의 삶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다시금 느끼지만 삶에 있어 집 한 채 마련하려고 아등바등 거리는 건 꽤 인정할만한 일인 거 같다. 집 나가면 개고생 역시 집이 최고다라는 격언은 괜한 것이 아닌 듯. 책의 철학적인 시선과 깊이 있는 생각과는 다르게도 아, 나는 집에 있어도 집이 그립다.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집이 그리워졌습니다. 앞으로 내가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3시간 후. 이런 우아하면서 드립력 넘치는(그래서 더 상스러운) 문장들만 생각할 뿐이었다.
물 흐르고 꽃이 피는 자연에 가까이하지 않고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 신념으로 전국 산하를 누비며 그것을 소개하며 그에 얽힌 문화와 역사 이야기를 하는 책. '마음을 뒤흔드는 꽃과 나무 탐사기'라는 말이 너무 좋지 않나. 세상사 달콤하고 극적인 도파민이 도처에 널려있고 고개만 돌려도 탄산이 짜릿하게 터지는 시대에 꽃과 나무가 마음을 뒤흔든다는 게 얼마나 저력 있어 보이는지. 개인적으로 여행기 글에 대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데 그건 자기 본인만 재밌는 것에서 그칠 때가 많아서다. 너의 여행뽕은 너가 간직해야 할 요소지, 다른 사람에겐 우와 한 번 할 뿐 와닿을 수가 없다. 심지어 그게 자랑적 마인드인 게 느껴지거나 외딴곳에서 느끼는 '낯선 해방감'이 묻어 나올 땐 더욱 별로다.(지긋지긋하다.) 반면에 여행이 메인이 아닌 이 책은 박력적이다. 정말 꽃과 나무 이야기로 마음을 뒤흔든다. 책에선 단 한 번도 문장이 흥분을 하지 않지만 내가 받아들인 이 책의 문장은 " 야 존나 개쩔지? 이게 도파민이지. 맞냐 안 맞냐"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였다. 늬집 앞 보도블록의 색깔이 뭐였는지도 기억 못 하면서 너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겠니. 라며 모든 걸 시시하게 생각하는 시시한 사람을 상상하며 그 사람을 비웃으며 책을 읽었다.(반농담) 물론 저자는 나처럼 읽는 독자를 생각하며 글을 쓴 건 아니라 생각한다. 책에 소개된 장소들 중 내가 방문해 본 곳들도 있었는데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 책을 통해 얻게 된 것들을 안고 다시 가면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좋은 점은 책에서 소개되는 특정 장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연이 깃든 모든 장소들에 대한 시선을 새롭게 조율해 준다는 것에 있다.
날씨가 좋아서 전철 출퇴근을 하는 요즘 가볍게 이북으로 책을 읽곤 하다가 난데없이 H2가 보고 싶어졌다. 결과적으로 집에 가서도 H2를 마저 보게 되었다. 이 만화야 말로 청춘과 열정과 사랑에 걸맞은 작품인데, 내가 아마 만화를 보고 눈물을 흘린 건 이 작품과 기생수가 유이했던 거 같다. 히카리네 어머니가 죽고 나서 저 아저씨랑 대화하는 장면들은 일부러 쥐어짜지 않는 연출이라 더 눈물이 쏟아진다. 이 만화는 그냥 겉절이로 넘어가는 등장인물이 없다.. 몇 번을 봐도 감탄함. 그 외에 i love you 라든가, 시간제한이 없는 스포츠의 재미를 알려드리죠, 그냥 내가 1년 반이 늦었을 뿐이었어. 등등의 명대사가 많고 좋은 연출의 장면도 많지만 역시 내 최애의 장면은 키네의 완투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