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수

by 금교준

그날, 나는 “인생이란 이슬비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리는 듯 마는 듯 가는 빗줄기인데도 그렇게 많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세상을 어둡게 만들지 않으면 이슬비는 보이지 않으니까요.”* 라고 썼던 작가를 생각했다. 지구의 생을 기준으로 따져보면 보이지도 않는 나의 생을 죽 늘여본 후였다. 바닥난 등유 때문에 찬물로 씻어야 했던, 쇳소리를 내는 주유 트럭의 운전수가 윽박지르는 꼴을 가만히 보아야만 했던, ‘굳이 지구에 비하지 않아도’ 라는 말이 떠올랐던 것 때문은 아니었다.

허심탄회하게 말해서 그때의 나는 일도 없고, 커플 매칭 프로그램에 대입하면 미혼이 권장되는 사람이었다. 남들이 복도를 따라 죽죽 걸어갈 때 옆문을 열고 뛰쳐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고 있었다. ‘서서히’ 라는 낱말이 무엇을 물어다 줄지는 짐작하지 못한 채, 누구는 치기라고 부르는 것을 무기처럼 차고 다녔던 시절이었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도 있었는데 그래야 생각이 갇히지 않는다는 망측한 핑계를 만들기도 했다.


아무튼 그날, 짧은 필름에도 반짝이는 지점이 있듯 내 생에도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는 문장을 지어놓고는 간절히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나를 지나쳐간 사람, 그들과 보냈던 시간. 뭐 그런 것들을 얼마간 곱씹었다. 씹다 보면 고소하고 달큼한 기억들을. 곧 나는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깨달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펼쳐놓은 기억 속에 항상 전 애인들이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순차적으로. 나를 혹은 내가 아프게 만든 존재에게서 위로를 받는 상황.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곧 그것은 고통이 될 것이라고 나는 예감했다.

나는 예감을 뿌리치기 위해 인터넷을 켜고, 언론이 뿌려대는 낱말을 입에 욱여넣어 씹었다. 실종과 대선, 소화기와 산불, 평화와 전쟁 같은 것들을. 그러나 그들은 억울하고 비통한 소식을 머금은 터라 눈이나 코 따위를 쥐어짤 뿐이었다. 마치 생은 그런 것이라고, 이제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생을 직시하게 된 것이라고, 훈교하는 것처럼.

그 작가가 썼던 것, 고통은 단수라는 것과 가장 강한 놈이 독점한다,* 는 문장을 그날 나는 여러 번 발음했다.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 김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