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30분, 아마도 나는 엄마를 죽였다.

잠 못 드는 까닭은 두려움이었다.

by 주연

엄마의 암 선고를 전해 들은 그날 이후 온전히 잠들 수 있었던 날은 고향에 내려가 가족들과 같은 공간에 있었던 하룻밤이 다였다. 그 이외의 밤들은 엄마와 관련된 과거의 기억이 의지와 상관없이 재생되는 형벌 같은 각성의 시간이었다. 그 기억들은 진부한 표현으로 ‘어제의 일인 양’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멋대로 재생되는 장면들을 차라리 왜곡 없이 떠올려보겠노라, 체념에 가까운 다짐을 하고 그때의 공기, 대화, 감정들을 직면하고 나면 얼핏 잠에 들려고 하다가도 ‘쿵’하는 심장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깨곤 했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올랐다 떨어지는 느낌, ‘쿵’하는 소리가 머리를 울리고 온 몸의 세포가 발톱을 세우는 그 느낌은 처음 느껴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나는 지금 공포에 사로잡혀 있구나.



나는 대학생이 되자마자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엄마 아빠가 쥐어주었던 돈 5만 원은 전공 서적을 구입하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편의점 카운터를 보는 일이었다. 당시 억울한 일인 줄도 몰랐던, 최저에도 못 미치는 3,100원의 시급을 받고 한 달 동안 매일 저녁 시간에 일을 해서 받은 첫 월급은 30만 원 남짓이었다. 30만 원이라는 돈은 내가 생전 만져본 적이 없는 돈이었다. 이렇게 큰돈을 내 손으로 직접 벌었다니, 스스로가 기특하고 뿌듯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엄마, 내 첫 월급 탔다.”

“아이고, 고생했네. 맛있는 거 사무라.”


나는 엄마 말대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대학교 앞 지하철역 근처에 즐비한 옷가게에서 옷도 사고, 진짜 대학생들이 바르고 다닐 법한 화장품도 샀다. 과 동기, 선배들이랑 다 같이 야구장에도 가고, 미뤄뒀던 친목을 다지기도 했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한껏 즐기다 보니 첫 월급은 금세 다 떨어졌다. 한 달 동안 일해서 번 돈이었지만 쓰는 기간은 한 달을 채우지 못했다. 그렇게 힘들게 벌었어도 돈 쓰는 건 금방이구나, 생각하고 있던 하필 그 타이밍에 전화가 왔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그 전화가.


“주연아, 지난번에 탄 월급 아직 쪼껜 남아있나?”

“아~니. 엄마 돈 쓸 일이 얼마나 많은지, 벌써 다 써버렸다.”

“그 많은 돈을 다 썼나?”
“많기는, 30만 원 밖에 안됐는데. 근데 왜?”
“.... 아니, 쪼껜이라도 남아있으모 엄마한테 좀... 빌려달라꼬...”


순간 할 말을 잃은 나와 엄마 사이에는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 끝에 나는 당황하며 짜증을 냈던 것 같다. 전공서적만 해도 한 권에 이만 원을 훌쩍 넘어가고, 커피 한 잔에 사천 원, 밥 한 끼에 육천 원, 옷 한 벌은 제일 싼 걸 사도 만 오천 원을 넘어가는데, 내가 어째서 그 돈을 다 쓸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늘어놓으며 엄마를 타박했다. 엄마, 그 돈이 어떻게 지금까지 남아있겠노. 대체 엄마가 왜 내게 돈을 달라고 하는 건지에 대한 당혹감과 휴대폰 너머로 느껴지는 절망감을 애써 외면하고자 구구절절 늘어놓은 변명들이었다. 서둘러 끊기려는 전화를 붙잡고 나는 끝까지 그런 말들만 했던 것 같다. 왜 그 돈이 지금까지 남아있을 수 없는지에 대한 이유들을. 그리고 그 순간부터 어떤 사실 하나가 두 번 다신 잊을 수 없도록 뼈속 깊이 새겨졌다. 우리 집은 딱 이 정도로 가난하구나. 엄마가 ‘쪼껜’이라도 남은 돈을 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 딸내미에게 전화를 걸었을 만큼, 딱 그만큼 가난하구나.


