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주는 '편리함'의 이면에는 '불평등'이 있다
“조물주의 손에서 나올 때는 모든 것이 선이나,
인간의 손에서 모든 것이 타락한다.”
- 장 자크 루소 <에밀> 중에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는 온갖 불평등이 넘쳐난다. “가진 사람은 더 가지고, 없는 사람은 더 없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불평하면서도 기술 분야에 뜨거운 관심을 보낸다. 사회 복지와 관련된 기사가 나오면 시선을 돌리면서 말이다. 사실 생활의 편리성이나 주식 등으로 직접적인 이점을 주는 기술과 돈을 들여 도와야 하는 복지 사이에는 꽤나 먼 거리가 있어 보이긴 한다.(굳이 복지를 돈 들어가는 항목으로 표현한 이유는 ‘세금’을 빗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 아는가? 우리가 열광하는 최신 기술들이 사실은 그렇게 불합리하다며 욕하는 ‘불평등’을 만드는 주범이라는 사실을! 물론 이 주장은 18세기 철학자 ‘장 자크 루소’가 펴낸 주장이다. 그는 사회 계급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이 ‘문명과 기술의 발전’에 기원을 둔다며 프랑스혁명에 철학적 영감을 제공했다.
흔히 ‘불평등’이라고 하면 뭐부터 떠오르는가? 나는 ‘계급 차별’, ‘인종차별’, ‘빈부격차’ 등이 생각났다. 장 자크 루소는 이 같은 불평등이 인간이 만든 ‘사회’에서부터 출발해 나온다고 말했다.
생활에서의 극심한 불평등, 어떤 사람에게는 지루한 여가가 주어지는가 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과중한 노동이 강요되는 것, 그나마 굶주리기 일쑤지만 경우에 따라 과식하게 마련인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없는 먹을거리, 그리고 밤샘과 온갖 종류의 무절제.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당하는 불행의 대부분이 우리 자신의 탓이며 따라서 자연이 명령한 소박하고 일정하며 고독한 생활양식을 간직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되는 고약한 증거들이다. - 장 자크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중에서
그가 얘기한 <불평등 출현 스토리>는 이렇다. 먼저 인류가 수렵, 채집 생활을 할 때를 생각해보자. 그 시기의 인간은 열매를 찾아 먹거나, 나무 위에서 자는 등의 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러다 농업 기술을 익히게 되고, 토지에 대한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다. 토지가 생기면? 자연스레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다루게 된다. 루소는 이 시기를 법과 소유권의 생성이라고 표현한다.
이어서 농업 도구가 발명되는데 이때는 언어가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술의 공유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 즉, 돌칼을 누가 먼저 발견하느냐에 따라 수확량의 차이가 생겨난다. 그렇게 돌칼이 있는 A와 없는 B 사이에서 재산 차이가 발생한다. 흉년이 들었을 때 잉여생산물이 없는 B는 생존을 위해 A에게 아쉬운 소리를 한마디 보태야만 한다. 여기에 A는 잉여 생산물을 주고, 그 대가로 노동력을 받을 수 있다. 보이는가? 벌써부터 노동 시간이 비 대칭해졌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A는 시간 여유가 생겨 더 많은 토지를 경작하고, 더 많은 수확을 챙긴다. 분명 일은 B가 더 많이 하는데 A가 더 얻는 거다. 여기서 서로를 비교하게 되고, 불평과 불만이 쌓이기 시작한다. 만약 B가 더 이상 안 하겠다고 한다면? 사실 아직까지는 A만 더 아쉬워지는 상황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 만들어진 게 바로 행정 권력의 제도화다. 바로 다른 세력을 들먹이면서!
“지금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건 저쪽 세력이야.
저쪽이 뭉쳐서 우리 재산을 약탈할지도 모르니까 우리가 먼저 뭉쳐야 해!
마침 내가 재산이 많으니까 나눠줄게. 대신 네가 나의 힘이 되어줘.
그리고 이를 약속하는 계약서를 만들자.”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계약서가 만들어진다. 이게 바로 ‘계급’의 형성이다. A는 권력을 보유하고, B는 보수를 받는 대신 충성을 바친다. 이 이후로는 뻔한 얘기다. 계급이 고착되다 보니까 ‘존경’이라는 관념이 생기고, 이로부터 예의범절이 생긴다. B 입장에서는 경제, 사회적으로 열등한 위치가 되었는데, 예의까지 차려야 하는 거다. 그리고 이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권력의 주체가 왕 -> 부르주아(자본가)로 변했다는 것만 빼고!)
이러한 불평등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가축의 사육, 화석연료의 사용이 증가하면서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는 대가로 편리함을 얻기 시작했다. 심지어 기술은 지금 이순간에도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본래 자연은 열매라던지 타 동물 간의 생태계 시스템으로 별생각 없이 생존해가는 인류와 조화를 이루려는 목적이었을지 모른다. 자연의 기대와는 달리, 인간의 법칙과 기술로 발전해 온 우리가 자연에게 한 짓은 처참하다. 나무들은 죽어갔고, 지구의 대기는 오염됐다. 어쩌면 자연은 우리에게 철을 발견하기 힘들도록 산에 꽁꽁 숨겨뒀고, 우리가 기어코 그걸 찾아내서 기술을 발전시킨 걸 수도 있다.
지금으로 넘어와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애플이나 삼성과 같은 대기업의 신제품 발표에 집중한다. 어떤 이들은 기술주, 테마주와 같이 주식과 관련되어 예민한 시선을 갖고 바라보기도 한다. 신제품이 발표됐을 때, 엄청난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기술은 기업을 배불린다. 기술에 예민한 개인 주식투자자들은 기업 앞에서 무릎 꿇는다. 다른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려 빚만 가득 지고 물러서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빈부격차는 더 심화된다. (불평등의 심화)
결론적으로, 장 자크 루소가 주장한 것은 ‘문명의 발달이 불평등을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히 자연으로 돌아가자!라는 주장이 아니다. 적어도 타인에게, 자연에게 우리가 한 짓을 돌아보자는 말이다.
이제는 조금 시선을 달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적어도 나만큼은 기술을 마냥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환경의 입장에서 딱 한 번만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겠다. 사회에서든 직장에서든 불평등이 느껴진다면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에 대해서 깊이 곱씹어볼 테다. 모든 불평등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임을 인식하고, 깨어있는 사람이 되어볼 테다.
* 엄연히 제 주관적 의견일 뿐입니다. 참고로 주식을 끌어다 논의한 이유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함으로써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단편적이고도 단순한 예시로 든 것뿐이에요. *