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행복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겸손해하거나, 쑥스러워하거나, 애써 외면하는 사람도 있죠. 반대로 슬픔은 고스란히 아파합니다.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을 멈추는 일은 범람하는 강을 혼자 힘으로 막는 것과 같으니까요. 잘해준 것보다 못해준 일이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이 때문일까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데이트가 생각납니다. 그녀는 낯선 행동 하나하나에도 사랑스러움을 담을 줄 알았죠. 손톱 달이 뜨는 듯한 눈웃음, 별을 닮은 입술, 한 모금씩 아껴마시는 커피와 잔을 맞잡은 두 손. 별안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커피 잔의 삶도 괜찮겠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하루는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손도 잡고, 밥도 먹고, 영화도 볼 수 있는 시간. 밤 10시가 되면 별을 셈하며 밤거리를 걸었죠. 밤을 꼬박 새우고 출근하는 일은 또 어떻고요. 사랑에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사랑이 일상이 되면서부터 하루가 짧아졌습니다. 하루 한 시간조차도 아까워지는 겁니다.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고 싶고, 똑똑해지고 싶고, 못 만났던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 지는 겁니다. 정작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이해해줄 수 있는 것으로 치부하면서요. 그렇게 익숙함에 침식되는 사랑은 지치거나 외로워지기 마련입니다. "사랑"이 "쓸쓸"이 되는 것이죠. 사랑이란 단어가 가렸던 글자가 서서히 드러나고요. 이별. 가장 무서운 것은 “ㅇ”부터 “ㄹ”까지 완전해지기 전에는 인지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얼마나 아픈 것인지, 얼마나 슬픈 것인지, 얼마나 자책하게 만드는 것인지를요.
마침내 이별이 완성되면, 그 사람이 바다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 바다를 보면 수평선 끝이 안보이잖아요. 크기가 가늠 안 될 정도로요. 꾸역꾸역 챙겨주던 아침, 함께 개키던 빨래, 확실해야 한다며 손수 말려주던 머리. 이런 것들을 떠올려보면 얼마나 따뜻하고 넓은 존재였는지, 삶을 떠안아줄 정도로 큰 사랑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겁니다. 사랑이 고마움보다 미안함을 더 많이 남기는 건 이상한 것이 아니에요. 그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 테죠. 신이 있다면 그렇게 설계하셨을 겁니다. 최선을 다하라고. 짊어질 거면 행복을 지라고. 행복보다 슬픔의 무게가 더 크니까. “마음이 무거우시죠”라는 문장은 기쁜 사람보다는 슬픈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이니까요.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면, 혹시라도 익숙해지고 있다면 한 번 생각해봅시다. 빈민한 사랑을 주고 있진 않은지, 외로움을 느끼고 있진 않은지, “ㅇ”부터 “ㄹ”까지의 과정을 겪고 있진 않은지. 조금이라도 느껴진다면 우리, 이렇게 해봐요. 첫 데이트 떠올려보기, 사랑에 빠진 이유 적어보기, 같이해서 행복했던 일 나열해보기.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