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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Jun 23. 2022

옛일

요즘은 자꾸만 옛일을 회상하게 된다. 이 시기의 나에게 주어진 책무처럼. 옛일은 주로 그땐 왜 그랬을까의 '그때'로 명명되고는 했는데 매번 다른 시점으로 기억됨에도 불구하고 별안간에 후회하게 만들거나, 생을 이어가는 방식에 대해 곱씹게 만드는 경우가 잦았다. 나는 그 지점들을 고리타분한 방식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불콰하고 치졸했던 모습을 돌이킬 수 있던가, 성찰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 방법이 될 수 있던가, 과거는 고정된 채로 남아있을 텐데 뒤늦은 반성이 효력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의욕을 발견하고는 적잖이 놀란 적도 있었다. 근래의 나는 그 의욕 때문에 산다고 봐도 무방했다.     


한 번은 내가 정말 못살게 굴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당시의 나를 떠올릴수록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워졌다. 꼭 그렇게 미워해야 했나 싶기도 했고, 별것 아닌 일로 마음이 꽁해져서는 그 사람을 종일 불편하게 만들어야 했나 싶었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걸 제멋대로 정의해놓고 그 사람에게 들이댄 거였다. 뭘 몰라도 지나치게 몰랐지. 어설프게 아는 사람이 더 잘 아는 사람보다 목소리가 크고 용기 있다는 말을 이제는 일부 이해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여태껏 경험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찾아다니고, 얘기해보지 않았던 사람들과 말을 섞으려고 애썼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세상은 더 다채롭고 넓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것은 내가 감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가 아니어서 나는 내가 보기보다 오만했다는 사실을, 너무나 미약하다는 것을, 동시에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쌓이는 신비감으로부터 호기심과 일련의 욕망이 발아하는 것을 느꼈다.      


내가 저질렀던 언행들을 도로 되받는 순간들도 켜켜이 쌓여갔다. 낯선 모습을 발견하고 면목을 지우고 보다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나를 대면하게 되었다. 곱씹을수록 골고루 소화되는 게 음식인 것처럼, 곱씹을수록 마주하게 되는 내 앞에서 나는 자연히 고개가 떨어졌다. 이런 게 자라나는 건가. 그래도 이제는 누군가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커졌나. 그런 걸 자문해본 날도 있었는데 응당 그래야 하는 것처럼 자존감보다는 자기 비하 같은 것들이 웃자라는 통에 밤새 누워서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의욕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그런 날에 불현듯 생겼다. 봄에 씨앗을 뿌려두고 가만히 두면 알아서 비를 머금고, 볕을 쬐고, 여름이 되어 기어코 과실을 맺어내는 감자 같았다. 감자는 씨감자(씨앗 대신 심는 감자 조각)가 초기 생육에 필요한 영양분과 수분을 공급하기 때문에 다른 작물과 다르게 물을 주지 않아도 된다. 대신 심은 지 50일쯤 되었을 때 순치기를 통해 건강한 싹 한두 개를 남기고, 감자꽃이 피기 전에 봉오리를 따주어야 한다. 뿌리가 양분을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다듬어주는 과정이다. 그거, 마치 나를 닮았다. 내가 감자를 닮은 건가. 아무튼 내 신체와 정신 구석구석에 붙어있는 오류들을 발견하는 거, 앞으론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하는 거. 나는 그저 누워있었을 뿐인 어느 여름날에 나와 감자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생각해냈고 앞으로 살아야 할 방식에 대해 고민했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장마철이 나를 어떻게 키울지 나는 내심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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