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살만해졌는데,
엄마가 암에 걸렸다.

6월 13일, 암 선고.

by 주연

지난 6월 13일, 앉은뱅이 식탁을 흔드는 진동과 함께 휴대폰 액정에 뜬 ‘아빠’라는 글자는 내게 무척이나 낯설었다. 가족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혼자 지낸 것이 햇수로 12년 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내 나이가 서른이 채 되지 않은 것에 비하면 오랜 시간이었다. 비교적 집과 가까웠던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을 제외한다 해도 9년에 가까웠다. 대학교 근처의 원룸부터 시작해서 내 몸 하나 뉘면 가방 둘 자리도 부족했던 고시원, 그보다는 상황이 조금 나아져서 그나마 여성 전용이었던 고시텔까지. 얼핏 떠오르는 것만 세어도 다섯 손가락은 충분히 꼽아지는 주거지를 전전하는 동안 아빠로부터 전화가 온 건 그 다섯 손가락보다 더 적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아빠의 목소리는 정말이지, 낯 설 었 다. 그래서 나쁜 예감이 들었다. 웬만한 일로는 전화할 사람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먹고 있던 점심 식사의 입맛이 대번에 떨어졌다. 여보세요? 어, 아빠. 하는 순간 이어지는 아빠의 말들. 시골에서 농사만 짓고 살아왔던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 그런 아빠를 아는 내겐 너무나 어색한 한 톤 높은 목소리, 어쩐지 허둥대고 앞 뒤가 맞지 않아 한 번 곱씹어야 이해할 수 있었던 말들. 아빠는 할 말을 미리 준비한 듯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듯했다. 엄마가 가슴 쪽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 갔는데 큰 병원에 가보라 해서 서울대병원에 갔었다, 그래서 이제 항암을 해야 한다, 그래도 요즘에는 기술이 좋아서 치료하면 낫는다더라, 는 말들이 내가 온전한 뜻을 헤아리기도 전에 쏟아졌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혼자 마무리 짓고 혼자 끊어버릴 것 같은 아빠를 강제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빠, 그래서... 엄마가 암이라고?”

“어어, 얼마 전에 아빠 아는 사람한테도 물어봤는데, 요새는 암이라는기....”

“몇 긴데?”

“3기 말이라고는 하는데, 요즘 암은 기수가 중요한 게 아이고...”


주절거리는 아빠의 말들이 차츰 멀어졌다. 드라마, 영화에서나 나오는 줄 알았던 음향 효과였다. 상황이 완전히 인식되지 않았음에도 숨이 막혀왔다. 나는 왠지 이를 갈며 생각했다.


이제 겨우 살만하게 됐는데, 엄마가 암에 걸렸다.


황망한 마음과 기가 막힌 마음, 대상 없는 분노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생각 좀 정리하고 언니에게 전화해 설명을 듣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알고 보니 나를 제외한 가족들, 엄마와 아빠, 그리고 고향에서 함께 살고 있는 언니는 이미 어느 정도 상황을 받아들인 상태였다. 상황이 정리된 후 나에게 알린 것은 항상 제 혼자 커서 미안했던 막내딸에 대한 배려였다. 자매는 통화를 하며 울지 않았다. 담담하게 지금까지의 상황, 앞으로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발견하게 됐는지, 왜 유두가 함몰되고 몽우리가 만져진 지 6개월이 지나서야 병원에 갔는지, 3기 말이라는 진단은 어떤 근거로 내려졌는지 등의 말들을 주고받았다. 원래도 서로에게 각자의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미안해하는 자매였다. 다만 전화를 끊은 후 뒤늦게 언니가 “사실 혼자 많이 울었어.”라며 메시지를 보냈을 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이제 딸내미들이랑 맘 편하게 지낼 일만 남았는데,
내는 오래 살끼다.


엄마는 삶에 대한 의지가 충만했다. 이제 맘 편하게 지낼 일만 남았는데. 정말로 그런 줄 알았는데 왜 안일하게 병을 키웠냐, 건강검진받으러 가자고 했을 때 고집 그만 부리고 같이 갔더라면 이런 일 없지 않았냐, 하는 원망이 자꾸만 들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을 절대 입 밖에 낼 순 없었다. 원망보다 큰 연민, 그것이 내 가슴 깊숙한 곳부터 머리털 하나하나까지 나를 집어삼키는 것은 오래 걸리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 속의 엄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쌍했다. 이상하리만치 유년의 기억이 별로 없는 나의 최초의 기억에서부터, 최근까지 전부. 그 기억들 속에서 나는 불효막심한 나쁜 년, 혹은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년, 때로는 엄마보다 더 비참한 불쌍한 년이기도 했다. 어떤 역할로 등장하든 결말은 하나의 감상으로 귀결됐다. 불쌍한 우리 엄마. 그 기억들에 대한 후회는 엄마의 암 선고 앞에서 무엇보다 나를 괴롭혔다. 왜 나는 한결같이 착한 딸이지 못했을까, 더 잘나서 지긋한 가난으로부터 엄마를 일찍 해방시켜줄 순 없었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들. 그 생각의 고리를 끊기 위해 글을 쓰기로 했다. 내 기억 속의 불쌍한 엄마, 그리고 좋은 딸이 되기엔 부족하기 짝이 없는 나를 용기 내어 직면하면서. 나는 과거를 꺼내며 미리 울어볼 테니 엄마는 눈물 없이 지금을 견뎌내길 간절히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