그 뒤로 나는 알바를 하나둘씩 더 늘리고, 대학생이 혼자 생활하기엔 충분한 돈을 벌고 있음에도 돈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인식을 채 하지 못하고 지냈던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일상들이었다. 엄마가 휴대폰 너머 젖은 목소리로 본인이 더 꺼내기 싫을 말들을 꺼내고, 난 이번에는 잔고가 남아있을 때 그 전화가 걸려왔음에 안도하며 돈을 보내길 수십 번이었다. 난 지쳐가고 있었고 엄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을 땐 손이 덜덜 떨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십중팔구 젖어있을 엄마의 목소리, 다음에 갚아주겠다는 똑같은 말들, 완벽하게 숨겨질 리 없는 신경질을 겨우겨우 억누르며 금액을 묻는 나. 모든 게 나를 벼랑 끝에 내몰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엄마.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할 건데? 이번에는 안보내줄끼다. 엄마 알아서 해라.”

마치 꾸중하기라도 하는 것 마냥 모든 탓을 엄마에게 돌리는 말투였던 것 같다. 그렇게 홱 전화를 끊은 후, 나는 한참을 가만히 앉아있었다. 1분, 5분, 10분, 30분이 지나고, 눈을 질끈 감곤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엄마, 지금 어딘데?”

“어? 엄마 고마... 은행 앞에 가만있다.”

“거기 왜 그러고 있는데?... 내가 돈 보내줄게.”


그렇게 내가 보냈던 돈이 얼마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아무렇지 않게 다시 전화를 받던 엄마의 목소리에 괜히 또 화가 나서 돈을 보내고도 다시 메시지를 보낸 기억은 생생하다.

[다른 자식들은 엄마 아빠 도움받아서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는데, 나는 이게 뭔데?

엄마 아빠가 내 꿈 다 뺏어가고 있다.]


메시지를 보낸 뒤 한참 뒤에야 답장이 왔다.


[엄마가 미안타.]

홧김에 모진 말을 뱉은 뒤 나는 무척이나 괴로웠다. 그때의 엄마는 은행 앞에 멍하니 서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자 납입 기간의 마지막 날, 덩그러 차도 쪽을 바라보며 무엇을 떠올렸을까. 눈물을 흘렸을까, 아님 눈물조차 나지 않았을까. 모진 말을 뱉어대는 딸이 야속했을까, 아님 딸에게 그런 말을 듣는 자신이 비참했을까. 언제까지 이럴 거냐는 말에 언제까지 이래야만 하는지 되묻고 싶었던 건 엄마가 아니었을까. 혹시, 어쩌면, 죽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때가 처음이었다. 가슴이 ‘쿵’하며 잠들지 못하는 밤의 까닭이 두려움이라는 것을 알게 된 때가. 엄마가 멍하니 차도를 바라봤을 30분 동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어쩌면 엄마가 그 순간 극단적인 생각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공포는 며칠 동안이나 내게 잠 못 드는 형벌을 주었다. 지금 내가, 그 모든 것들을 다시 떠올리며 잠 못 드는 것처럼.




나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제발 한 번만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순간들. 하지만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반복되는 두려움들. 잠 못 드는 밤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두려움을 직면해야 하는 걸까.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강해질 수 있을까. 내가 부족했고 나빴음을 인정하면 하나씩 지울 수 있을까. 그렇다면 오늘 밤에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장면을 맞이해야 될 것이다. 앞으로도 한동안 잠들지 못할 테지만, 하루라도 빨리 과거보다 지금의 엄마를 똑바로 바라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